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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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함 HMS 퀸 엘리자베스. 2차 개장 전인 1930년대 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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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함 워스파이트.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함포 사격으로 상륙군에 대한 화력 지원을 하는 장면이다.[1]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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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엘리자베스와 밸리언트의 2차 개장 후 형태.
2. 개요
'''Queen Elizabeth Class Battleship'''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영국 해군이 1914년부터 1948년까지 운용한, 만재배수량 36,500톤급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5척을 말한다. 6척이 예정되었으나 5번함까지 완성되었으며, 1번함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전함은 화력, 방어력 및 속도에서 뛰어났으며, 전작인 영국 해군의 아이언 듀크급(Iron Duke Class)은 물론이고 이후에 등장한 독일 해군의 쾨니히급(König Class)보다도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 최초의 고속전함이라 불렸다. 당대에 이에 필적할 만한 전함은 15인치급 주포를 장착한 독일 해군의 바이에른급(Bayern Class) 전함이지만, 속도가 21노트에 불과해서 퀸 엘리자베스급보다 느렸다. 출처 그리고 고속성능 이외에도 최초로 15인치 대포를 장비한 점이 특기할 만하며, 1919년 제인스 전투함연감에서 사상 최강으로 증명된 주력함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및 제2차 세계 대전의 해전에서 활약하였다. 또 이 전함에 장착된 15인치 Mk-I은 영국 해군이 전함에 사용한 가장 강력한 주포의 하나로 구경으로 따지면 16인치 Mk-I을 장착한 넬슨급 전함이 있으나 15인치 Mk-I에 1938년에 도입된 신형탄을 적용할 경우 갑판 타격에서는 오히려 앞서는(!) 수준이고 현측 타격능력도 25,000~30,000야드 사이에서 역전되며 정확성이나 포신 수명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6] 물론 라이온급 전함이 배치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결국은 취소되었으니...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여하였으며, 주력 전함 중에서는 가장 먼저 교전에 참여하여 자신의 전술적 가치를 증명하였다.
2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에는 후속함급인 리벤지급 전함의 전술,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와 함께 KGV급 전함 취역 직후의 공백 기간 동안만 후드의 파트너 겸 주력함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후드(순양전함)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폭침하고, 말레이 해전 이후로 영국해군 수뇌부가 KGV급 전함의 최전방 투사를 꺼리게 되면서 리나운급 순양전함과 함께 영국 해군의 실질적인 주력함으로 구르게 된다.
완공된 5척 중 4번함 버럼만이 지중해에서 독일 잠수함 U-331의 뇌격으로 격침되었고 나머지는 전후 거함거포주의의 퇴조와 더불어 해체되었다.
이 함급들의 건조비는 퀸 엘리자베스가 대략 300 만 파운드, 워스파이트, 벨리언트, 버럼이 250만 파운드 안팍이였다. 에진코트는 275만 파운드가량이였으나 오스만에게 덤터기 씌웠고...그런데 전간기의 개장에서 워스파이트만 해도 개장비로 250만 파운드라는, 건조비와 별 차이 안나는 엄청난 금액이 소요되었다. 20여 년간의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상당한 비용. 자매함별로 개장 수준이 조금씩 다르거나, 버럼이 개장을 못 받은 게 이 비용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3. 자매함 일람
동형함이 5척이나 되고 광범위한 해역에 걸쳐 활동을 했기 때문에 개별 함정별로 기술한다.
3.1. 퀸 엘리자베스(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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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Queen Elizabeth(00)[7]
네임쉽. 1912년 포츠머스 조선소에서 기공되어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중인 1914년 12월 22일 취역. 지중해상에서 터키를 압박하기 위한 다르다넬스 봉쇄작전과 갈리폴리 전투에서 기함을 맡았다. 이후 스카파플로우를 모항으로 하는 제5전함전대[8] 에 배치되었으나, 수리를 받는 바람에 네임쉽임에도 자매함들 중 유틀란트 해전에 유일하게 참전하지 못하였다. 이후 지중해에 배치, 1926~27년에 개장을 거쳐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출동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HMS 밸리언트와 함께 이탈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를 모항으로 하여 배치되었으나, X-MAS 부대의 소형잠수정의 공격[9] 으로 항내에 착저되어 미국 버지니아 주의 뉴포트 조선소로 이동하여 수리를 받은 뒤 이후 동양함대에 배치되어 일본 해군과 일전을 벌이기도 했다. 1948년 퇴역후 해체.
네임쉽. 1912년 포츠머스 조선소에서 기공되어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중인 1914년 12월 22일 취역. 지중해상에서 터키를 압박하기 위한 다르다넬스 봉쇄작전과 갈리폴리 전투에서 기함을 맡았다. 이후 스카파플로우를 모항으로 하는 제5전함전대[8] 에 배치되었으나, 수리를 받는 바람에 네임쉽임에도 자매함들 중 유틀란트 해전에 유일하게 참전하지 못하였다. 이후 지중해에 배치, 1926~27년에 개장을 거쳐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출동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HMS 밸리언트와 함께 이탈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를 모항으로 하여 배치되었으나, X-MAS 부대의 소형잠수정의 공격[9] 으로 항내에 착저되어 미국 버지니아 주의 뉴포트 조선소로 이동하여 수리를 받은 뒤 이후 동양함대에 배치되어 일본 해군과 일전을 벌이기도 했다. 1948년 퇴역후 해체.
3.2. 워스파이트(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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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밸리언트(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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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Valiant(02)[11]
이름의 뜻은 '용맹한', '단호한'이란 뜻이다.1913년 클라이드뱅크의 페어필드 조선소에서 기공, 1916년 1월 13일 취역.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부상자 1명을 제외하고는 피탄되지 않았으며 288발을 발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메르셀케비르 프랑스 함대 파괴작전에 참가했으나 194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위의 퀸 엘리자베스와 함께 이탈리아 해군 특공대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의 일화가 유명한데 당시 폭탄을 설치하고 귀환하던 이탈리아 특공대가 잠수복 이상으로 잠깐 해수면으로 떠올랐다가 발각당해 폭탄을 설치한 바로 그 함선에서 취조를 받았는데, 거기서 이탈리아 장교가 꿈쩍도 않다가 입을 열어 한마디를 한다. "15분 뒤 이 배는 폭발한다!" 그 즉시 함선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해당 특공대는 영국군과 함께 탈출했다고. 이후에는 태평양 전선에서 1944년까지 활약했다. 1944년 8월 8일 실론의 트린코말리에서 부유식 도크 내에서 수리를 받다가 도크가 무너지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보수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1948년 퇴역후 해체.
이름의 뜻은 '용맹한', '단호한'이란 뜻이다.1913년 클라이드뱅크의 페어필드 조선소에서 기공, 1916년 1월 13일 취역.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부상자 1명을 제외하고는 피탄되지 않았으며 288발을 발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메르셀케비르 프랑스 함대 파괴작전에 참가했으나 194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위의 퀸 엘리자베스와 함께 이탈리아 해군 특공대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의 일화가 유명한데 당시 폭탄을 설치하고 귀환하던 이탈리아 특공대가 잠수복 이상으로 잠깐 해수면으로 떠올랐다가 발각당해 폭탄을 설치한 바로 그 함선에서 취조를 받았는데, 거기서 이탈리아 장교가 꿈쩍도 않다가 입을 열어 한마디를 한다. "15분 뒤 이 배는 폭발한다!" 그 즉시 함선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해당 특공대는 영국군과 함께 탈출했다고. 이후에는 태평양 전선에서 1944년까지 활약했다. 1944년 8월 8일 실론의 트린코말리에서 부유식 도크 내에서 수리를 받다가 도크가 무너지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보수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1948년 퇴역후 해체.
3.4. 버럼(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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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Barham(04)[12]
이름의 유래는 미국 독립전쟁과 나폴레옹 전쟁기에 활약한 해군 제독 1대 버럼 남작 찰스 미들턴(Charles Middleton, 1st Baron Barham). 1913년 클라이드뱅크의 존 브라운 조선소에서 기공, 1915년 10월 19일 취역. 유틀란트 해전에서 제5전함전대의 기함을 맡고 337발을 쏘아 데이비드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전대를 구원해내는 대활약을 했다. 피해는 5발 피탄, 26명 전사, 46명 부상. 전간기에 크고 작은 개장을 받은 동형함들과 달리 거의 개장을 받지 못했고 덕분에 기관만 교체된 말라야와 더불어 1938년에 배치된 신형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케이프 마타판 해전에 참가하였다. 1941년 11월 25일, 한스-디트리히 폰 티센하우젠[13] 중령이 지휘하는 독일 해군 잠수함 U-331[14] 이 발사한 어뢰 3발을 맞고 함장을 포함하여 850명의 승조원과 같이 침몰하였고 전대장 헨리 프리드햄-위펠 해군 중장을 포함하여 387명이 살아남았다. 당시 왼쪽으로 기울며 폭발하는[15] 장면이 영상으로 촬영되었고, 필름에 기록된 가장 강력한 폭발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시청시 주의![16]
이름의 유래는 미국 독립전쟁과 나폴레옹 전쟁기에 활약한 해군 제독 1대 버럼 남작 찰스 미들턴(Charles Middleton, 1st Baron Barham). 1913년 클라이드뱅크의 존 브라운 조선소에서 기공, 1915년 10월 19일 취역. 유틀란트 해전에서 제5전함전대의 기함을 맡고 337발을 쏘아 데이비드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전대를 구원해내는 대활약을 했다. 피해는 5발 피탄, 26명 전사, 46명 부상. 전간기에 크고 작은 개장을 받은 동형함들과 달리 거의 개장을 받지 못했고 덕분에 기관만 교체된 말라야와 더불어 1938년에 배치된 신형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케이프 마타판 해전에 참가하였다. 1941년 11월 25일, 한스-디트리히 폰 티센하우젠[13] 중령이 지휘하는 독일 해군 잠수함 U-331[14] 이 발사한 어뢰 3발을 맞고 함장을 포함하여 850명의 승조원과 같이 침몰하였고 전대장 헨리 프리드햄-위펠 해군 중장을 포함하여 387명이 살아남았다. 당시 왼쪽으로 기울며 폭발하는[15] 장면이 영상으로 촬영되었고, 필름에 기록된 가장 강력한 폭발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시청시 주의![16]
3.5. 말라야(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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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Malaya(01)[17]
이름은 영국령 말레이 식민지를 의미.[18][19] 1913년 타인사이드의 암스트롱 조선소에서 기공, 1916년 2월 1일 취역. 유틀란트 해전에서 8회 참가하여 215발을 쏘았다. 피해는 63명 전사, 68명 부상. 전간기때 재정난으로 기관은 교체하였으나 상부구조물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로 인하여 구형탄을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수송선단 호위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워스파이트와 함께 칼라브리아 해전에 참가했다. 여기서 리벤지급 전함 로열 소버린과 발을 맞추기 위해 뒤쳐졌다가 워스파이트가 단독 교전을 시작하자 이탈리아 해군에 혼란을 주기 위해 사거리 밖에서 사격을 했다. 1941년 독일 해군의 U-106의 어뢰공격에 피격된 적이 있었다. 1945년에 일선 임무에서 물러나기까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수많은 작전에서 수송선단 호위를 담당하였다. 1948년 퇴역후 해체.
이름은 영국령 말레이 식민지를 의미.[18][19] 1913년 타인사이드의 암스트롱 조선소에서 기공, 1916년 2월 1일 취역. 유틀란트 해전에서 8회 참가하여 215발을 쏘았다. 피해는 63명 전사, 68명 부상. 전간기때 재정난으로 기관은 교체하였으나 상부구조물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로 인하여 구형탄을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수송선단 호위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워스파이트와 함께 칼라브리아 해전에 참가했다. 여기서 리벤지급 전함 로열 소버린과 발을 맞추기 위해 뒤쳐졌다가 워스파이트가 단독 교전을 시작하자 이탈리아 해군에 혼란을 주기 위해 사거리 밖에서 사격을 했다. 1941년 독일 해군의 U-106의 어뢰공격에 피격된 적이 있었다. 1945년에 일선 임무에서 물러나기까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수많은 작전에서 수송선단 호위를 담당하였다. 1948년 퇴역후 해체.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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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유래는 아쟁쿠르를 영어로 읽은 것. 1913년 기공,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건조 취소된 전함이다.
그 후 애진코트라는 함명은 오스만 제국에게 돈 다 받고 건네주기 직전 그대로 들고 튀어서 얻은 전함에 붙게 된다.
이름의 유래는 아쟁쿠르를 영어로 읽은 것. 1913년 기공,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건조 취소된 전함이다.
그 후 애진코트라는 함명은 오스만 제국에게 돈 다 받고 건네주기 직전 그대로 들고 튀어서 얻은 전함에 붙게 된다.
4. 미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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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오브 워쉽 - 2번함 워스파이트가 6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했으며 1번함 퀸 엘리자베스는 정규 영국 전함 트리의 6티어로 등장 했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3티어 영국전함으로 등장한다. 강력한 15인치 특수철갑탄으로 적함의 시타텔을 털며 인게임내 3티어 OP에 속한다.
- 함대 컬렉션 - 현재 워스파이트가 유일하게 실장된 퀸엘급 전함이다. 워스파이트(함대 컬렉션) 참조.
- 벽람항로 - 퀸 엘리자베스와 밸리언트, 워스파이트가 등장한다. 퀸 엘리자베스(벽람항로), 밸리언트(벽람항로), 워스파이트(벽람항로) 참조.
- 전함소녀 - 퀸 엘리자베스와 워스파이트가 등장한다.
- 푸른 맹세 - 전함 소녀와 동일하게 퀸 엘리자베스와 워스파이트가 나온다.
5. 관련 문서
[1] 4개의 포탑중 3개만이 측면을 향하고 3번 포탑은 함미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는게 보이는데, 이는 이전 지중해 전역에서 독일공군의 유도폭탄(프리츠X)에 맞아 심한 손상을 입은 후 완벽하게 수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었기 때문. 프리츠X로 인해 입은 피해는 퇴역하는 날까지 수리되지 않았다. 워스파이트의 경우에는 그나마 특유의 악운과 보수반의 분전으로 침몰만은 면했지만, 다른 배들은 얄짤없이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탈리아 해군의 최신예 전함이었던 리토리오급 전함 3번함 로마. 연합군에 항복하러 가던 길에 프리츠X를 얻어맞고 침몰해 버렸다.[2] 포신길이/포 직경[3] 2기 삭제, 상기사항은 자매함별로 상이할 수 있음.[4] 1926~27년 근대화 개장에서 4기 증설뒤 40년 개장에서 전부 삭제, 상기사항은 자매함별로 상이할수 있음.[5] 1940년 개장 시 증설.[6] 이건 영국 해군이 경량 고속탄으로 관통 성능을 높이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포를 설계했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다.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반영했다고는 하는데 거나한 실수였던 셈. 정 반대의 컨셉을 잡은 미 해군의 16인치 함포들은 1,224kg짜리 초중량탄을 운용하여 탄속과 사거리를 일부 희생한 대신에 일부 구간에서 18인치에 맞먹는 무지막지한 관통 성능을 자랑했다. 영국도 뒤늦게 실수를 깨닫기는 했는데 주포의 설계를 변경하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이라 반영되지 못했고 KGV급에 가서 실수를 바로잡게 된다.[7] 휘장은 왕관이 올려진 꽃과 '엘리자베스'의 이니셜인 'ER'[8] 퀸 엘리자베스급 고속전함 만으로 이루어진 전대로,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그 고속을 살려 순양전함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화력을 투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9] 배에 폭탄을 설치하다 영국군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았는데 이때 승무원이 5분 후 이 배는 폭발합니다. 라고 말했고 배 안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이 공격으로 동지중해의 재해권을 상실할 뻔했다.[10] 휘장은 대포[11] 휘장은 포효하는 수탉[12] 휘장은 왕관을 목에 걸친 용[13] (1913.2.22~2000.8.17) 이 사람은 의외로 특이한데 전쟁 후 1951년 캐나다로 망명하여 87세로 죽을 때까지 49년동안 목수와 자연사진작가 일을 하며 살았다. 자신의 생애의 절반 이상을 캐나다에서 보낸 셈.[14] 이 잠수함 역시 1942년 12월 17일에 지중해에서 작전중 대잠망에 발각돼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침몰하게 된다.[15] 비슷한 예로 초 거대 수상 호텔 역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고 옆으로 기울어 승조원 4,242명이 사망했다.[16] 수백 명이 한꺼번에 죽는 장면이 담긴 영상임을 유의할 것[17] 휘장은 단검을 든 호랑이[18] '말라야 연합주(Federated Malaya States)', '말라야 비연합주(Unfederated Malaya States)', '해협식민지(Strait Settlements)'의 3개 식민지를 일괄적으로 부르는 명칭이다. 1946년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이들은 말라야 연합이라는 하나의 식민지로 통합되었다.[19] 이름이 안습한 게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가 G4M 베티 편대에게 말레이에서 털린 것을 고려하면...... 물론 함선에 이름을 처음 붙일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20] 휘장은 영양[21] 캐슬형 함교는 함체업을 해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