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

 


'''尹瑄'''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삼국시대의 호족. 태봉 ~ 고려 초기 삭주 삭정군(朔庭郡)[1] 골암성(鶻巖城)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이뤘던 인물이다.

2. 생애


염주(塩州)[2] 출신으로 후삼국시대 초기에는 태평과 함께 유긍순의 휘하에 있었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용맹했으며 병법에도 밝았다. 궁예가 사람 죽이는데 만족하지 못하자 화가 자기에 미칠까 우려한 윤선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북쪽 변방으로 달아났다.
그는 2,000여명의 무리를 모아 골암성에 주둔하면서 흑수말갈[3][4]의 무리를 불러모았으며 또 변방 군현들을 노략질하기도 했는데, 918년 6월 정변으로 궁예 정권이 왕건에게 붕괴된 이후인 동년 8월 무리를 이끌고 고려에 항복했다고 한다.

3. 기타


920년 골암성 지역에 유금필이 파견되어 축성한 기사를 미뤄보면 윤선은 고려 경내로 완전히 귀부했거나 세력이 해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동시대 염주에서 활동했던 인물로는 유긍순, 유긍순의 기실(記室)이었다가 고려 건국에 참여한 태평이 있다.

[1]북한 강원도(북한) 안변군.[2]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로 비정. 통일신라한주 해고군(海皐郡)이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염주로 불렸다.[3] 실제 흑수말갈이 발해 남부까지 남하한 것인지, 고려와 접경했던 야인여진을 흑수말갈로 기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4] 이미 발해의 남부 함경도 지역 통제력은 9세기 후반부터 와해되고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886년 신라 헌강왕 재위기간에 신라 동북방의 말갈인들이 흑수국, 보로국이란 나라를 자칭하고, 발해를 거치지 않고 신라와 독자적으로 외교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윤선이 흑수말갈을 끌어들인 것을 거쳐 이후 923년자 기록에 골암진에 계속 북번이 위협을 해온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발해 관련 기록이 부족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발해 멸망 수십 년 이전 시점부터 발해 역시 신라 말기와 비슷하게 쇠퇴하고 있었고 특히 변방의 말갈족 세력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