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술

 


대한민국 제7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윤제술
尹濟述 | Yun Je-sul

<colbgcolor=#580009><colcolor=#CFA547> '''출생'''
1904년 1월 29일
전라북도 김제군 백산면
(現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사망'''
1986년 7월 24일 (향년 82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자택
'''묘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양청마을
'''본관'''
파평 윤씨
'''호'''
운재(芸齋)
'''재임기간'''
제7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1967년 7월 10일 ~ 1969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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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80009><colcolor=#cfa547> '''학력'''
남성중학교 (졸업)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 / 학사)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3''', '''4''', '''5''', '''6''', '''7'''
'''경력'''
제3~5대 국회의원 (김제군 을)
제6~8대 국회의원 (서울 서대문구 갑)
제7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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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서예가.

2. 생애


1904년 전라북도 김제군 백산면에서 태어났다. 서울중동중학교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익산시 남성중학교, 남성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김제군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4대,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당시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1968년부터 1970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대문구 병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진산 노선에 반발하여 신민당을 탈당하고 민주통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대문구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친야 무소속 김재광 후보와 민주공화당 오유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서예에 전념하였다.
1986년 7월 24일에 서울 종로구 누상동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82세.

3. 여담


서예와 관련해서 1968년 콘크리트 광화문 현판식 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이름난 서예 전문가답게 현판을 보고는 냅다 '''"아니 어느 놈이 저걸 글씨라고 썼냐!"'''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옆에 있던 동료 정치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통령을 가리키자 또 큰 소리로 "아, 그래도 뼈대 하나는 살아 있는 글이구먼!"이라고 했다고.[1]

[1] 서예가들은 박정희의 붓글씨에 대해서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나름 본인의 성격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필법이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