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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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고등학교'''
'''Namsung High School'''
南星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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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946년 3월 5일
(6년제 남성중학교[1]),
1951년 8월 27일
(중고등학교 분리)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
'''운영형태'''
사립
'''학교법인'''
남성학원
'''교장'''
강인상
'''교감'''
황호준
'''교원수'''
68명 (2019)
'''학생수'''
847명[2](2019)
'''관할 교육청'''
전라북도교육청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동서로35길 41-4 (신동)

1. 개요
2. 역사
2.1. 연혁
3. 시설
3.1. 본관
3.2. 경춘당
3.3. 유성당
3.4. 일성당(기숙사)
3.4.1. 서관(신관)
3.4.2. 동관(구관)
3.5. 과학관
3.6. 보영당
3.7. 체육관
4. 시정표
5. 문화
6. 교가
7. 배구부
8. 교호
9. 자율학습
10. 보충학습
11.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
12. 사건·사고
1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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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이카치 파이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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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고등학교 교호 中[3]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위치한 일반계 남자고등학교. 후술하겠지만 학교 이름의 '남성'은 남자고등학교인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엮인다. 같은 재단의 학교로 남성중학교, 이리남성여자중학교, 이리남성여자고등학교가 있는데, '남성여고'를 듣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남성재단의 '남성'은 '''男性'''이 아니라 '''南星'''이다.[4] 물론 이름답게 진짜로 남학교이기는 하다. 전북에 위치한 남성중학교도 남학교이다.
2000년 전까지는 여성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홍보자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주입시킨다. 이러한 자부심 고취의 일환으로 90년대부터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오영우 전 1군사령관 등 동문들을 초청해 특강을 하기도 했다.

2. 역사


1946년 화성학원이 설립되면서 남성중학교로 개교하였다. 이 지역 부호인 백인기의 부인 이윤성이 설립하였다. 1951년에 학제 개편(중학교와 고등학교 분리)으로 동명의 중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이후 이리역 폭발사고로 구 교사가 파손되어 지금의 소라산 부근으로 1980년에 이전했다. 이후 남성여중과 남성여고가 잠시 구 교사를 사용하다가 두 학교 모두 1985년에 완전히 소라산의 통합캠퍼스로 이전하였고, 구 교사는 헐려서 해당 위치에 현재의 남성맨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구 교사에 남성국민학교도 있었으나 소라산으로 가지 않고 폐교되었다.
1989년에 손태희 이사장이 취임했고, 2010년 자율형 사립고 인가를 받았다. 2015년 자율형사립고 재지정을 받았다.
2019년 신입생 감소로 인한 재정상 이유로 자사고 지위를 반환한 것으로 보인다.[5] 이 경우 2020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일반고 체제가 되며, '''72회까지의 재학생은 자사고 체제가 유지된다.'''

2.1.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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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설


같은 재단의 남성중학교, 이리남성여자중학교, 이리남성여자고등학교와 캠퍼스를 공유한다. 무려 4개교가 한 부지 안에 있어, 캠퍼스가 상당히 크다.
  • 본래 남성고등학교 본관 건물 앞에 길은 신동 방향으로 나 있던 후문과 영등동 방향의 쪽문으로 연결되어 시민들이 영등동과 신동을 왕래 할 때 이용하던 공공도로의 성격을 띠었다. 이 길로 인해 시민들은 영등 주공아파트나 신동초등학교 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으나 학교를 관통하는 길이며 이로인해 면학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신동방향 후문이 폐쇄 되었다. 이 때문에 후문에 있던 분식집, 서점, 독서실등의 상권이 전부 죽어버렸다.
  • 이제는 안전상의 이유로 영등동 방향 후문마저 폐쇄한다고 한다.[6] 19년 10월 현재 학생과 교사들의 반대가 만만찮음에도 강행했다.
  • 요즈음 고등학교들과 달리 가로 150m 세로 20m를 넘는 넓은 운동장이 2개나 있고,[7] 거기에 전교생(약1000명)이 넉넉하게 들어갈 만한 강당을 보유 중이다.
  • 교사 주변에는 높은 콘크리트담과 그 위에 철조망을 설치하여 외부인이 보면 흡사 교도소 같다.[8] 64회부터 자율형사립고로 변경되어 교복 또한 예전의 죄수복스러운 교복에서 변경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좀 덜하다는 재학생들의 평. 변경전 하복은 영화 검사외전에 나오는 죄수복과 색감/디자인이 매우 유사했었다. 상의는 영화와 다른 선명한 군청색.[9] 동복은 흰색 폴라티에 남색 자켓 그리고 회색 바지로 평범한 편이었다. 그러나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될 무렵에 교복이 바뀌었는데, 지금의 교복은 재학생들마저 익산에서 비교적 세련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 자율형 사립고 지정을 받고 교복을 바꾸기 위해 전국 교복사의 모든 디자인을[10] 가져다 학생회와 선생님들이 투표해서 1차적으로 선별하고, 이후 전교생이 투표에 참여해 근소한 차이로 현재 디자인의 교복이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본교 미술 교사가 학교 로고를 디자인 해서 가슴 주머니 부분에 부착하여 지금의 교복이 되었다.[11]

  • 기숙사가 무려 3개관이나 되며 다합처셔 700명 이상 수용가능하다.[12] 2016년 중학교 체육관 반지하를 개조하여 3관 1층으로 이용하고있다.
  • 교사 주변에 가로수와 선배들이 모교 방문 기념으로 식수한 나무들로 정글을 이루고 있다.
  • 학교이름이 남성인 만큼 별을 좋아해서 건물이름에 '성'이 많이 들어간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기분 탓이다. 진짜 星이 들어간 건물은 일성당 하나. 유성당의 한자표기는 惟堂이다.

3.1. 본관


2015년 기준으로 5층 건물이다. 건축당시에는 외벽일부가 노란색 타일로 덮인 형태였으나 현재는 타일 부분을 스톤코트로 시공하여 분홍빛이 살짝 도는[13] 현재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 각층에는 홈베이스라 불리는 학생들의 사물함을 모아놓은 공간과 교실, 각 학년 교무실로 이루어져있으며[14] 2층은 교무센터, 행정실, 교장실 등 주요 행정/교무시설이 모여있으며 무촉실이라는 넓은 자습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매점이 지하에 존재한다. 매점과 1층 사이에는 농협 ATM기기가 있으며, 카드, 통장 모두 사용 가능하다. 이용 시간[15] 에 학생증을 ATM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 교감 또한 이를 언급하며 현찰을 최소한으로 가지고 다닐 것을 강조하고 있다.
  • 매년 약간 유동적이기는 하나 1,3층은 1학년, 3,4층은 2학년, 4,5층은 3학년이 쓰는데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3학년들은 특히 죽을 맛. 전교 건물에 전반적으로 촘촘하게 CCTV가 설치되어 있으나 누구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다시 돌려보기도 귀찮아서 별 쓸모는 없다. CCTV 중 빈껍데기뿐인 가짜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알려졌으나 일단 본관, 기숙사 CCTV는 진짜이다. [16]
  • 학생들의 자율학습실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기에 2014년, 1층의 자전거 주차장 옆 빈 공간을 홈베이스로 개조하고 2층의 원래의 홈베이스 자리에 넓은 다목적실을 만드는 계획이 잡히고 시작되어 2015년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전에 완료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무촉실이 생겼다. 이전에 이 빈 공간은 학생들이 족구등의 구기종목을 자주 즐기는 곳이었다. 옆에 주차된 차량에 손상을 입히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교무실이 바로 위라 소음이 커서 교사들에게는 이와같은 행동이 긍정적이지는 않았다.[17]
  • 무촉실에서 아침/점심/저녁시간에 와이파이를 틀어주지만 학교 와이파이는 시간 제한이 있는데다가 전혀 빠른 편이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많이들 에그를 가지고 다닌다.
  • 본관 양 옆과 중앙에는 각각 계단이 존재한다. 동편과 서편의 총 계단 수가 한두 칸 차이가 난다. 2015년 솔밭안 축제에서 교사들의 깜짝 퀴즈 코너에 프랑스어 교사의 문제로 동편과 서편의 계단수가 나왔다. [18]
  • 계단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곳은 양쪽 계단 모두 철제 셔터로 막혀 있다. 가끔씩 열려있을 때가 있다. 지하로 내려가 확인해본 결과 상수도관, 사용하지 않는 의자들, 이전 수능 문제지들과 답안지들[19], 탁구대, 펜싱용 칼, 오래된 브라운관 컴퓨터 모니터 등 각종 잡동사니가 쌓여있다. 예전에 교무실에서 사용한듯한 데스크의 서랍을 열면 압수한 뒤 방치해 놓은것으로 추정되는 2000년대 초의 휴대폰이 있기도 한다. 관심있는 학생은 쉬는 시간마다 확인해보자. 양쪽 열려있는 날이 있을것이다. 14년도 즈음에는 탁구대를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셔터 열쇠를 행정실에서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15년도부터는 탁구대 자체가 사라져서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운이 정말 억세게 없어서 나오지 못하고 갇힐 가능성도 있는데, 서편 지하의 경우라면 매점이 서편 지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편의 경우라면 방법이 없다. 그냥 누가 듣기를 바래며 철제 셔터 위치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수 밖에. 다만 전자의 경우는 매점 창고쪽을 통해 나오는 것이니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고, 후자의 경우는 교무실에 불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상상에 맡긴다. 오래있지 말고 금방금방 나오자.[20]
  • 중앙 5층 계단과 양쪽 계단 꼭대기에 모두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이 있다. 그러나 양쪽 계단은 나사로 봉쇄되어 출입이 아예 불가능하고,[21] 중앙 계단은 5층 교무실에 키가 있긴 한데, 은신 잠입 액션씬 찍고싶은 생각 없으면 건드리지 않는게 당연히 신상에 좋다. 15년 기준으로 5층교무실의 교사들이 커피를 마시고 흡연을 하러 자주 문을 열고 올라갈 때가 있었는데, 내려올때 문을 재깍재깍 잠그지 않아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옥상에 머무를 수 있었다. 관련내용이 교지 30호 78쪽에 실려있다. 19년 기준으로는 아예 문을 잠그지 않고, 국토순례 현수막으로만 가려놓았다. 흡연을 위해 교사들이 자주 들락날락한다.
  • 옥상에는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 8개, 피뢰침, 그리고 예전에 굴뚝으로 사용했던 듯한 구조물이 존재한다. 가장자리에는 명치보다 살짝 낮은 높이의 벽이 있어 떨어질 위험은 없다. 다만 옥상 가장자리의 바닥은 외벽에 ㄱ자로 붙어있는 형태의 공간이라, 이를 알아차린 순간 가장자리 근처에 가는것이 망설여질 것이다.
  • 높이는 굉장히 높아서 경치는 매우 좋다. 남고 부지 자체도 익산 지리중 고지대에 위치하고, 건물 자체 높이도 5층답지 않게 상당하기 때문. 남중, 여고에 가려진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곳을 볼 수 있으며, 각도를 잘 잡으면 학교앞 서점 거리부터 저 멀리 비사벌아파트 앞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 모현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도 보이고, 맑은날에는 모악산 정상까지 볼 수 있다. 미륵산은 늘 보이고.

3.2. 경춘당


과거에는 고3들을 위한 별도의 기숙사 건물이었다. 90년대 중반쯤에는 옛 도서관 및 창고로 쓰던 1층 공간을 개조해 근 30명씩 끼어서 생활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특강도 이곳에서 실시했었고, 수능이 임박하면 정기 야자가 9시반에 끝난후 12시까지 심야 자율학습을 실시 했었다. 지금은 그냥 잡건물. 1층에는 좌석이 구비된 학생회의실과 컴퓨터실, 안쓰는 교실이 있고 2층에는 간간히 특별수업에 쓰는 교실들[22], 3~4층은 기숙사생 전용 열람실이 구비되어 있다.[23]
  • 본관 2층과 구름사다리로 이어져 있고, 구석에 위치한 건물이라 적막해 보인다. 몇몇 수업은 사람이 많아 경춘당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 건물 뒤에 붙은 창고 비스무리한 작은 건물이 있는데, 스크린 골프장이다. [24]
  • 95년까지는 매점이 경춘당에 있었으나 리모델링 후에는 현재의 본관 지하로 이전.


3.3. 유성당


대략 300~400명정도 수용가능한 강당이다. 모두 좌석으로 되어 있으며 강연이나 입학설명회등에 사용된다. 남성고 입학 면접을 보기 전에 여기에서 대기한다. 기숙사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이곳에서 단체 영화 관람을 하기도하며, 학년단위로 전달사항이 있을 때도 사용된다.
90년대 중반 대형 스크린 프로젝터가 설치된 이래로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방송보다 일본위성티비가 화면이 더 깨끗해서 화면은 일본방송 음성은 한국방송으로 듣기도 했었다.[25] 이때는 현재와 분위기가 달라서 기숙사 간식을 아예 유성당으로 가져와서 먹기도 하였다. 이후에 교감의 주도로 2014년 FIFA 월드컵 대한민국 vs 러시아 경기 도 시청하였고, 2016년 1월 30일 올림픽 예선 결승경기때도 당일 2관 사감의 주도 하에 '''치킨을''' 먹으면서 시청할 수 있었는데 같은날 3관 사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관 사감의 "제가 책임집니다" 라는 발언으로 인하여 가능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스페인전 당시에는 그냥 학교를 일찍 끝내주어 기숙사생도 외출이 가능했다.

3.4. 일성당(기숙사)


1학년과 2학년들의 기숙사 였으며, 1층에서는 2000년 처음 실시된 1학년들의 컴퓨터 수업 교실이 있었다. 당시 2학년은 학교건물 4층에서 실시 했다. 3학년은 별도도 경춘당에서 관리했었다. 기숙사 감시는 예나 지금이나 철두철미해서 2층과 3층 출입문에 싸인된 종이를 붙여놔 통행을 감시하던 사감도 있었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교생의 70%이상이 기숙사생이다보니 상당히 크다. 총사감이 존재하고 각 학년별로 담당 사감이 있으나, 이들이 기숙사에 상주하는것이 아니라 다른 교사들과 돌아가며 기숙사에서 숙직한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잔업무는 기숙사 위원들이 처리하는 편.
기숙사는 90년대 지어진 구관(1관)과 최근에 지어진 신관(2,3관)으로 나뉜다. 구관은 본관 정문기준 우측에 존재하며 신관은 좌측에 존재한다. 신,구관 관계없이가끔 절수가 되는데 이는 물을 다 사용해서라고. 학교에서는 물탱크를 증설했다고 매번 말하지만 아직도 잊을만 하면 절수가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때는 찬물밖에 안나오고 어떤때는 체감온도 7~80도의 뜨거운 물밖에 안나온다. 참고로 방마다 난방시설이 있고 지하실에 난방기가 있는것으로 보아 중앙난방식인듯 하다. 한여름에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추워서 보일러를 틀고 이불을 덮는 멸망직전의 폼페이 같은 생활을 했던적도 있었다.
감시체제가 정말 촘촘하다. 방 안, 화장실, 계단을 제외한 모든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리고 모든 CCTV는 사감실에서 실시간으로감시할 수 있으며, 최대 24시간동안의 일을 되돌려 볼 수 있다[26].
경춘당과 함께 cctv를 교체하였고 추가로 HDD를 교체하였다. 2관의 경우 2주가량 녹화가 가능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데, '''기숙사 내에서 일체의 취식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특히 냄새를 많이 풍기는 음식에 대한 제제가 엄격하다. 이에 따라 과자류는 대부분 알고도 넘어가는데, 컵라면, 심지어 '''치킨'''등을 먹는 경우에는 얄짤없다. 벌점은 기본이요, 사감에 따라 기합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학교도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서 학생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따라 2관과 3관 입구 사이의 공간에 휴게실을 만들었다.
이제는 열람 후 휴게실에서의 취식마저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2, 3관 학생들이 ''' 생각하는 사람 동상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선 채로''' 라면을 먹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게 되었다. 휴게실은 저녁시간에 배달 음식을 먹거나 풀열람날에 배달 음식 먹는 장소로 전락했다.

3.4.1. 서관(신관)


  • 자사고 지정을 위해 새로 지은 건물. 이후 기숙사 생활 인원이 많아지자 열람실 및 도서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증축했다. 처음에 지어진 건물을 2관[27]이라 부르고 나중에 리모델링한 건물을 3관이라 부르며, 두 건물은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다. 그동안 미술관으로 쓰이던 3관 반지하층까지[28] 기숙사로 개조하여 16년 2월 말부터 운영중이다. 1층이지만 사실상 반지하였던 공간을 개조하여 이용중인만큼 현재 가장 평이 좋지 않다.[29]
  • 3관 2~4층과 2관은 두 명의 전담 사감이 각각 관리한다.[30]
  • 3관은 층마다 샤워실이 있어서, 한 번에 최대 12명이 들어갈 수 있다.[31] 2관은 샤워실이 따로 없고, 방마다 있는 화장실에 샤워기가 하나씩 달려있다.
  • 모든 방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3학년은 배정되지 않고[32] 1~2학년이 같이 사용한다. 방은 4인실(2관), 8인실(3관), 10인실(3관 1층)이 있다. 하지만 10인실의 경우 침대 2개를 사용하지 않고 7~8명이 방을 쓴다. 4인실은 2학년 2명, 1학년 2명, 8인실은 2학년 4명, 1학년 4명, 10인실은 2학년 4명, 1학년 4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17학년도 10월에 학년별로 방이 구성됨으로써 저 비율은 깨지게 되었다. 2층 침대의 1층 자리는 거의 상급생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33]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현상이 불문율같은건 아니고, 신입생들이 방을 배정받기 전에 이미 상주하고 있던 상급생들이 좋은자리를 다 먹는 것.
  • 3관 사감실에서하는 방송은 2관에 들리지 않지만 2관 사감실 방송은 3관에 들리도록 할 수 있다. 즉, 2관 사감이 신관 전체 사감인 셈. 하지만 2관 사감실에서 3관에 방송을 하는경우 그곳의 관리권을 침해하는 일이라 정말 가끔씩만 방송을 한다.

3.4.2. 동관(구관)


예전에 기숙사로 쓰던 경춘당의 수용인원을 감당할 수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93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다. 당시 비평준화시절 호남 전지역 및 심지어는 서울에서까지 지원한 학생들을[34] 집에서 통학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이들을 수용해야 했는데 경춘당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유성당이 지어진 이후에도 1인당 확보공간이 군대보다도 열악했었다.
3학년 기숙사생들 2/3 가량이 이 구관에서 지내며,[35]오래되고 주변에 나무가 많다보니 각종 벌레가 많다. 돈벌레도 많고 바퀴벌레도 많다. 2층과 4층에 열람실이 있으나, 3학년들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기 때문에 사용시간은 하루에 1시간 정도이고 그 후 추가 심야열람을 통해 새벽 1시까지 이용가능하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경보 발효중이였을 때 '''지붕 위에 덮여 있는 타일이 날아가서''' 기숙사생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밖으로 나가, pc방, 200냥하우스, 노래방 등으로 향했다는 뒷이야기도 존재한다.
2014년 창고로 쓰던 1층을 개조하여 방을 더 만들었다.[36] 아무래도 최근에 시공해서 그런지 화장실이며 샤워실이 최신식으로 그나마 좋다.
70회 기준, 전 층을 3학년이 쓴다. 열람실은 2층과 4층에 각각 존재하는데 4층 열람실중 한 줄을 2학년이 쓰고 나머지는 3학년이 쓴다. 샤워실에 사람이 몰리면 물이 무진장 약하게 나오고 물이 끊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물이 끊기면 보통 '''학교 화장실이나 2,3관에 가서 머리를 감거나 세면을 한다. ''' [37] 1층에는 학습용도로 컴퓨터 5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제대로 작동되는 건 별로 없으며 심지어 작동되는 것도 인터넷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복도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한데 걸어다니면 방 안이 울린다. 그래서 누워있으면 밖에 얼마나 무거운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지 알수 있다.
사물함 종류는 2가지인데 하나는 예전부터 존재해온 사물함과 하나는 디지털식 비밀번호 사물함이다. 디지털식 사물함은 1층과 2층 3개방에만 존재한다.
구관 옆에 붙은 건물에서 배구부가 합숙생활을 하며 훈련하고 있다.
예전에는 급식실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 출구가 배구부실 이었는데 그 시간이 7시 뉴스 끝무렵 스포츠 뉴스시간이라서 늘 TV에 목마른 학생들이 멀찍이서 보기도 하였다.

3.5. 과학관


  • 1층에는 급식실, 2ㆍ3층에는 과학교과실과 컴퓨터실, 4층에 음악실, 5층에 미술실이 있다. 2015년 기준으로 경춘당 1관에 컴퓨터실이 신설되었는데 과학관과는 별개로 신설되었다. 과학관 컴퓨터실을 앞으로 사용할지는 미지수. 아마 편리성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과학관 컴퓨터실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과학관은 역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신설된 컴퓨터실의 컴퓨터는 과학관에서 뜯어간 것.
  • 본관 건물보다 미묘하게 높다. 그리고 본관과 거리가 약간 있기 때문에 수업이 들었을 때 상당히 귀찮기도 하다. 특히 미술시간이 그렇다. 게다가 쉬는 시간이 10분인 점을 감안하면 빠듯하기도 하다.
  • 5층 미술실은 수업하는 공간이 있고, 나무 문으로 연결된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 내부가 상당히 크다.[38] 때문에 야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불이 켜져 있는 일이 자주 있다.

3.6. 보영당


정확히는 남성고등학교 건물이 아닌 남성재단 건물이다. 이곳에서는 소규모 세미나실 및 재단 사무실등이 있다. 1층의 절반을 도서관으로 쓰고있다. 워낙 건물이 구석진데 있고 재단 사무실 건물이다보니 '''3학년이 되었는데도 학교도서관이 존재함을 알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 구석진 곳에 가보면 소량이긴 하지만 195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책을 구경할 수 있다. 가끔 47년이라 작성된 고문서도 나온다. 1층을 개조해 도서관을 만들기 전 경춘당에 보관해오던 책자들로 추정.[39]
도서관은 원래 본관 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96년쯤에 학교환경정비의 일환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디지털 컬러OHP를 갖춘 첨단 학습실등 기타 새로운 시설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같이 마련된 것. 이 도서관이 일성당 3관 5층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이전하여 현재는 보영당 1층에 위치하고 있는것.
2016년 현재는 일성당 서관에 기숙사 4관 신축을 위해 남성예술관에 전시되었던 작품들등 기타 잡다한 물품을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는 관계로 운영은 중지된 상태이다. 정규 동아리 명단에 도서부인 '라임'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운영을 재개하기는 할 듯 하다. 5월 말경에 드디어 운영이 재개되었다. 책 대출을 위해서는 학생증이 필수이며, 대출기간은 2주, 1인당 2권까지다.

3.7. 체육관


국제 배구 규격에 맟춘 배구 코트, 소규모 헬스장, 약 800명 정도 수용가능한 2층 스탠드, 대규모 단상등이 갖춰져있다.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고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전북권 여고에서 전지훈련을 와서 남성중과 시합을 할 때가 있다. [40]
  • 과거에 유도로 유명했던 학교답게 3층에 유도장이 있는데,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유도장이 폐쇄되었다.
  • 과학관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3층에 음악실이 위치하였으며 이 때문에 당시에는 2층의 후면 관람석이 주로 음악실기 연습장이 되곤 하였다.
  • 올림픽기가 전면에 달려있는데, 본교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교사에 따르면 서울 올림픽을 맞아 대대적으로 생활 체육 시설을 만들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 건설된 것이라 그렇다 한다.
  • 또한 유도장을 점심시간/시험기간중 재학생들이 멋대로 풋살장으로 사용했었다. 이 유도장 한쪽 벽에는 대형 거울이 있는데, 학생들이 풋살을 하면서 날린 슛에 가끔 깨지기도 하는 모양[41].
  •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때는 보통 이 건물 앞에서 받는다. 급식메뉴가 가끔 형편없는 날에는 체육관 앞이 북적댄다.[42] 한번은 오토바이만 열몇대, 경차도 2대 온 적도. 이곳이 정문에서 일직선으로 들어오면 바로인데다가 주정차하기도 좋은 위치라 더욱 그러하다. 같은 이유로 스쿨버스등도 이곳에서 정차한다.
  • 체육관이지만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입학식, 졸업식 등의 대규모 행사에 주로 이용된다.
  • 현재 전국 체전을 맞아 천장을 공사했다. 깔끔해졌다.

4. 시정표


시험기간 등의 사유로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나(토요일, 주중공휴일), 보편적으로 이 시정을 따라간다.
토요일에 아래 시간표대로 자습하는 것은 3학년이다. 1, 2학년은 토요일 아침에 바로 귀가한다.
<color=#373a3c> 평일

<color=#373a3c> 토요일

<color=#373a3c> 주중공휴일
시간
일정
시간
일정
시간
일정
6:40~7:30
기상&점호/퇴실
7:00~7:50
기상 및 인원점검
7:00~7:50
기상 및 인원점검
7:40~8:20
아침 자율학습(비기생은 등교)
8:20~10:10
토요 자습 1교시
7:50~8:30
아침식사
8:20~8:40
청소
10:40~12:30
토요 자습 2교시
8:30~10:00
열람 1교시
8:40~9:30
1교시
12:30~13:30
점심식사
10:30~12:00
열람 2교시
9:40~10:30
2교시
13:30~15:30
토요 자습 3교시
12:00~14:00
'''점심식사'''
10:40~11:30
3교시
16:00~18:00
토요 자습 4교시
14:00~16:00
열람 3교시
11:40~12:30
4교시


16:30~18:00
열람 4교시
12:30~13:30
'''점심식사'''


18:00~20:00
'''저녁식사'''
13:30~14:20
5교시


20:00~21:30
열람 5교시
14:30~15:20
6교시


22:00~23:30
열람 6교시
15:40~16:30
7교시


23:30~23:55
세면 및 취침준비
16:40~17:30
8교시
(보충학습)


24:00~
취침
17:30~18:40
''' 저녁식사'''




18:40~19:50
야자 1교시




20:10~21:40
야자 2교시




22:00~23:30
야간 열람
(비기생은 하교)




24:00~25:00
심야 자율학습




주중공휴일의 구체적인 시정은(특히 시험기간 중에)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체적인 것은 기숙사에 붙는 일정표를 참고하도록 하자.
예전에는 7시 30분터 8시20분까지 0교시가 있었던적도 있었다. 교육부에서 0교시를 제한하자 0교시를 1교시로 바꾸어 오전에 무려 5교시가 끝나는 멋진모습도 보여주었다. 감탄이 절로 나로는 정말 머리가 좋은 학교다.
19학년도 들어 시정표를 바꾸었다. 6교시와 7교시 사이에 쉬는시간이 20분이 되고, 열람 후 점호까지 개인시간이 늘어서 학생들은 나름 좋아하는 편.
영등동 방면 쪽문 폐쇄에 상응하여 저녁시간이 20분 늘게 되었다.

5. 문화


어느 남고나 그렇듯이 체육대회에 목숨을 건다. 사실 자율학습에 찌든 남고생들에겐 체육대회는 일상의 청량제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체육대회때 각 반마다 학생들이 디자인 한 반티를 맞추어 입는 것이 나름의 관례였다. 현재는 3학년, 2학년, 1학년 순서대로 중복없이 반티를 골라서 입는데 마지막에 골라야 할 1학년에게는 퀄리티 좋은 반티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축구 유니폼을 입는다.
솔밭안 축제라는 축제가 존재한다. 지금은 동아리 경진대회와 축제가 분리되었다.
넥타이 색이 학년별로 다르다. 예를들어 1학년 때 노란색 넥타이를 착용하였다면, 졸업할 때 까지 쭉 같은 색깔의 넥타이를 착용하는 방식인데, 이것으로 학년을 구분할 수 있다.[43] 2020학년도 기준으로 1학년(73기)은 붉은색, 2학년(72기)은 노란색, 3학년(71기)은 초록색이다.
졸업식에는 오래전부터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사모와 학사복을 씌우고 거행하는 문화가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면 학생들 모두가 학사모를 공중에 던지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고등학교 졸업식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교복의 명찰 역시 한문으로 되어있었다. 간혹 체벌을 할때나 이름을 적을때 "너 이름이 뭐여" 하고 물어서 명찰을 보여주면 시선을 회피하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교사도 있었다. 반면 몇몇 한자에 능통한 교사들은 학생들의 한자이름을 막힘없이 읽어버려서 학생들이 명찰을 가리기도 했다.[44]

6. 교가


[image]
남성학원 교가라고 보면 된다. 중학교, 여중, 여고 교가이기도 하며, 폐교된 국민학생들도 불렀다. 2번째 음악시간 까지는 주로 교가를 배우게 된다.

7. 배구부


남성고등학교의 배구부는 정말 유명하다.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전국단위 배구대회에서 매번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45] 프로 배구 선수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문일고등학교 배구부와는 매우 교류가 잦은데, 선수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감독끼리 사귀는 게 분명하다며 놀리곤 한다.
학교 배구부가 인근지역에서 대회 경기를 치를 때면 종종 스쿨버스를 타고 3학년을 제외한 학생들이 응원을 가기도 했다.
V리그의 스타이자 현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인 신진식이 이 학교 출신이며, 모교를 방문해 체육관 관람석 후배들게 싸인볼을 스매싱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감독 김철수, 전 국가대표 리베로 이호, 삼성화재의 국가대표 레프트 송희채, 한전의 리베로 오재성[46]등 남자 배구계에 남성고 출신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남성고 배구부가 3:2로 우승을 하였다.

8. 교호


1971년 봄에 '모교 재학생들의 젊은이다운 기백을 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으로 교사 오종록이 제안하여 1971년 6월 14일에 완성되었다.

파이카치 파이톤

카치무치 호치카

파이카치 파이톤

카치무치 호치카

홀 카치 파이 카치 남성남성

홀 카치 파이 카치 남성남성

교호제정의 원칙

1. 발음이 강하고, 멀리까지 똑똑히 들려야 한다.

(거센자음 : ㅊ, ㅋ, ㅌ, ㅍ, ㅎ)

2. 부드러운 자음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야 한다.

(부드러운 자음 : ㅁ, ㄴ, ㅇ, ㄹ)

3. 밝은 어감을 가져야 한다.

(양성모음과 중성모음 : ㅏ, ㅗ, ㅣ)

4.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교호의 유래와 어원

1. 멕시코 원주민의 언어 첼탈(Tzeltal)어에 기원

(첼탈 민족은 고대에 마야 문명을 일으킨 신화적 민족의 후예)

2. pam(쓰러뜨린다. 때려 눕히다), cik(불타다), katim(뜨겁게 하다),

muk(커다랗다), ip(강력한 힘), ton(돌멩이), wic(높은 산, 언덕),

hol(우두머리)

→ pa(파), ka(카), ci(치), ton(톤), hol(홀), mu(무), i(이)를 취함

졸업식 등 각종 공식 행사에 들어갈뿐만 아니라, 체육시간 끝날 때 같은 일상적인 때에도 많이 외친다. 졸업생들도 나이에 관계 없이 동문을 만나면 교호부터 외치는 웃지못할 상황이 발생할만큼 교호는 학교를 대표하는 상징이다.[47]

46회~50회 재학생들 사이에 '취이이...'라는 비공식 교호가 있었는데, 강당에 모여 있을때 학생을 너무 쪼거나 불합리한 지시를 하거나 하면 항의의 표시로 전교생이 입으로 '취이이...' 소리를 내곤 했다. '야 이놈들아 그만해' 정도의 의미. 교사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행위인데 왜인지 이에 대한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심지어 교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어느정도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학생의 자유를 완전히 억압하는 행위들도 있었기 때문[48]에 학생들의 약간의 반항을 용인해주었을 것이라 추정.

9. 자율학습


  • 야자가 길기로 유명하다. 익산내 다른 학교들은 2학년때까지는 10시 이전에 끝나지만 남성고는 1학년때부터 10시 40분까지 한다. 심지어 기숙사생들은 기숙사 들어가서 1시간 더한다. 사실 이것도 2015년부터 줄어든것. 이전까지는 11시30분까지 했다. 95년도에는 1학년 야자가 없었고 96년도부터 전학년 야자를 실시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9시 40분까지로 익산 시내에서 제일 빨리 끝났었다.
  • 시정표를 보면 알겠지만, 9교시를 없애버리는 교장의 파격적인 정책으로 인해 현재는 9시 40분 체제로 회귀했다,
  • 야자시간에 학원을 가는 것은 공식적으로 화, 목요일에만 허용한다.[49] 다만, 어떻게 잘 해보면 다른 요일도 가능한 모양.

  • 자율학습을 최대한 많이 시키려고 노력하는 학교다. 주중 빨간 날=Full 열람이다. 말 그대로 열람실에서 온종일 자율학습만 한다. 사정을 만들어서 외박을 가려고 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이다.
    • 2017년, 수능날과 입학 전형일이 이어지면서 수목금이 죽창 열람파티가 벌어질 뻔했는데 이례적으로 1,2학년 수요일 외박이 성사되었다!
    • 2018년, 태풍 솔릭이 전라북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되어 23일(목) 저녁에 교육청이 도내 초중고 휴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학교 특성상 모두들 기대를 버리고 있었는데 기적처럼 목요외박이 성사되었다!
  • 야자가 끝나면 비기숙사생은 하교하고, 무촉실 신청을 한 사람은 무촉실로 이동해서[50] 기숙사생과 동일하게 11시 50분까지 추가로 자습한다. 열람이 끝나고 1시까지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학생들은 심야 자율학습을 한다.
  • 심야자율학습은 익일 0시 10분~1시까지 진행된다. 경춘당은 기숙사 외의 별도 건물이기에 2,3관 학생이 모두 3관 1층과 5층 열람실을 사용한다.[51] 외박 전날과 외박 복귀일은 심야자율학습이 없다.[52] 시험 전(前) 주 주말은 후술할 철야열람이 개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제외.
  • 시험 며칠 전부터 이른바 '철야 열람'이 개시되어, 심야 자율학습이 새벽 3시까지로 연장된다. 3시 이후에도 냉장고 앞이나 화장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고, 대부분의 사감은(특히 시험 전날) 이것을 용인해준다[53]. 체력만 된다면 정말 원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은 본인이 2관에 거주하더라도 경춘당에서 심야열람을 진행한다. 일단 열람실에 들어오면 1시/2시/3시 정각에만 나갈 수 있으니 주의.[54]
  • 고3이 되면 토요일에도 자율학습을 진행했으며, 일요일에는 종교가 없는 학생들은 8시 30분, 종교가 있는 학생들은 11시까지 등교하여 실시하였다. 고3은 토요일에 등교하여 자율학습을 하는데, 비기생기준 토요일 아침 8시20분~오후 6시. 일요일 오후1시~6시.
  • 68회 학생들은 해당 학년부장의 결정으로 2학년때부터 토요자율학습을 하게 되었다. 해당 학년의 부장 교사가 66회 졸업생들의 수능 결과가 좋지 않자 내놓은 계획이지만 실질적으로 잠만 잔다.[55] 최근에는 학생들의 잠을 보다 못 한 해당 학년의 부장 교사가 체벌[56]을 실시하여 요즘은 상당히 빡세게 자습하는 편.

  • 70회 학생들도 학년부장의 결정으로 토요자습을 하게 되었다. 오전 8시 20분에 시작해 오후 6시까지 자습한다. 오전에는 이과 심화반 특강이 진행된다. 71, 72회는 그런 거 없고 토요일 아침이 되면 칼같이 집으로 사라진다. [57]

10. 보충학습



11.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되었다.

12. 사건·사고


언론에서 보도한 경우에만 서술합니다.
  • 학생들이 오후 자율학습시간 중 바둑을 두고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날붙이를 잡은 적도 있다. SBS뉴스 KBS뉴스(네이버). 영상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노컷뉴스(네이버). 해당 사건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을 알아볼 수 있다. 정확히는 칼을 휘두른 게 아니라 들고있던 칼로 허벅지 뒤쪽에 체벌 비스무리한 행위를 하다 실수로 학생에게 상해를 입힌 것. 네이버 메인에 뉴스로도 뜬 적이 있었다. 우발적 사고였다고는 하지만 실수였든 아니든 교사가 흉기를 손에 들고 체벌을 했다는 자체는 비판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체벌이 아니라 장난이었다고 하지만 교사가 학생에게 날붙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이는 여전히 비판받기 충분한 행동이다.[59]
전국 유일 등굣길 폐쇄형 학교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안정상의 문제로 후문을 폐쇄하였다고 했지만 공사중에 인도를 상용하지 못한점을 감안하면 안정상의 문제로 폐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학생들과 학부모의 강력한 반발에도 후문을 폐쇄함으로써 욕을 많이 먹었다.

13. 여담


  • 남성재단을 설립한 이윤성의 남편인 백인기는 아버지 백남신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인물이다. 백남신은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에 참여한 전북대표 2인 중 한명이다. 또한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1918년에는 일본이 시베리아로 출병했을 때 미곡 4천 석을 군용미로 헌납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 남성재단에 교사들은 재단내의 학교에서 근무지를 바꾸며 근무하기도 한다. 때문에 남성중, 남성고를 졸업할경우 한 교사를 6년동안 보게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 2018년 연세대 입학설명회에서 나온 내용에 따르면, 남성고는 수시로 연세대를 가지 못하니, 정시로 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수시에 중점을 두는 남성고에 큰 타격인 셈.[60]
  • 위에는 다 나열하지 않았지만 익산시에서 남성고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디 있을 자리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역 유명인사들이 많다. 좋게 생각하면 명문이고 다르게 생각하면 "지역의 권력을 꽉 잡고 놓지않는, 매우 좋지않은 고등학교"이다. 그리고 익산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남성고가 익산을 망친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실제로 익산시민들 중에 남성고 출신인 경우 자부심이 지나친 사람들이 있다. 졸업 횟수 운운하면서 선후배 관계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 12월 말에 1학년[61]의 마지막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명목으로[62] 1학년 전체에서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야자를 튀어보겠느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고, 정말로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63]평소의 야자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할 일. 헌데, 하필이면 그날 야자감독 교사가 학년 부장교사였고,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사라진 것을 파악한 후 극대노하여 각 반 담임 교사를 통해 문자메세지 발송으로 소집령을 내렸다. 이에 일부 학생들이 복귀하여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버티고 안 들어온 용자들이 있다. 그 다음 날 그들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학교 뒤편에 500제곱미터 가량의 잔디밭이 있다. 출입금지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잔디보호를 위한 계절에 따른 한시적 조치이고 누구나 산책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학생들도 이곳에서 풋살이나 캐치볼 등을 자주 즐긴다. 교사들도 이곳에서 산책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잔디밭 양쪽 옆 정자에서 배달음식을 먹는 학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 2015년 초가을부터 남성중에서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운동장에 우레탄 트랙/신 농구코트 추가 공사를 시작했다.[64] 이 공사가 착공되기 전 교감이 교육청에 공사를 연기해 달라고 건의를 했지만 겨울이 되면 자재가 얼어버린다는 이유로 고3이 수능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진행중이다. 당시 고3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7일동안 매일 공사를 진행했고 소음이 심해지자[65] 게다가 예상완료일자는 11월 중순이었지만. 결국 수능날 전후로 잠깐 공사를 안하고 수능날 지나서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다. 2016년 3월 28일 완공되었다.
  • 2015년부터 학생들에게 갑자기 학습 플래너를 나눠주고 있다. 나중에 검사해서 정도에 따라 상을 수여하겠다고 했는데 16년이 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사용하기는 학생들 나름이지만 플래너에 수록된 학교 일정표는 너무 믿지 말자. 어차피 바뀐다.
  • 2016년도 나누어준 학습 플레너에는 아예 학교 일정을 기록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은 계획으로써의 의미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측에서 일정을 계획하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 학생증이 현금카드+티머니 기능을 한다. 입/출금과 계좌이체[66] 모두 자유롭고, 급식실 쪽의 쪽문으로 나가면 있는 2개의 서점에서 모두 학생증을 이용해 계산을 할 수 있다.[67]
  • 교정에 각종 과일나무들이 많다. 문제는 이것들을 따지 못하게 해서 오히려 함정이 되어버린다는게 문제. 당장 가을만 되면 잘익은 홍시들이 체육관 입구에 부비트렙처럼 쏟아진다.[68]
  • 지상파 방송 노출경험으로 1996년 4월 4일 '신세대보고 어른들은몰라요 <10대의 출사표>편' 방송이 있다. 여학생 배우를 기대했으나 남자고등학교인 만큼 출연자가 전부 남자여서 학생들의 실망이 컸었다. 당시 양호담당 교사까지 남자였다.[69]

  • 교칙상 가능했음에도 하절기에 생활복을 입고 등교할 수 없었다. 18학년도 학생회의 노력으로 교칙을 바꾸면서 같이 언급되어 지금은 입은 채로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 19년 7월, 1학년이 수학 서술형 출제 오류로 인해 재시험을 치뤘다.

[1] 중고등학교 일치[2] 모집 정원(1,050명)에 한참 못 미친다. 1학년 245명/2학년 281명/3학년 321명[3] 이 남성의 교호야말로 남성고, 아니 남성학원 동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졸업생들은 교호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4] 공교롭게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도 진짜 남성여자고등학교가 존재하며 사립이다. 심지어 한자까지 동일하다! 때문에 동일한 재단의 남성여고의 경우 지역명을 붙혀서 이리남성여자고등학교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다.[5] 관련 기사[6] 공문[7] 후술하겠지만 한개는 남성중, 한개는 남성여고 운동장이다. 따라서 남성고의 운동장은 사실 없다.[8] 현재 여고 쪽 담을 허물고 인도를 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후에도 담이 유지될지는 불분명.[9] 때문에 남성공고라는 또 다른 별칭도 있었을 정도.[10] 수십 개쯤 되었다고 한다.[11] 당시에 유행했었던 꽃보다 남자(2009년 드라마)의 교복을 참고했다고 한다[12] 다만 18학년도부터 발생한 신입생 감소로 인해 방 별 인원을 감축할 예정이며, 후술할 3관 1층은 전면 열람실화가 될 예정이다.[13] 붉은색 부분이 띠처럼 사이사이에 있어 생기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본래는 화강암색.[14] 4층은 교무실 대신 교실이 하나 더 있다.[15]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오후 8시[16] 본관 CCTV는 행정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17] 다만 이와 같은 점들이 확장공사 계기에 영향은 준건 아니다.[18] 88개라고 한다[19] 해당 학교에서 시행된 수능시험지는 해당 학교에서 보관한다.[20] 철제 셔터를 잠그는, 풀려있는 자물쇠를 집어들고 내려갔다 오는게 가장 안전하다. 열었던 사람이 다시 못잠근다(...). 다만 발각시 후폭풍은 책임 못진다.[21] 확인해본 결과 옥상에서 양쪽 계단으로 내려가는 문도 나사로 봉쇄되어 있다.[22] 현재 보충수업에 애용되고 있다.[23] 열람실을 이용할 때에는 열람실용 슬리퍼를 따로 가지고 가서 신는다. 없을 경우 신발을 벗어야 한다.[24] 본교 교사에 따르면, 후원을 받아 지어진 거라고 한다.[25]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지역예선 한일전이 유성당 첫 축구관람인 것으로 추정됨[26] 2013년 기준 3관의 경우 168시간까지 녹화되는 것을 확인.[27] 전북대학교 기숙사를 참고했다고 한다.[28] 3관 1층[29] 그리마가 정말 빈번하게 출몰하며, 매우 습하고, 화장실에서 못 봐줄 정도의 악취가 난다.[30] 사감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가 들어오기도 한다.[31] 3관 1층의 경우 좀 더 커서 21명 가량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32] 19학년도에 신입생 감소로 인해 깨졌다. 현재 3관 3층은 2&3학년이 쓰고 있고, 3관 4층은 3학년만 쓴다. 5층 열람실은 3학년 전용이 되었다.[33] 물론 방에 따라 저학년생이 1층을 사용중인 경우도 있다. 3관의 2층 자리 중에 뭘 하든 밖에서는 문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쓰는 2학년들도 있다.[34] 45회 졸업생의 경우 서울대 45명 합격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남성고의 인기가 치솟았었다. 48회까지 낙방하는 지원자가 매년 10명 이상 나왔을 정도.[35] 나머지 1/3은 3관 3층과 4층에서 살고 있다.[36]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은 창문이 2개인데 '''창문을 왜 설치한건지 모를 정도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 겨울에 엄청 춥다[37] 1층은 물탱크가 따로 있어서 그나마 물이 잘 안 끊긴다.[38] 허락을 받고 안에 들어가보면 가끔 작업 중인 그림이 놓여있다.[39] 당시 경춘당에는 40년대 미국 교과서도 있었다[40] 근영여고만 응원하면 쫓겨나게 되니 인원을 반반씩 나눠서 남성중도 응원을 해야 한다[41] 배구공으로 풋살을 하면 잘 안깨진다[42] 급식이 잘 나오는 날에도 많이들 시켜먹는다[43] 사실 뱃지도 이와 동일한 구조로 돌아가서 하복을 입을지라도 뱃지 밑판 색으로 학년 구분이 가능했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학교 뱃지를 안 차고 다닌다. [44] 현재는 한글로 되어있다.[45] 2015년에는 전국체전 5연패를 달성했다. 특정 학교가 한 종목에서 5연패를 한 것은 최초라고...[46] 2019년 기준 상무 복무중[47] 심지어 남성 동문들로 이루어진 친목 축구회 이름이 '''파이카치 FC'''(...)라고 한다.[48] 당시에는 학생인권이란 거의 없었으므로[49] 기숙사생의 경우 23시 30분까지 본인 열람실로 돌아와야 한다.[50] 아예 야자 시작부터 무촉실에서 따로 한다.[51] 2관 3층의 구름다리를 사용해 3관으로 건너간다.[52] 고3은 있다.[53] 3관 1층은 당일 사감에 따라 다르다.[54] 경춘당만 저렇다. 3관은 본인 컨디션과 당일 사감에 따라 중간에 들어가도 되고, 3시가 넘었는데 학습지도위원이나 생활지도위원이 안가서(......) 3시 이후에 더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오전 3시 40분경 열람이 끝난 적이 있다.[55] 사실 66회의 수능 결과가 나쁜편은 아니였다. 그냥 매년하는 연례행사적인 경고[56] 큐대로 맞기, 기마자세, 오리걸음 등[57] 71회 역시 2학기부터 토요자습을 시행한다고 한다.[58] 2018년에 모교를 방문해 특강을 했다.[59] 한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이랬다. 교무실에서 교사들이 배를 깎아먹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와아아아아'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학생들이 뛰어갔다. 이에 한 교사가 복도로 나가 그 학생들을 불러와서 배 깎던 과도로 체벌 비슷하게 한다고 하다가 끝부분에 찔린 것.[60] 본교 교사에 따르면, 연대 특유의 Z점수 계산 탓이라고 한다. 실제로 작년에도 꼴랑 한 명 합격하는 모습을 보여(심지어 그것도 정시다!) 10명 합격인 고대에 비하면 실로 처참하다.[61] 70회[62] 실제로 다음 날 기숙사 방 변경으로 인해 전교생의 70%에 달하는 기숙사생이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할 수 없었고, 그 다음날은 종업식이라 정말로 공식적인 야자는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63] 말이 절반이지 10반을 제외하면 각 반마다 1~2명 정도만 남았었다.[64] 많은 남고생들이 착각하는점인데 남고앞의 운동장은 사실 남성중꺼다. 남성고의 운동장은 엄밀히 말해 없다.[65] 농구대 밑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파쇄하는 작업에서 특히 심했다. 아스팔트에 구멍뚫는 소리와 동일한 '두두두두'소리가 30m 반경에서 들려온다고 생각해보자[66] 휴대폰에 NH콕뱅크를 깔면 편하다[67] 다만, 현금카드라서 딱 저 두 곳만 된다. 일반적인 상점에서는 결제가 안 될 것이니 현찰을 들고갈 것,[68] 70회의 한 용자가 상기한 홍시를 진짜 따 먹었다. 맛있다고 한다.[69] 정식 양호교사 없이 교련이 역할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