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동정
1. 개요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2부에서 일어난 사건.
2. 진행
2.1. 조선의 보복원정 준비
조선은 경인왜란에 대한 보복으로 원정을 준비한다. 원정의 목표는 오사카(정확히는 오사카 성) 공략. 동원되는 군사수는 전투병 16만에 비전투병 포함하여 총 30만이라는 유례없는 대군. 원정준비는 의외로 순조롭다. 명에서 오는 군자금 지원과 연속해서 5년간 풍년이 들어 곡식이 차곡차곡 쌓여 군비준비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보복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선은 일본에 갈래선을 이용한 통상파괴작전을 실행하여 일본을 괴롭혔고 동시에 도쿠가와 가문을 포함한 몇몇 다이묘들과 협약을 맺어 전쟁을 유리하게 끌어나가기 위한 밑준비를 차곡 차곡 진행하였다. 또한 2차 견서사가 복귀하면서 윙드 후사르를 데려와 그것을 군에 통용시켜 전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2.2. 보복원정
보복원정의 시작과 함께 이순신은 도원수이자 명나라 정1품 수군도독으로 임명되어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1차적으로 대마도와 이키섬에 직접 상륙하여 사흘만에 점거[1] 하였고, 2차적으로 큐슈를 한달에 걸쳐 점령한다. 큐슈 점령 과정에서 시마즈 가문과 동맹한다.
세토 내해를 통해 오사카로 진격하기 위해, 수로를 차단할 가능성이 있는 시코쿠와 주고쿠를 제압하기 위해서 시고쿠에는 시마즈 군이 파견되고, 주고쿠의 모리 영지에는 여진족 기병들 1만을 풀어서 약탈을 진행하게 한다.
시코쿠와 주고쿠가 제압된 뒤,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 세토 내해의 제해권은 순조롭게 장악되어 보급 등의 문제도 겪지 않고 개전 3달만에 아와지시마에 도착하여 결전 준비를 시작한다.
오사카만에 집결한 조선군과 일본군은 조선이 97척, 일본이 600여 척을 동원하여 결전을 벌이지만 일본측 수군총대장이었던 구키 요시타카가 백여척을 이끌고 전장을 이탈하여 도주해버렸고, 안 그래도 화력에서 열세였던 일본 수군은 지휘관의 이탈로 와해되어 이순신에게 패배한다.
2.3. 비와호 전투
을미동정으로 일본으로 간 조선군과 히데요시에게 맞서는 일본군 연합 군대가 아즈치 성 앞에서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 일본군과 결전을 벌인다. 10만 대군 VS 12만 대군의 화려한 대규모 전투. 조선군의 엄청난 화력(18근포, 12근포, 무종야포(자주포), 대신기전, 중신기전, 조총 일제 사격)과 후방에서 습격하는 호소카와 타다오키군, 그리고 오도리 기병, 비호군에 의해 히데요시 휘하 군대는 궤멸당하고, 히데요시도 붙잡히며 을미동정은 4월 2일 시작하여 7월 23일 111일만에 조선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