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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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雨茁
1913년 09월 27일 ~ 1976년 01월 0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3년 경상북도 대구군(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민족자결투쟁본부 총사령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덕화공민학원을 설립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재민동포자치회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부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민주당 백남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갑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 대구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구시의회 문교분과위원회 위원장, 대한상이군인회 경상북도지부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이갑성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 1956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당선이라고 결과가 나왔으나 부정 개표로 상대 후보인 민주당 임문석 후보로부터 선거소송을 당하였고, 결국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1960년 사기죄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제헌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당에 잠시 몸담았다가 탈당하였다.
李雨茁
1913년 09월 27일 ~ 1976년 01월 0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3년 경상북도 대구군(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민족자결투쟁본부 총사령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덕화공민학원을 설립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재민동포자치회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부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민주당 백남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갑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 대구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구시의회 문교분과위원회 위원장, 대한상이군인회 경상북도지부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이갑성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 1956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당선이라고 결과가 나왔으나 부정 개표로 상대 후보인 민주당 임문석 후보로부터 선거소송을 당하였고, 결국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1960년 사기죄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제헌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당에 잠시 몸담았다가 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