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경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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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源京
1922년 1월 15일 ~ 2007년 8월 3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본관은 여주(驪州)[1].

2. 생애


1922년 경상북도 경주군 강동면 양동리 양동마을[2]에서 태어났다. 경북중학교일본 제5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재학 중에 학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하였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47년 미국 제24군단 G-2에서 근무하다가, 1948년 외무부 정보국에서 근무하였으며 포항중학교와 서울 중앙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미8군사령부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였고 잠시 경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1953년 외무부 정보국으로 복귀한 후 본격적으로 관료생활에 들어서서 1955년 외무부 정무국 제2과장(서기관), 1955년 외무부 방교국 의전과장, 대사관 2등서기관 겸 외무부장관 비서관, 1956년 주영공사관 2등서기관 겸 영사, 국제소맥이사회 정부대표, 1957년 외무부 방교국장(이사관), 1959년 외무부 의전국장(이사관) 등을 지냈다.
1963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주일대표부 참사관, 외무부 차관, 외무부 근무 대사까지 역임하는 한편, 합동통신사 부사장 및 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1974년 9월부터 1975년 12월까지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냈다.
전두환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1982년 4월부터 1983년 10월까지 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83년 10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정부 특사로 현지에 파견돼 사태를 잘 수습하였다. 곧이어 단행된 개각에서 외무부 장관에 발탁되어 1986년 8월까지 부임하였다. 1988년 4월부터 1991년 3월까지 주일대사를 지냈다.
한편 민주정의당 후원회 회장, 신한국당 후원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 여강 경주파 25세 '''원(源)''' 기(基) 연(淵) 원(元) 항렬로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과 같은 항렬이다.[2] 여주 이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