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농구)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선수.
2. 아마추어 시절
계성고 시절 기량을 인정받아 한양대학교로 진학해 날카로운 패스 워크와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오른쪽 손가락 골절 등 잇따른 부상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3. 선수 시절
그렇게 대학 시절을 부상에만 시달린 이인규는 동기인 최호와 함께 실업팀 산업은행 농구단에 입단했지만 정인교과 박희성 등에 밀려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산업은행이 나래이동통신으로 인수되었다가 KBL이 출범되어 원주 나래 블루버드의 멤버로 활약한 1997 원년 시즌에는 칼레이 해리스와 1번을 번갈아 가는 활약을 내세웠으나 1997년 4월 20일 안양 SBS 스타즈와의 준결승 5차전에서 표필상의 팔꿈치에 맞아 왼쪽 어깨를 다치며 3주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이듬해 1997-98 시즌을 앞두고 발목 부상이 이어진데다 연습생이었던 주희정의 출전 수가 증가하며 거의 벤치 신세였지만, 시즌 초반 1:2 트레이드로 이홍섭과 이창욱을 상대로 자신의 고향 연고팀인 대구 동양 오리온스로 트레이드되어 김광운과 김병철의 백코트를 보좌하는 식스맨으로 활약하였다.
1998-99 시즌에는 김병철, 전희철, 박재일 등의 기존 주전 선수들이 모두 군에 입대하고 1순위로 그렉 콜버트가 입단했으나 부인과의 불화로 도중에 야반도주해 버렸다. 그러자 박광호 감독은 이인규 본인을 주축으로 정락영-존 다지[1] -이훈재-자바리 마일스로 꾸렸으나 프로 스포츠 최다 연패인 32연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1999-2000 시즌에는 전희철이 소집해제로 복귀하고 루키 조우현이 가세하면서 다시 식스맨으로 돌아갔고, 2000-01 시즌에는 김광운과 김병철이 상무에서 제대한 뒤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어려워졌지만 2001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김승현이 입단한 2001-02 시즌 창단 첫 우승을 안기고 현역을 은퇴했다.
4. 지도자 시절
2002-2003 시즌부터 2005-2006 시즌까지 오리온스에서 코치를 맡았다가 2010년부터 사임한 김광호 코치의 뒤를 이어 침산중학교 코치를 맡았다.
[1] 콜버트의 대체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