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농구)

 

'''정인교의 수상 및 감독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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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농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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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인교(鄭仁敎)
'''생년월일'''
1969년 11월 28일 (55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강동초 - 휘문중 - 휘문고 - 고려대
'''포지션'''
슈팅 가드
'''신체사이즈'''
182cm, 87kg
'''실업입단'''
1993년 한국산업은행 농구단 입단
'''소속팀'''
한국산업은행 (1993~1996)
'''원주 나래 블루버드 (1997~1998)'''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8~2000)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 (2000~2002)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2~2003)
서울 삼성 썬더스 (2003~2004)
'''지도자'''
광주/부천 신세계 쿨캣 코치 (2005~2006)
부천 신세계 쿨캣 감독 (2006~2012)[1]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감독 (2014~2016)
숭의여자고등학교 코치 (2019~)
'''해설위원'''
MBC ESPN (2004~2005)
SBS ESPN-SBS SPORTS (2012~2013, 2014)
'''종교'''
개신교[2]
1. 소개
2. 선수 경력
3. 지도자/해설자 경력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이자 감독. 현역 시절의 별명은 사랑의 3점 슈터.

2. 선수 경력


휘문고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실업팀에서의 여러 제의가 있었으나 1993년 금융팀인 한국산업은행 에 입단한다. 이후, 3점슛 왕을 두번이나 차지하고 팀의 주 득점포로 활약했지만 소속팀 한국산업은행이 전력이 약해 항상 꼴찌를 맴돈 탓에 스타로 대접받긴 힘들었다. 한국산업은행 해체 후, 새로 창단한 나래이동통신 소속으로 프로 출범 전 마지막 농구대잔치였던 96-97 농구대잔치 에서도 득점왕, 3점슛왕을 동시에 차지했지만 팀이 7개팀 중 6위를 기록하는 등, 전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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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로농구 출범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프로 초창기 전설적인 용병이었던 제이슨 윌리포드, 칼 레이 해리스와 콤비를 이루면서 2년 연속 3점슛 성공률 1위를 기록했고, 당시 3점슛 1개를 성공시킬 때마다 유니세프에 1만원씩을 적립하는 봉사 활동으로 '사랑의 3점 슈터'라는 애칭을 얻는다. 그러면서 당시 광주 나산 플라망스와 함께 2약으로 평가받던 원주 나래 블루버드를 프로 원년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나래의 초대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원주에 농구 붐을 일으킨 전국구 스타로 인기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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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8년 허재를 상대로 맞트레이드되어 기아로 옮긴 뒤에는[3] 182cm의 작은 키와 느린 다리 때문에 속공이 주 공격 패턴인 기아의 농구에 적응하지 못해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이 팀 저 팀 옮겨다니는 저니맨 신세가 되었다.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시절에는 FA 권리를 행사했다가 FA 미아가 되어 연봉 2천만원도 안 되는 수련선수 신세가 되는 굴욕까지 맛보기도 했으며, 이후 모비스삼성을 거쳐 2004년에 은퇴했다. 뒤늦게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말년이 참 아쉬웠던 선수.
고려대학교 시절에는 연세대학교에게 밀렸고[4], 프로에서는 2차례 준우승 경험 밖에 없는 콩라인.
슛 능력 하나만큼은 거의 본좌급으로서, 눈 가리고 던져도 다 넣었을 정도였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 초창기까지 신기에 가까운 슛감을 바탕으로 3점 슛 분야를 거의 휩쓸었던 선수. 그러나 약한 체력과 182cm의 작은 키임에도 포워드를 봐야 했던 수비적인 약점이 점차 문제가 되었다. 아울러 단조로운 스타일, 발이 너무 느려서 속공 상황에선 허무하게 골을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수비가 너무 안 좋아서 상대 슈터에게 사실상 오픈 찬스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것이 결국 말년에 저니맨으로 떠돌게 된 원인이 되었다. 야구로 치면 원툴 플레이어.

3. 지도자/해설자 경력


은퇴 후, 여자농구팀 부천 신세계 쿨캣코치로 부임했다가 2006년 감독 대행이 된 후, 2007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김정은을 길러 내며 신세계를 4강권에 안착시켰지만, 우승 도전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김계령 카드가 실패하고, 레알 신한의 기세에 눌려 챔피언 결정전에는 진출하지 못하면서 세대교체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신세계 쿨캣도 그 시즌을 끝으로 해체 직전까지 몰렸다가 현재의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재창단했다.
2012-2013 시즌부터 SBS Sports에서 여자프로농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이후 2014년 4월 30일, 임달식 감독이 사임하자 임달식의 후임으로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감독에 부임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그다지 평이 좋지 않다. 이미 2007년 부천 신세계 쿨캣에 처음 감독으로 부임하였을 때도 2007 겨울리그 빼고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데다 경기 운용면에서도 부실한 점이 많았었다. 이는 새로 둥지를 튼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신한은행이 2014-15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춘천 우리은행 한새의 대항마로 떠올랐지만, 1위 싸움은 고사하고 우리은행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자라 2015년 2월 기준으로 청주 KB 스타즈에게조차 2위를 빼앗길 위기에 놓이자 임달식 전 감독을 그리워하는 팬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 플레이오프 때 너무 안 좋았다. 신세계 감독 재임 시절에 '''8전 8패'''.
그럼에도 어찌저찌해서 정규리그 2위는 했지만, 리그 막판인 KDB전에서 고의적으로 대놓고 주전을 빼는 운영으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승부조작으로 망가진 남자농구의 사례를 보고도 정신 못 차렸다는 이유로 팬들 에게 분노를 사고 있다.
그리고 KB 스타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0승 2패'''로 스윕당해 결국 챔결에 올라가지 못하면서 플레이오프 무승 10패라는 굴욕이 추가되었다.
15-16 시즌에도 부진은 여전했는데, 특히 2016년 1월 8일 부천 KEB하나은행과의 원정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신한은행 역사상 첫 5연패를 달성했다.[5] 그 경기로부터 이틀 뒤에 열린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에게도 패하면서 6연패로 다시 기록 달성. 아주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쓰고 있다. 새해 첫날부터 대첩[6]을 벌이더니 이틀만에 다시 대첩[7]. 그리고 1주일만에 또 대첩을 시전[8]하며 안 그래도 이전 시즌들에도 정인교 감독에 대한 평판이 그닥 좋은 편이 못 됐는데, 지난 시즌들보다 성적이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더 부진해지자 급기야는 정인교 감독을 성토하는 신한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는 그의 사퇴 혹은 경질을 거론하는 팬들이 많아져 신한 팬들에게 거의 신뢰를 잃어 '''"무능교"''', '''"돌인교"''' 등이라 불리며 '''금지어'''로 전락했다. 여기에 최근엔 여자배구에 그와 필적하는 모 쓰레기 감독과 함께 감독도 아닌 수준으로 세트로 까이고 있다. 그나마 금지틀이 안 걸리고 이충희로 비유되는 게 다행인 것은 '''경기력만 문제'''인 것이란 거다. 혹사 혐의나 핑계로 선수를 대놓고 디스하는 짓거리는 안 하기 때문.
결국 2016년 1월 12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잔여 경기는 전형수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새로 임명된 이는 신기성.
세월이 흘러 2019년 11월 4일, 숭의여자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를 맡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 감독대행 시절 포함.[2] 참조.[3] 물론 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실시한 트레이드였지만 원주 시민들은 원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정인교가 기아로 간다는 소식에 분노했고 그 여파는 한동안 상당했다. 나중에 허재가 나래에서 맹활약하면서 어느정도 수그러들긴 했지만.[4] 입학 후 내내 지다가 졸업 직전 간신히 한 번 이김[5] 현대에서 신한으로 바뀐 이후 처음 기록이지만, 꼴찌로 시즌을 마친 2005 겨울리그도 최다 연패가 4연패에 불과했는데, 그 기록을 깨 버렸다. 하지만 17-18 시즌에 7연패를 하며 기록이 또 깨졌다.[6] 3쿼터 12점차 리드 4쿼터에 다 까먹고 연장전 역전패.[7] 단 9초만에 57:56이 57:59로 대역전패. 상대인 KB가 5초 바이얼레이션에 걸려 시간만 다 쓰거나 자유투만 제대로 넣어도 이길 경기였다. 하지만 자유투 2개 몽땅 놓치고 리바운드까지 뺐겼다,[8] 2쿼터까지 14점에 그쳤고(42실점) 최대 32점차까지 점수차가 벌어졌고 15-16시즌 최다 점수차인 '''28점차'''(49:77)로 패했는데, 전 기록은 상대팀인 삼성생명이 우리은행에 기록한 27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