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가

 


'''후당 제4대 황제'''
'''廢帝 | 폐제'''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제호'''
폐황제(廢皇帝)[1] / 말황제(末皇帝)[2]
'''작위'''
노왕(潞王)
''''''
이(李)
''''''
종가(從珂)
'''연호'''
청태(淸泰, 934년 ~ 936년)
'''생몰 기간'''
885년 2월 11일 ~ 936년11월 26일 (51세)
'''재위 기간'''
934년 5월 21일 ~ 937년 1월 11일 (3년)
1. 소개
2. 생애
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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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오대십국시대 후당의 제4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2. 생애


본래 진주(鎭州) 평산(平山) 사람으로 성씨가 왕씨(王氏)였지만 후당의 2대 황제 이사원이 평산을 지나가다 그를 납치하여 양자로 입적시킨 뒤에 이씨(李氏) 성을 얻게 되었다. 용모가 강인하고, 위엄이 있는 데다가 용맹하고 전쟁에 재주가 있어 이사원이 그를 매우 총애했다.
이사원이 황제가 되자 그는 노왕(潞王)에 봉해졌으며, 명종 사후 즉위한 3대 황제인 민황제 이종후를 암살하고 즉위하였다.
그러나 황제를 꿈꾸던 부하 석경당과 분쟁이 발생해 그를 천평군 절도사로 좌천시켰지만 석경당은 오히려 거란의 야율덕광을 끌어들여 내전을 벌였다. 원래 그들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유리했지만 갑작스런 거란군 5만 명의 등장으로 끝내 패하고 말았으며 결국 현무루에 불을 지르고 일가와 함께 자살하는 실로 비참한 최후를 맞음과 동시에 후당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원래 죽기 전 낙양성 전체를 불사르려고 했으나, 황후가 '그럼 새로 등극하는 황제의 궁궐을 새로 지어야 하니 백성들만 힘들게 됩니다'라고 간언하자 생각을 고쳐서 현무루만 태웠다고. 이때 진시황 때부터 전해지던 전국옥새가 소실되게 되었다.

3. 둘러보기(계보)





'''후당의 역대 황제'''
3대 민황제 이종후

'''4대 폐황제 이종가'''

후진 초대 고조 석경당

[1] 신오대사 본기 표기[2] 구오대사 본기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