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축구선수)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왕성한 활동량을 살린 저돌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유형의 선수였다. 스피드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던 공격적인 왼쪽 풀백이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발목잡힌 선수였다. 한 마디로 대표적인 '''유리몸.'''
2. 상세
2003년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UAE FIFA U-20 월드컵에 대한민국 청소년대표로 출전해서 독일을 상대로 득점해 2-0 승리에 기여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1] 이 당시 독일의 청대 감독이 '''울리 슈틸리케'''였다.
하지만 득점 때 골키퍼와의 충돌로 무릎 부상을 당해 이후 경기에는 결장했고, 귀국 후에도 대략 6개월 정도 재활에만 매달렸다. 이 당시 설기현이 활약하던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그 뒤에도 성균관대학교 재학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해외 리그로의 이적을 추진하다가 제적되었고, 2005년에 거스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PSV 아인트호벤이나 AS 낭시 등 여러 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005-2006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당시 라싱 산탄데르에서 일주일 동안 입단 테스트를 본 뒤 이적 시장 마감 20분 전에 극적으로 합격했고, 이천수에 이어서 역대 2번째로 '''프리메라 리가 소속 클럽에 입단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입단 후 지속적인 잔부상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다가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드디에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으며, 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2] 이 당시 라싱 산탄데르에서 알게 된 선수 중 대표적인 선수가 브라질의 펠리피 멜루. 멜루는 이호진에게 당시 K리그에서 활동 중이던 브라질 선수들인 산드로, 도도, 마그노는 얼마나 잘 하고 있냐고 물어 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도 계속된 허벅지 부상으로 결국 라싱에서 방출된 그는 러시아 등 여러 동유럽 리그로의 진출을 모색하다가, 2008년 드래프트를 거쳐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천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바로 다음 해 핀란드 리그의 JJK 위배스퀼라라는 팀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데뷔전을 치른 뒤에도 역시 부상 때문에 나온 경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후 감감 무소식이었다가 태국 프리미어 리그를 거친 뒤 2011년 내셔널리그 팀 고양 KB국민은행에 입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 못한 그는 2011 시즌을 마치고 이듬해인 2012년에 현역병으로 입대하면서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3사단에서 복무한 그는 2014년에 제대한 후 에이전트 및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간간히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5년에는 C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했다고 한다.
제대한 후 인터뷰에서 그는 U-20 월드컵 독일전 때 무릎을 다친 뒤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게 끝내 선수 생활 동안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그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지 상상했다고 하는데, “결국 부상도 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축구선수도 아니었다”며 자책했다. 그럼에도 그 상황이 다시 온다면, 저돌적으로 달려들겠다고 언급했다. 울리 슈틸리케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본 그는 얼굴이 낯익길래 찾아 보니 U-20 때 보았던 독일 청대 감독이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3. 관련 문서
[1] 대한민국은 전통적으로 이 연령에 약한 편을 생각하면, 대단한 활약을 해 준 셈이다.[2] 참고로 이 당시 비야레알 CF는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지휘봉을 잡은 뒤 후안 로만 리켈메를 중심으로 강력한 전력을 구축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까지 올랐던 강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