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

 

Судьба человека
1. 개요
2. 줄거리


1. 개요


<고요한 돈 강>으로 소련 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러시아 소설가 미하일 숄로호프의 중편 소설.
독소전쟁에 참전하고 온갖 고난을 겪은 안드레이 소콜로프란 인물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 그러나 전후 생존자에게 남아있는 희망을 담고 있다. 줄곧 러시아 혁명적백내전을 통해 붕괴되는 코사크 사회를 다뤄온 숄로호프의 기존 작품들과는 예외적으로 독소전을 소재로 삼았고, 이후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 역시 독소전쟁을 다룬다.
1957년에 소련에서 출간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1959년에는 당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세르게이 본다르츄크가 감독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판 또한 소련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후 본다르츄크는 국책 영화 <전쟁과 평화>의 총감독을 맡기도 하는 등 소련 전쟁 영화의 거장으로 이름을 높이게 된다.
한국어역으로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188번 《숄로호프 단편선》에 수록된 바 있다.

2. 줄거리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46년, 볼가 강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던 작중 화자 '나'는 한 늙수그레한 트럭 운전수와 그의 어린 아들과 동행하게 된다. 트럭 운전수와 소소한 잡담을 나누던 화자는 그가 참전 용사라는 걸 알게 된다. 화자가 전쟁 얘기를 묻자 트럭 운전수는 그의 긴 사연을 말해 준다.
운전수의 이름은 안드레이 소콜로프. 그는 보로네시 출신으로 혁명이 일어나고 내전이 발발한 젊은 시절에는 붉은 군대에 가담하여 백군과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 백군에게 중노동을 당하다 전쟁이 끝난 1922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가족들과 친지들은 대부분 백군에게 죽은 뒤였고 그는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외롭게 살던 소콜로프는 아름다운 아가씨인 이리나를 알게 된다. 이리나 또한 백군에게서 가족을 모두 잃은 처지라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낀 소콜로프는 이리나와 가깝게 지내다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아들 아나톨리를 비롯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소콜로프는 트럭 운전 기술을 배워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1941년 6월 22일나치 독일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고 예비역인 소콜로프도 동원된다. 소콜로프는 기차역에서 가족들과 눈물의 작별을 하고 열차에 오른다.[1]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소콜로프는 전방 포병대가 122밀리 포탄이 부족하다고 하자 포탄 수송에 자원하여 포화가 쏟아지는 최전방으로 트럭을 몬다. 그러나 독일군의 포격에 트럭이 전복되고 소콜로프는 정신을 잃는다. 깨어 보니 재수없게도 독일군 두명이 소콜로프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독일군들은 소콜로프를 비웃으며 그의 새 군화를 빼앗고 포로 대열에 넣어 버린다.
포로로 잡힌 날 밤, 독일군정치장교유대인학살이 시작되고 소콜로프를 도와준 군의관도 끌려가 사살된다. 소콜로프는 포로 동료들과 함께 독일 땅으로 끌려간다.
끌려간 소콜로프는 쿠스트린과 루르 등 독일 공업지대와 탄광에서 끔찍한 중노동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몸무게 84킬로그램의 건장했던 그의 체구는 45킬로그램으로 줄어 벌인다. 소콜로프는 아내와 자식들 걱정에 견디지 못해 하며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매번 걸려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는다.
쿠스트린의 B-14 노동 수용소에 수감된 소콜로프는 독일의 수용소 정책을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수용소장에게 잡혀가게 된다. 그러나 수용소장이 죽기 전에 마시라고 준 독주를 단번에 들이키자 놀란 수용소장은 소콜로프에게 다시 독주를 들이키게 하고 안주도 없이 술 한 병을 통째로 들이켰다. 그런 소콜로프를 대단한 러시아인이라 말하며 그를 풀어준다. 여기서 나온 대사가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 'Я после первого стакана не закусываю(나는 첫 잔을 마신 후에는 안주를 먹지 않습니다)' 이다.
그렇게 독일 곳곳을 끌려다니던 소콜로프는 1944년에 이르러 독일의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독일군 정보장교인 뚱보 소령의 수발병이 된 소콜로프는 기회를 엿보다가 술에 취한 소령의 운전병의 옷을 빼앗아 입고 소령을 습격해 기절시켜 차에 태운 뒤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몰려오는 소련군을 향해 차를 몰아 귀환에 성공한다.[2][3]
돌아온 소콜로프는 독일 장교를 잡아온 것에 대해 치하를 받으며 지휘관이 허약해진 몸을 추스리고 오라고 휴가증을 써 주어서 고향 보로네시로 향한다. 그러나 고향에 도착한 소콜로프의 눈 앞에는 기다리던 가족들은 없고 폭격과 포격으로 인한 폐허밖에 없었다. 무너진 자신의 집에서 망연자실해 하던 소콜로프는 살아남은 동네 친척 어른을 만나게 된다.
소콜로프는 친척 어른에게서 끔찍한 소리를 듣는다. 그가 입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 폭격기들이 보로네시에도 폭격을 퍼부었고 그 폭격 속에서 아내 이리냐와 두 딸도 같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들 아나톨리는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했다. 소콜로프는 '''모든 것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며 울부짖는다.
절망을 뒤로 한 채 다시 진격길에 오른 소콜로프는 뜻하지 않은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아들 아나톨리의 편지였다. 가족들이 폭격으로 죽은 뒤 아나톨리는 자원 입대하여 알렉산드르 포병학교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포병 장교가 되었고 현재 대위 계급장을 땄으며 포대장을 하며 7번이나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소콜로프는 아들의 생존과 출세에 기뻐하며 전쟁이 끝나면 아나톨리와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목공소를 차리고 손주도 볼 거라며 꿈에 부푼다.
마침내 1945년이 되어 베를린은 소련군의 손에 함락되고 소콜로프도 전우들과 함께 축배를 든다. 그러다가 소콜로프는 난데없이 중대장의 호출을 받게 된다. 중대장실에 불려간 소콜로프는 억장이 무너진다. 아들 아나톨리가 독일이 소련에 정식으로 항복한 5월 9일 그 날에 독일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모든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소콜로프는 옛 전우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저 죽지 못해 사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거지 소년 바냐쉬카[4]을 알게 된다. 바냐쉬카는 전쟁 고아로 어머니는 폭격에 죽고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실종되었다고 했다.
오갈 데 없는 바냐쉬카를 트럭 옆자리에 태우고 가던 소콜로프는 결심을 하고 바냐쉬카에게 자신이 전쟁터에서 실종되었다던 그의 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한다. 어린 바냐쉬카는 그 말을 믿어버리고 소콜로프를 아빠라고 부르며 껴안는다. 그리하여 소콜로프는 바냐쉬카를 통해 다시 살아갈 희망을 찾았다고 작중 화자에게 말하며 바냐쉬카를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1] 이 장면에서 영화판에서는 1941년인데 T-34/76이 아닌 T-34/85가 열차에 실려 지나간다. 영화판의 몇 안되는 고증 오류[2] 실제 소련군은 독일군에서 탈출한 포로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지 않았던 것을 미뤄 보아 소콜로프가 독일 장교를 납치해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3] 단 나중에 나온 러시아 문서와 통계에 따르면 44년 정도면 상당수의 석방포로 및 탈출 포로들이 뚜렷한 이적 행위가 없으면 굴라그에 가는 대신 군에 재입대하는 걸로 퉁치는 경우가 많아서 별 큰일이 없었을 듯. [4] 러시아 이름 '이반'의 애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