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생도
1. 개요
自衛隊生徒. 자위대의 부사관 양성제도였다. 2011년을 끝으로 모두 폐지되었다. 신입생은 2010년부터 뽑지 않게 되었는데 2ch의 잉여들은 민주당(일본)이 감축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집권한 것은 2009년 9월이고 해자생도와 공자생도가 신입생을 마지막으로 뽑은 건 2008년 4월이었다. 육자생도도 2010년부터 고등공과학교로 전환할 계획이었고. 한마디로 별 상관은 없는데 자위대 인원 감축이란 이유로 민주당만 극딜당했다. 별칭으로 소년자위관이라고 불렸다.
한국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를 생각하면 된다. 4년간 교육을 받은 뒤 하사로 임용된다. 다만 차이점은 고교생 시절에 병 계급으로 학교 생활을 보낸다는 점이다.
이렇게 4년을 병으로 보내고 졸업하면 하사로 임용되는 것이다.
2. 각 군종별 자위대생도
2.1. 육상자위대생도
육자대에서 실시했다. 1955년부터 2009년까지 학생을 받아들였고 배출 인원은 17,000명 규모. 9할 이상이 간부, 즉 장교로 승진했으며 진급 상한선은 대령이다. 그러나 일부는 장관급까지 진급하여 사병 출신 장성이 되었다.
현재는 고등공과학교로 갈음하였는데 고등공과학교의 학생들은 병 계급을 받지 않고 민간인으로 친다.
2.2. 해상자위대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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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대에서 실시했다. 1955년에 1기를 받아들였고 2007년에 53기를 끝으로 채용을 중단했고 2011년에 53기가 임관하면서 이들을 교육하던 해상자위대 제1술과학교 생도부는 3월 27일부로 폐지되었다.
2.3. 항공자위대생도
공자대에서 실시했다. 2011년 3월 19일부로 항공교육대 생도대가 폐지되었다. 해자대와 마찬가지로 53기가 끝이다.
- 부론손(9기) - 도중 자퇴.
- 모토미야 히로시(9기) - 도중 자퇴.
- 코니시 마코토(小西誠) - 1949년생. 1970년 일본 안보투쟁 당시에 치안출동(한국의 계엄령에 상당)에 대비한 훈련이 이뤄지자 훈련을 거부하고 반전 삐라를 뿌렸다. 자위대법 64조 선동죄로 기소되자 변호인 100명이 특별변호인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전역에서 난리났다. 1981년 무죄로 판결됐다. 그 후 반전 운동을 펼쳐 반전자위관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