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 출신 장성
1. 개요
사병 즉 부사관이나 병 출신에서 장성급 장교까지 진출한 인물들을 다루는 항목이다.
반대개념으로 불명예 강등이 있다.
2. 배경
사병 출신 장군이나 제독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는 바로 전시이다. 전시에는 유능한 사병을 현지임관으로 장교로 임관시키는 경우가 많고 작전이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거나 부대에서 유능한 모습을 보일수록 더욱 진급속도도 높게 된다.
평시에는 공을 세울 기회가 적을뿐더러 장교들의 인사구조가 인사적체로 막혀있기 때문에 사관학교를 나온 인원도 별을 달기가 어렵다. 사병 출신이면 계급별로 최소복무 기간과 연령 제한 등이 걸려있는데 겪는 계급이 많아져 진급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기어이 장성까지 진급하는 용자들이 있다.
하지만 북한과 같이 제도적으로 하전사[1] 들 중에서 우수인재를 장교를 육성하는 경우[2] 에는 모든 장령[3] 이 사병출신이다. 물론 정치군인 및 김씨일가는 제외. 정치장교 등은 군 경력도 없는 인간을 대장으로 임관시켜버린다. 북한도 바보는 아닌지라 이런인간들은 실권이 적은 명예직에 넣는다.
3. 현실 사례
3.1. 대한민국 국군
군 초기에는 대졸자가 드물고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지 않아 사병 출신들을 장교로 임관시켜 인원을 보충하는 형태가 많고 이들 중 일부는 장성급 장교까지 진급했다.
21세기에 사병 출신 장성이 나올 수 있는 루트는 크게 다섯 가지다.
- 군경력자가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 연령 제한 미만의 3군 현역 병 및 하사들이 각각 3군 사관학교에 종종 입학 하거나 또는 3사관학교에 현역 병, 부사관 또는 예비역 병 및 단기복무 후 전역한 부사관 생도가 입교하는 경우가 있다.
- 단기간부사관 : 전문학사 이상 취득자 대상. 과거 현지임관이나 육군의 갑종간부후보생은 대졸자가 드물던 시대라 가능했지 대졸자가 많은 현재에 단기간부사관 출신, 특히 전문대졸 학력의 장성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다만 4년제 대학교 이상을 졸업하고 군 복무 중 진로를 선택해 장교가 된 인원들도 있음으로 최소 학력이 전문대학이지, 그 이상인 인원들도 있다.
- 학사장교 : 예비역 병 및 부사관, 또는 현역 병 및 부사관 중 학사학위[4] 를 취득한 후나 입대 전에 이미 학사학위를 취득한 경우 장교로 임관한 뒤 장성까지 진급하기.
- 학군사관 : 육해공군 기술부사관 양성학교였던 금오공고 졸업후 사관학교 진학 또는 금오공대 ROTC출신이 육해공군에서 별을 단 경우도 근래에는 많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최양선, 신정호(해사), 이건완, 황성진(공사), 박양동, 이종훈, 김기택, 이경일(이하 육학군), 이동원(육학군/공군), 박재갑, 정삼(이하 해학군), 이붕우(육사) 등이 있다.
- 법무사관 :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뒤부터 예비역 병장인 군필자들이 장기 군법무관에 지원하여 대위로 임관하는 경우가 이전보다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법무병과 진급 상한선인 고등군사법원장(준장)과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까지 진급하면 사병 출신 장성이 된다. 다만 중령 이후 인사적체가 심한 군법무관의 현실상 매우 어려운 편이다.
3.1.1. 대한민국 육군
갑종에서 주로 배출되었다. 대졸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장교 임관 기준을 고졸로 하던 시절에 일부 고졸 출신 사병들이 갑종에 지원해 장교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 이중에 일부는 장성급 장교까지 올랐다.[5] 단 공군은 남들이 고졸을 장교로 임관시키던 시절에도 학사 학위가 있는 사람을 채용했다.
현지임관[6] 의 경우 9,686명(한국전쟁)을 임관시켰는데 이중 14명이 장성급 장교까지 진급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현지임관 대신 단기사관 제도를 활용했다. 출처
육군종합학교 임관자 7,277명 중엔 127명이 장성급 장교까지 진출했는데 이중에 사병 경력이 있는 자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단기사관은 6,597명의 육군 하사관을 장교로 임관시켰는데 단 '''1명'''만이 장관급까지 진급했다. 대령은 54명을 배출했다. [7]
3.1.1.1. 현지임관
최종계급 준장
- 김일만 : 부관감(부관 병과장)을 지냈다.
- 서기원 : 참모장을 지냈다.
- 안도열 : 주월사령부 부관참모를 지냈다.
- 유기환 : 화학감(화학 병과장)을 지냈다.
- 황종우 : 부관감을 지냈다.
- 김병주 : 보안사 참모장을 지냈다.
- 김영동 : 20사단장을 지냈다.
- 김용근 : 헌병 병과장인 헌병감을 지냈다.
- 이규식 : 52사단장을 지냈다.
- 이명구 : 38사단장을 지냈다.
- 이영구 : 합참 정보국[8] 차장을 지냈다.
- 정수암 : 1947년에 이등병으로 입대해서 전쟁 발발 당시에 중사였고 현지임관으로 소위가 된 뒤에 1978년 소장까지 진급했다. 1979년에 전역했다. 관련기사
- 최갑석 : 1947년에 조선경비대에 입대하여 한국전쟁 당시에 소위로 임관하여 육군소장까지 진급했다.
- 한상권 : 국방부차관보를 지냈다.
3.1.1.2. 갑종간부후보생
- 권영기 : 1966년에 병으로 입대하여 1968년에 갑종 222기로 장교로 임관.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뒤에 2006년에 퇴임했다. 대장까지 올라간 케이스. 2군사령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자신보다 2년 늦게 임관한 이상희 합참의장을 선임으로 둬야했다[9] .
- 윤창로 : 1969년에 학보병[10] 으로 입대했다. 갑종에 지원하면 1주일 특박을 준다는 이유로 지원했고 일병 때 지원하여 소위로 임관, 육군준장까지 지냈다. 뒤에 재향군인회 대변인을 지냈다. 관련기사
- 조영길 : 이등병부터 국방장관까지 지냈다는데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교 교사를 하다가 갑종장교로 바로 지원했다고 한다. 소문이 어느 정도 도는 걸로 보아 짧게 사병으로 근무했던 걸로 추정하나 정확한 출처는 없는 상태다.
3.1.1.3. 단기사관
- 곽의영 : 단기13기 출신으로 단기사관 6,500명 가운데 유일하게 장성급 장교에 진출했다. 1976년 6월에 이등병으로 입대했고 다시 단기하사를 지원해 같은 해 12월에 하사로 임관했다. 1977년 12월에는 단기13기 과정으로 소위로 임관하였다. 2008년에 준장으로 진급 2013년에 전역했다. 최종계급은 준장이다. 병과 부사관, 위관급 장교, 영관급 장교, 장성급 장교를 모두 체험했다. 관련기사
3.1.1.4. 사관학교
육사 10기까지는 4년제가 아니었고 사병 출신 들이 입학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 김종필(육사8기)[11] : 1948년에 조선경비대 이등병으로 들어갔다가 1주일 만에 가혹행위를 못 견디고 탈영했다. 그후 탈영병 신분으로 친구 집 등을 전전하다가 극장에 영화 보러갔다가 육사 헌병대를 만나 자수했고 육사에 기간병으로 배치되었다. 1949년에 육사 8기로 입대했고 소위로 임관해 준장까지 진급했다.
- 김현옥(육사3기) : 1946년에 조선경비대에 이등병으로 입대했다가 경비대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준장 예편.
- 나희필(육사5기) : 조선경비대에 입대하여 육사 교도대(교육대) 병사로 근무하다가 육사 5기로 입교해 1948년에 임관했다. 최종 계급은 육군 소장.
- 박태준(육사6기)[12] : 1948년 조선경비대 제5연대(부산)에 입대해 이등병으로 있다가 남조선경비사관학교로 입학해 육사 6기로 소위 임관. 당시 사관학교에서 탄도학을 가르치던 교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소장 예편.
3.1.2. 대한민국 해군
3.1.3. 대한민국 해병대
- 임경섭 : 해병1기, 하사관1기, 해병학교 4기 등 병, 부사관, 장교를 모두 거쳐 해병소장까지 진급했다. 해병대 부사령관을 지냈다. 관련글
3.1.4. 대한민국 공군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하사로 복무 중에 공군사관학교를 진학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에는 2사 6기 출신으로 투스타에 진급한 김진홍(기고 10기, 2사 6기 = 공사31기) 소장이 나왔다. (2016년 전역.) 아래 두 장군이 항과고 졸업 후 공사 임관 + 조종 출신인데 비해 김장군은 하사로 1년 복무 + 방포 출신이다.
현재 최고 계급자는 모교인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장을 지낸 김진식 대령이 대표적이다.[13] 다만 김대령은 조종이 아닌 교육 특기 출신이라 진급 상한선이 대령이고 비슷한 사례로 조종 특기가 나올 경우에는 장성급 장교로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희우(기고 4기, 공사 27기) 준장[14] 이 항공고 출신으로 장성까지 진급하긴 했는데 위의 사례인 김진식 대령과는 달리 졸업 후 바로 공사로 입학한 케이스라 하사 생활을 거치지 않았다. 고덕천(기고 2기, 공사 25기) 소장도 조종장교로 소장까지 진급했는데 이희우 준장과 마찬가지로 하사 생활을 거치지 않았다.[15]
항과고와 마찬가지로 금오공업고등학교 출신도 있다. 이건완(금오 5기, 공사 32기), 황성진(금오 6기, 공사33기), 이동원(금오 10기, 육학군27기) 장군이 그 예이다. 2014년 현재도 재직 중인 인물이다. 1984년에 해사(38기), 공사(32기) 졸업자 중 수석을 금오공고 출신인 최양선 제독과 이건완 장군이 차지했다.
3.2. 북한
일단 홍보에 따르면 2004년에 하전사로 입대하여 2005년에 중장까지 엄청난 계급 인플레이션을 겪은 김정은이 있긴 한데 아무도 믿지 않는다.
참고로 북한은 인민군 답게 장교와 사병이 출신성분에 따라 따로 입대하는 제도가 아닌, 병에서 하사관이나 군관(장교)을 선발[16]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역 장령들은 사병출신 장령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빠른 진급을 통해 단기간에 군관이 되거나 주요 간부 보직을 맡는 인원들은 대부분 조선로동당 당원들이고, 나머지는 얄짤없다. 남한에 가족이 있다거나 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 진급이 힘들다.
3.3. 미군
대한민국과 다르게 조건을 충족한 사병의 경우(SAT 등) 사관학교 입학을 장려한다. 또한 한국의 경우 사관학교출신에게는 진급률을 보장시켜 특혜를 주는 반면 미군은 임관 후에는 OCS든 사관학교 출신이든 철저한 인사평가로 진급에 있어서는 동일 조건에서 경쟁한다. 한국과 달리 미군 장성에서 사관학교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25%대에 불과하다.[17] 즉 미군은 사관학교 출신이 비사관 출신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4년 생도과정으로 군사학을 배웠다 한들 20~30년 가까운 군생활과 그 중간중간 이수해야 할 고급 지휘관 교육 과정 등을 수료하고 나면 사관학교 출신이나 비사관학교 출신이나 그 능력의 차이는 개개인의 자질 차이지 출신 차이 자체는 무의미 해진다. 그로 인해 미군에서는 한 때 사관학교 폐지론 까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비사관 출신들이 대위, 소령에서 진급 상한선을 형성하는게 아니라 워낙 비 사관학교 출신 인원이 많이 임관하기 때문에 저 계급 계층을 이루는 인원들 중에 비사관학교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는 것 뿐이다. 또한 비사관 학교 출신중에는 병이나 부사관 생활을 하다가 장교 지원 연령 연장 혜택을 받아 늦깎이 장교가 되어 대위나 소령급에서 "계급정년"에 걸려 그 이상 진급 못하고 전역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다. 다만 이 경우 장교 급여가 병, 부사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미군 특성상 연금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원사로 전역하기보다는 대위나 소령으로 연금 대상자가 되기 위해 늦은 나이에도 장교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군에서도 미국육군사관학교 졸업자가 연간 800명이 나오는데 그 중에 1%이하 만이 대장까지 진급하는데 다른 임관루트는 당연히 낮을 수 밖에 없다.
척 헤이글은 경우는 좀 다르지만 사병 출신(미 육군 예비역 병장) 국방장관이다.
3.3.1. 미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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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크루거(Walter Krueger, 1881-1967): 폴란드[18] 에서 태어나 10대 초반 미국으로 이민와 1898년에 의용병으로 입대했고 1901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미국의 2차대전 참전 직전인 1941년 중반, 중장으로 진급하여 미국 남부의 제3군 사령관을 지냈으며 1943년 초에 해외파병하여 맥아더의 전구로 배속되어 2차 군사령관 보직으로 신설된 제6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종전까지 태평양 곳곳을 누비면서 지휘했고 주일미군에도 종사하다 1946년 육군대장으로 예편했다. 1945년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미국-스페인 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참전했다
- 코트니 힉스 호지스 (Courtney Hicks Hodges, 1887 - 1966) : 1906년 병으로 입대해 1945년 4월에 대장까지 진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마른 전투에 참가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서부전선의 휘르트겐 숲 전투, 팔레즈 포위전, 아르덴 대공세에 참가했다. 사족으로 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 교육 받았는데 수학성적 때문에 웨스트포인트에서 퇴교 당했다고 한다. 만약 퇴교 안당했다면 동기생으로 그 유명한 패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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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윌리엄 베시(John William Vessey, Jr., 1922 - 2016): 1939년에 미네소타 주방위군에 병으로 입대했다. 1941년에는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파병되었고 전시라서 쾌속 진급해서 상사(First Sergeant)까지 진급했다. 아쉽게도 원사는 못 달아보고 1944년에 현지임관으로 소위가 됐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1976년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주한미군 연합사 사령관을 지냈고 1982년에 합참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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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샬리카시빌리(John Shalikashvili, 1936 - 2011): 조지아 이민자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1952년에 가족이 미국 일리노이로 왔고 1958년에 징병되어 입대했다. 1959년에 OCS를 지원해 소위로 임관했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1993년에 빌 클린턴에 의해 합참의장으로 지명되었다. 존 베시에 이어 네 번째 사병 출신 합참의장이다.
- 토미 프랭크(Tommy Franks, 1945-): 1965년에 미 육군병으로 입대하여 67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2000년에 대장으로 진급했고 이라크 전쟁을 이끌었다.
- 프랭크 그래스(Frank J. Grass, 1951-): 미국의 근성가이로 1969년에 미주리 주방위군에 입대했다. 12년이나 사병으로 근무한 뒤인 1981년에 나이 서른으로 소위로 임관하여 2012년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2014년 기준으로 주방위군총장이다.
3.3.2. 미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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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러미 마이클 보더(Jeremy Michael Boorda, 1939-1996): 1956년에 수병으로 입대하여 1962년에 OCS 과정을 거쳐 소위로 임관했다. 1995년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참모총장을 지내던 중에 자살했다. 해군 항공대의 장교단에서 그에 대한 반감이 심했는데 1991년에 미 해군의 대규모 성추행/성폭행 스캔들인 테일후크 스캔들(Tailhook scandal)[19] 의 수습과정에서 그가 빌 클린턴 행정부를 도와 미 해군 조직을 손보는데 협조했다는 게 이유였다. 미 해군은 제독들의 반란을 겪을 만큼 외부의 간섭을 싫어하는데 그는 해군의 치부를 드러냈고 다수의 제독들은 그를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가 수병 출신이라는 것도 보더 제독을 무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보더 대장이 아스널쉽 계획을 추진하자 이를 항공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 항공 출신 제독들은 그를 더욱더 집단괴롭힘했다. 결국 그가 약장을 잘못 패용하자 마치 엄청나게 부도덕한 행위인 것처럼 언론에 제보까지 하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그는 해군총장으로 재직하던 중에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 새뮤얼 로클리어(Samuel Locklear, 1954): 1972년에 수병으로 입대하여 1년 복무후 1973년에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77년에는 소위로 임관했다. 3함대사령관을 이어 유럽아프리카사령관을 거처서 2012년 3월 9일에는 태평양사령관으로 3년 2개월 3주 동안 근무하고 2015년 5월 27일 퇴역했다.
3.3.3.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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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프리드 그레이(Alfred M. Gray, Jr., 1928-): 1950년에 들어와 해병대 항공대 병으로 근무했다. 병장까지 진급한 뒤에 1952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대장까지 진급하여 해병대사령관을 지냈으며 1991년에 퇴역했다.
- 칼 먼디(Carl Epting Mundy, Jr., 1935-2014): 1953년에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했다. 병장까지 진급한 뒤에 대학을 다니며 OCS를 거쳐 1957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대장까지 진급하여 해병대사령관을 지냈다. 1995년 퇴역.
- 존 켈리(John F. Kelly, 1950-): 1970년부터 72년까지 해병대 병으로 근무한 뒤에 전역해서 학사 학위 딴 뒤 1976년에 OCS로 들어왔다. 그리고 대장 진급. 그러니 한군두해서 대장 진급한 케이스.
- 제임스 매티스: 1969년 대학생 신분으로 해병대에 입대하였고 1972년에 장교로 임관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에 올랐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내각에서 안보 담당인 국방장관과 국토안보장관이 사병 출신의 해병대 장군이 임명되었다.
- 스티븐 허머(Steven A. Hummer 1952-): 1970년부터 73년까지 해병대 병에서 하사까지 근무한 뒤 전역해서 학사 학위 딴 뒤 1976년에 OCS로 들어왔다.
3.3.4. 미 공군
공군의 경우는 장군 대다수가 조종사 출신이거나 못해도 명문대 대학원 나와서 사관후보생으로 바로 임관한 A급 항공우주공학 엔지니어들이라 사병 출신 장군이 육군에 비해 드물다. 다만 2차대전기엔 조종특기 육군항공병을 모집하여 조종장교로 임관시킨바 있다. 이렇게 해서 장군까지 단 사례는 척 예거와 영화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있다.
미 육군 병을 경험한 뒤 공군으로 전군한 대장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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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선 트와이닝(Nathan Farragut Twining): 1915년에 오리건 주방위군에 입대하여 1916년에 상병이 됐다. 해제되었다가 1917년에 병장으로 재소집, 하사(First Sergeant)로 진급했다.[20] 1917년에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허가를 받았고 전시라서 2년만 교육받고 1919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처음엔 보병에서 근무하다가 항공병과로 전과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 공군이 생기자 넘어갔다. 공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지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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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리 웰치(Larry D. Welch, 1934-): 오클라호마 태생으로 1951년에 캔자스주방위군에 입대했다. 161포병대에서 육군병으로 근무하다가 미 공군으로 군적을 옮겼고 1953년 12월에 조종후보생(aviation cadet) 과정에 입과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전략공군사령관과 1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3.4. 중국군
과거에는 사병 출신 장성들이 꽤 많이 있었다. 후술할 명나라 홍무제 등이라든지. 그러나 지금은 사관학교 출신들이 우선적으로 장성 진급에 유리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커져서 결국은 사병 출신 장성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중국군 역시 미군처럼 동일하게 군대 규모가 매우 방대하고 다양하다보니, 미국과 동일하게 무조건 사관학교 출신들만 우대를 받는 것은 아니고, 다른 장교 임관 루트 과정을 거친 사람들 역시 장성급으로 많이들 진급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병사로 군생활을 시작해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다 천안문 사태 진압명령 거부로 직위해제 뒤 징역형을 선고받은 쉬친셴이 있다.
3.5. 영국군
3.5.1. 공군
- 키스 파크(Sir Keith Rodney Park, 1892.6.15 ~ 1975.2.6) : 뉴질랜드 태생으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입대하였으며 안작군 포병대대의 부사관으로 갈리폴리 전투에 참여하였고 이후 소위로 임관한다. 이후 솜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더 이상 말을 탈 수 없다고 통보받고 영국 육군의 항공부대(Royal Flying Corps)에 들어가게 되며 20대의 적기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전간기에 RAF Staff College에 선발되었으며 이후 1938년에 공군 준장으로 전투기 사령부의 수석 참모 장교가 되었다.(이 당시 전투기 사령관이 다름 아닌 휴 다우딩이다.) 이후 공군 소장(Air Vice Marshal)로 진급하여 제 11그룹의 지휘관이 되었다. 이후 영국 본토 항공전의 주역으로 영국의 승리에 기여하지만 한직으로 좌천된다.[21] 이후 사막 공군의 지휘관으로 다시 임명되었다가 몰타 항공 사령부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몰타 항공전등을 승리로 이끌으며 이후 공군 중장(Air Marshal)으로 진급하여 중동 공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종전 직전에는 태평양 전역으로 전출갔으며 이후 1946년 12월 20일에 퇴역하고 뉴질랜드로 돌아간다. 최종계급은 대장(Air Chief Marshal)이다.
3.6. 자위대
자위대에서는 사병을 조사, 장군/제독을 장관이라 표현하므로 굳이 말하자면 조사 출신 장관(曹士出身将官)이 되겠다. 일본군 시절에는 사관-하사관-병사/수병의 구분이 워낙에 신분제도처럼 굳건했기 때문에 사병 출신 장군/제독이 나오기 힘들었다.[22] 그에 비해 자위대는 삼등(육/해/공)위를 현역인 경우엔 만 49세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해놓아 조사에서 간부[23] 로 신분 전환이 잦은 편이다.
몇몇 사례가 있긴 하나 조사 중 관련자료. 자위대는 건군기 때 일부 장교단을 제외하고 전원을 이등병으로 입대시켰기 때문에 초기에 이런 케이스가 있었다. 다만 건군기 시절의 자료는 희박한 편이다.
건군기 시절에 이등병으로 입대한 뒤 장교로 승진한 구 일본군 출신 자원 외에 일본군 출신이 아닌 사병 출신 장관으로는 자위대생도를 거쳐 방위대학교에 진학한 경우가 있다. 자위대생도는 현재는 폐지된 제도로 조(曹)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인데 사(士) 계급을 주고 4년간 교육을 시킨 뒤에 삼등(육/해/공)조로 임관시켰다. 일부 우수 인원은 방위대학교로 진학해 4년간 교육을 더 받고 삼등(육/해/공)위가 됐고 조 코스를 따른 인물들도 간부로 신분전환[24] 한 인물들도 많다. 한국으로 치면 금오공고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졸업자가 사관학교 진학 후에 장성으로 진급한 케이스.
해자대나 공자대는 기술군 특성이 강한 탓에 육자대만큼 조사 출신 장관은 없다.
3.6.1. 육상자위대
3.6.1.1. 일반
3.6.1.2. 자위대생도
자위대생도[25] 는 1955년부터 1기를 모집했고 방대는 1953년부터 1기를 모집했다. 1955년에 자위대생도 1기로 입학한 사람이 1959년에 삼등조로 임관하지 않고 방대로 진학하면 방대 7기가 된다. 정상적인 루트를 밟으면 여섯 기수가 차이가 나며 그보다 차이가 적으면 자위대생도를 중퇴한 뒤에 방대 진학, 길면 조 근무 중에 방대에 입학한 것이다.
- 카세 시즈오(加瀬静夫) : 육상자위대생도 14기, 방위대 20기. 육상자위대경무대장(헌병감)을 지냈다. 최종계급 육장보.
- 타케다 마사노리 (武田正徳) : 육상자위대생도 12기로 삼등육조로 임관한 뒤 호세이대학 통신과정으로 학사 학위를 딴 뒤에 삼등육위로 임관했다. 자위대생도 중에서 방위대학교를 거치지 않고 육장까지 진급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미야자키 고스케도 방대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육장보까지 밖에 진급하지 못 했다.
- 도가시 가쓰유키(富樫勝行) : 육상자위대생도 20기로 방위대 25기로 입학.
- 미야자키 고스케(宮﨑悟介) : 육상자위대생도 10기로 주오대학에서 학사를 딴 뒤 임관해 육장보까지 진급했다.
- 사카이 켄(酒井健) : 육상자위대생도 13기로 졸업한 뒤 방대19기로 입학해 북부방면대 총감을 지냈다. 최종 계급 육장.
- 사토 슈이치(佐藤修一) : 육상자위대생도 13기, 방대 19기. 제2사단장 등을 지냈고 최종 계급 육장.
- 와타베 히로유키(渡部博幸) : 육상자위대생도 19기로 조로 복무 중 고쿠가쿠인대학에서 학사를 딴 뒤 간부로 임관. 후지학교 보병과장을 지냈다. 최종계급 육장보.
- 아베 타카시(安部隆志) : 육상자위대생도 15기, 방대 21기. 보급통제본부장을 지냈고 최종 계급은 육장이다.
- 야마가타 카츠미(山形克己) : 육상자위대생도 15기, 방대 20기. 자위대생도와 비슷한 제도인 고등공과학교[26] 의 초대 교장을 지냈다. 최종계급 육장보.
- 오하라 시게루(小原繁) : 육상자위대생도 14기로 조 복무 중에 주오대학 상업부 학사를 따 간부가 됐다. 제1고사특과단장(제1방공포병여단장)을 지냈다. 최종계급 육장보.
- 이노우에 다케시(井上武) : 육상자위대생도 16기, 방대 22기. 포병학교인 후지학교장을 지냈다.
- 치바 토쿠지로(千葉徳次郎) : 육상자위대생도 15기, 방대 21기. 북부방면대 총감을 지냈다.
- 히로세 세이이치(廣瀬清一) : 육상자위대생도 9기로 방대 17기로 입학했고 육상자위대간부학교장[27] 을 지냈다. 최종계급 육장.
- 히야마 슈조우(樋山周造) : 육상자위대생도 3기, 방대8기로 입학해 서부방면대 총감을 지냈다. 최종 계급 육장.
3.6.2. 해상자위대
-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 특이한 것이 육상자위대생도 7기로 입대한 뒤에 가나가와대학에 진학해 학사 자격을 딴 뒤에 해상자위대 간부로 입대했다. 최종 보직은 항공집단 사령관으로 해장으로 예편.
- 하츠타니 타츠오(初谷龍夫) :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에 삼등해사으로 입대했다가 간부로 지원해 통합막료감부 사무국제1막료실장을 지냈고 해상자위대의 특기학교인 제2술과학교장을 지낸 뒤에 퇴임했다. 최종 계급 해장보.
3.6.3. 항공자위대
보통 항공학생[28] 은 진급 상한선이 일등공좌이지만 순직으로 장관이 되는 경우가 있다.
- 나카가와 히로후미(中川尋史) : 2000년에 11월 22일에 47세로 순직했는데 연습기를 타고 가던 중에 주택가에 비행기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비행기를 최대한 몰다가 탈출 시기가 늦어져 추락해 순직했다. 원래 계급은 이등공좌였으나 사후 추서로 2계급 특진하여 공장보가 되었다. 항공학생 28기 출신.
3.7. 이스라엘군
학사장교나 일부 과정의 사관학교가 있지만 단기간부사관이 활성화된 군대다.
- 1대 총참모장 야코브 도리: 영국군 유대군단에서 사병으로 복무 후 하가나(Haganah)[30] 에서 근무했다.
- 7대 총참모장 모셰 레비: 1954년 골란보병여단에 입대하여 1956년에 장교로 임관했다.
- 15대 총참모장 암논 립킨 샤하크(Amnon Lipkin-Shahak): 1962년 공수여단에 입대하여 사병 복무 중에 장교 지원.
- 17대 총참모장 모셰 야알론(Moshe Ya'alon):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나할여단에서 근무 후 전역했다가 제4차 중동전쟁인 1973년에 동원되어 참전한 후에 군에 복귀하여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장교로 지원했다.
- 20대 총참모장 베니 간츠: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공수여단 사병으로 근무 후에 장교 지원.
4. 유사 사례
4.1. 경찰
대한민국 경찰청의 경우 일반 직원 코스와 간부 코스[31] 를 따로 두고 있다.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진급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체계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간부과정으로 실무를 겪지 않고 바로 지휘관으로 쓰는 자원들이 많아 어렵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순경부터 경찰청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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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팔호(李八浩) : 10대 경찰청장. 1968년 순경으로 입직한 뒤에 1970년에 간부후보생 19기로 편입한 사례라, 엄밀히 모든 계급을 다 겪고 올라간 것은 아니다.
미국 경찰처럼 직원이 승진해 간부가 되는 나라에선 순경부터 청장(commissioner)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꽤 많으며, 일부 지역에선 고위 계급 특채나 주지사 등이 임명 혹은 선거로 뽑기도 한다. 영국 경찰의 경우 경찰청장을 '''순경장'''(chief constable)[32] 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4.2. 소방
대한민국 소방청도 경찰처럼 일반 직원 코스와 간부 코스[33] 를 따로 두고 있다.
다만 소방의 경우 경찰과는 다르게 간부나 직원이 모두 몸으로 직접 고생하는 보직이 굉장히 많다보니, 직원 출신들이 간부로 많이 승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느 나라를 가도 그렇지만 소방의 경우 마치 舊 독일군처럼 사관생도들이 병사 생활을 몇 년 하다가 장교로 임관되는 그런 경우가 많다보니, 경찰과 군대와는 다르게 진급에 대한 차별을 잘 안 두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소방사부터 소방청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니까 주의. 경찰의 경우처럼 소방 역시 이런 사례는 어쩌다 간혹 나오는 수준이다. 청장이 아무나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
5. 가상 사례
창작물에선 좋게 그려질 땐 굇수급 명장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다. 꼬꼬마 이등병부터 전장에서 구른지라 사병들 신경도 잘 써주고 그때부터 쌓인 실전 경험이 지휘관이 되면서 어마어마한 전략의 귀재로 꽃피어나는 식. 사관학교 같은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장군들을 능력에서 압도하는 모습도 흔히 보인다.
허나 안 좋게 그려질 때는 요령과 애널써킹만 단련한 야망으로 똘똘뭉친 출세욕 덩어리 정도로 나오는 모양.
- 스타쉽 트루퍼스: 인베이젼 - 후안 리코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오버워치
- 우주제일의 무책임 남자
- 저스티 우에키 테일러: 행성연합우주군에 이등병으로 자원입대해, 이등병→소위→소령→중령→대령→소장→이등병(강등)→대장→원수로 진급했으며 최후에는 대통령까지 된다.
- 원피스: 원피스의 해군은 해군사관학교 같은 장교 양성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사병부터 시작해 개인의 실력과 능력에 따라 부사관으로 진급하고, 이 이상 실력을 보이면 장성까지 진급이 가능하다. 이때 진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육식과 패기의 사용가능 여부이다. 예를 들어 아직 제독은 아니지만 해군 고위층 인사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코비는 해군 중장 몽키 D. 가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1년도 안 되어 해군 지부 잡일꾼에서 해군 본부 상사까지 진급했으며, 그 후 정상결전 도중에 견문색 패기를 습득하고 육식을 체득하여 2년 후에는 해군 본부 대령이 되었다. 물론 잇쇼처럼 징병으로 처음부터 대장으로 특별임관시킨 사례도 있다.
- 은하영웅전설
- 라이오넬 모튼: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자유행성동맹군 제9함대 부사령관(소장)을 거쳐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 앞서 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신설된 동맹군 제14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전사했다.
- 랄프 칼센: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 앞서 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신설된 동맹군 제15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전사했다.
- 발터 폰 쇤코프: 18세에 하사로 임관, 20세에 준위, 21세에 추천을 받아 간부후보생양성소에 들어가 22세에 수료, 소위로 임관 후 중장까지 진급했다.
- 알렉산드르 뷰코크: 이등병으로 시작하여 원수까지 진급하여 "살아있는 군사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 창세기전 시리즈
6. 역사적 사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으로 명나라 홍무제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이와 비슷한 인물로써, 사병이라고 보기도 뭣한 변소치기(...) 출신이다. 촉나라 위연이 대표적.
사실 전근대의 최상층 권력자들은 직접 군대를 지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37] 졸병으로 군 경험이 있는 평민 중에서 최상층 권력자에 오른 사람들은 거의 100% 사병 출신 장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 인민군에서 사관(부사관)과 병을 합쳐 부르는 말.[2] 독일군의 경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장교후보생을 병들과 함께 생활하게 하는 거랑 사병들 중에서만 장교를 뽑는 거랑은 다르다.[3] 북한에서 장군이라는 단어는 김정일에게만 쓸 수 있는 호칭이기에, 장군 및 동일 지위의 단어인 제독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장령이라는 용어를 쓴다.[4] 주·야간 정규 대학교말고도 학점은행제, 독학사를 포함한 모든 학사 학위 취득 후[5] 갑종장교 45,242명에서 장성급 장교로 진급한 인물은 200명 정도고 대장은 5명이 나왔는데 이중에 사병 경력이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6] 전시에 사병을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7] 대령 출신 단기사관 장교에 따르면 하사관 출신으로 대령까지 오른 것도 감지덕지하라는 육사 출신 장군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출처[8] 현재의 정보본부.[9] 미군에서는 후임기수가 최선임 보직에 간다고 선임기수를 제대시키지는 않는데, 한국에선 후임이 동급 이상으로 올라오면 선배들이 줄줄이 퇴직하는 게 관례(검찰에서도 후배가 총장이 되면 선배들이 줄줄이 변호사로 나간다)라 권 장군은 꽤 드문 사례다.[10] 대학 재학자를 일반 병들과 달리 36개월이 아닌 18개월만 복무시킨 제도.[11] 훗날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그 JP 김종필 전 총리가 맞다.[12] 포스코의 창업자로 알려진 그 분이 맞다.[13] 1976년에 항공고 8기로 입학해 1979년 임관했고 1980년에 공사 32기로 입학했다.[14] 예편 후에 충남대 군수무기체계연구소장을 지내고 있다. 한국종이비행기협회장을 지낸 바도 있다. 고교 시절에 항공기술을 공부한 출신답게 미국에서 항공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5] 다만 이 경우 공사 가입교 훈련기간중에 하사 임관 인사명령이 발령되기 때문에 하사로 임관, 복무한 기록근거는 남는다. 또한 사관학교 재학 중 졸업할 때 까지 하사 급여를 계속 지급받는다. 한편, 항과고 졸업생이 공사로 직진입한 뒤 도태가 되면 동기생 뒷군번의 하사로 임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사 계급으로 복귀하게 된다. 여튼, 어느 루트여도 사병 출신 장성으로 볼 수 있다.[16] 하사관의 경우는 군 복무기간이 10년에 달해 보통 중사나 상사로 전역하므로, 최상위 계급인 특무상사나 장기복무하는 초기복무사관을 제외하면 병이랑 다른 신분이라고 보기도 힘들다.[17] 대장(4성장군)으로만 한정한다면 60-70% 정도로 높긴 하다.[18] 당시엔 독일2제국. 즉, 독일계 미국인이다.[19] 미 해군과 미 해병대의 비행장교들이 최소 83명의 여성과 7명의 남성을 성적으로 괴롭힌 사건이다. 테일후크라는 이름은 바로 항공모함 착함용 어레스팅 기어를 일컫는 그 이름이다. [20] 당시의 부사관 체계는 좀 달랐다. 현재는 First Sergeant가 일등상사를 가리킨다. 하사는 staff sergeant.[21] 여담으로 이때 파크의 자리를 넘겨받은 사람이 12그룹의 지휘관이었던 트래퍼드 리맬러리이다.[22] 일본 해군의 경우 한때 특무사관이라 하여 수병이나 하사관 출신 일부를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가 있었다. 소매에 사쿠라 문양 세 개를 다는 표식을 달고, 계급도 명칭 앞에 "특무" 자를 붙이는 등(ex)특무소위) 일반사관과 차별을 두었다. 이런 정책과 군내 분위기상 특무사관은 일반사관보다 한 두 계급 정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관행이 있었고 진급에서도 불이익을 심하게 받았는데(해군 특무사관의 진급 상한선은 사실상 소좌까지였고 그나마 극소수였다. 대부분 대위에서 끝냈고 매우 적은 숫자만이 중좌까지 진급하는 게 다였다.), 폐해가 잦자 전쟁 직후 특무사관들을 일반사관으로 편입시키고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23] 자위대에서 장교에 해당하는 신분을 이르는 말.[24] 자위대는 만 50세 직전까지 조가 간부 시험을 칠 수 있다. 육상자위대생도의 경우 졸업자의 90% 정도가 최소 삼등육위까지 진급했다. 대부분의 진급 상한선은 일등(육/해/공)좌였다.[25] 4년 동안 사로 교육받고 삼등조로 임관한다.[26] 여기는 자위대생도와 달리 학생을 민간인으로 둔다. 사로 두지 않는다.[27] 육군대학에 상당.[28] 조종 전문 장교를 양성하는 과정으로 한국으로 치면 처우는 다르지만 항공준사관과 비슷하다. 교육입과할 때 2년간 사 생활, 4년간 조 생활을 해서 삼등공위로 임관한다.[29] 당시 항공학생의 명칭이었다.[30] 1920년에 창설된 이스라엘 건국 전의 무장집단으로 이스라엘 독립 후에 이스라엘군에 편입되었다.[31] 간부후보생과 경찰대학, 고등고시 출신 임관 등 경위 이상 계급에서 시작하는 코스.[32] 순경constable의 으뜸이란 뜻.[33] 간부후보생과 (흔히 우리나라에 소방간부 코스를 양성하는 소방대학이 있을 것으로 착각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소방대학은 없다.), 고등고시 출신 임관 등 소방위 이상 계급에서 시작하는 코스.[34] 참고로 같은 해병대 출신인 아크튜러스 멩스크와 사라 케리건은 순수 사관학교 출신 장교다. 레이너처럼 간부사관 출신이 아니다 이 말이다.[35] 그러나 레이너의 경우에는 소속이 여러번 바뀐 케이스이다. 조합 전쟁 당시 연합의 해병이었고 탈영한 이후에는 마 사라의 보안관이었다가 자치령 당시에는 반란군 총사령관이었으며 발레리안이 왕위를 이어받자 자치령 사령관이 되었다.[36] 자치령에서도 수뇌이자 거물이 된건 맞지만 정확히 총사령관이 되었는진 미지수다. 원문에는 Supreme commander, commander-in-chief등이 아닌 그저 commander라고 적혀 있는데다 옛 부하인 맷 호너 역시 자치령의 제독이 되어서 함께 자치령 군을 이끌었기 때문. 거기에다 스타크래프트 위키에도 자치령 군 총사령관 항목에 레이너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37]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국가원수가 군 통수권자이기는 하지만 직접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