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푸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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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중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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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1. 개요
2. 생애
3. 주요 특징
4. 사생활, 그 외
5. 푸치니의 작품들
5.1. 오페라
5.2. 관현악
5.3. 실내악
5.4. 피아노
5.5. 합창
5.6. 가곡


1. 개요


Giacomo Puccini 1858년 12월 22일 ~ 1924년 11월 29일 이탈리아작곡가.

2. 생애


이탈리아 루카에서 태어났다. 4대가 음악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와 이름이 같다. 아버지는 음악학교의 교사였지만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세간의 예상과는 다르게, 어릴 적에는 음악에 대한 관심은 일절 없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러다니며 말썽만 피우는 문제학생이었다. 심지어 그를 가르치던 한 음악 교사는 푸치니가 가업을 이을 가능성은 없다며 그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는 푸치니에 대한 기대와 지원을 그치지 않았고 그를 루카의 음악 학교로 보냈다. 푸치니는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카를로 안제로니라는 [1] 선생을 만나 엄청난 속도로 음악을 배우고 루카의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드디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세페 베르디오페라 "아이다(오페라)"를 보고 오페라 작곡가로 살것을 결심하여, 1880년에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가리타 왕비의 후원 등을 받아 밀라노의 음악학교에 입학해 폰키엘리 밑에서 배웠다.
밀라노 음악원 재학중 폰키엘리의 권유로 창작 오페라 공모에 처녀작 "빌리"(Le Villi)를 냈으나 당선에 실패했다. 그러나 1884년, 이탈리아 오페라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리코르디 출판사에서 "빌리"의 악보를 출판하고 공연을 후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푸치니의 본격적인 오페라 경력이 시작되었다.
1896년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된 "라보엠"(La Boheme)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1900년에는 로마에서 "토스카"(Tosca)가 초연되어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을 작곡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904년 "나비부인"을 밀라노에서 초연하여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나비부인" 이후로 푸치니의 오페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음악적으로는 "라보엠","토스카","나비부인"에 미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진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1907년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적 소재로 작곡한 "서부의 처녀들"이 1910년에 뉴욕에서 초연되었고 1918년에는 전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3연작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가 무대에 올랐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진게 아니냐는 평을 받던 푸치니는 중국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투란도트"를 접하자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음악의 경지로 들어가 푸치니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준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했다. 하지만 이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에 암이 겹쳐 결국 "투란도트"의 완성을 거의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으며, 미완성된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후배인 프란코 알파노(1875~1954)가 완성하여 1926년에 밀라노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둔다. 초연 당시 토스카나니는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지휘하고 연주를 마치는 것으로 원 작곡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에 투란도트의 나머지를 겨우 완성시켰던 알파노는 꽤 섭섭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3. 주요 특징


  • 푸치니는 로시니에서 베르디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계보를 잇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낭만주의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완결하고 현대 이탈리아 오페라로 나아가는 길을 연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극장을 위해 작곡할것을 신께 명받았다"라고 할 정도로 위대한 오페라들을 남긴 그는 자칫 성악에 치중하기가 쉬웠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유려한 관현악법의 구사로 이전 작곡가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였다.
  • 이런 푸치니는 당대 다른 음악가들의 경향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방식으로 녹여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예를 들어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도동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활용했다던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심지어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의 영향까지도 일부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 또한 그의 오페라에서는 인상적인 여성 주인공들의 묘사가 탁월하게 나타난다. "라보엠"의 미미, "토스카"의 토스카,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쵸쵸상), "수녀 안젤리카"의 안젤리카, 그리고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공주까지 그의 오페라는 이런 인상적 여성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선율로 청중들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런덕에 위대한 여성 오페라 가수들에게 푸치니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꼭 거쳐가야할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비부인", "서부의 아가씨", "투란도트"처럼 동양이나 미국 서부같은 이국적 소재들을 적극 활용했다는 특징도 있다.
  • 베르디 시대때부터 시작된 가사와 극적 표현의 강조를 그대로 이어서 심화시켰는데, 이는 가수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4. 사생활, 그 외


고급 의류를 상당히 센스 있게 입고 다닌 간지남이었으며,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닌 얼리 어답터였고[2], 이로 인해 당시로서는 드문 자동차 사고로 상당기간 고생을 했다. 거기에 여자 관계가 복잡한 바람둥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호화롭고 자유롭고 방탕한 삶을 추구한 인물이다.
  •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Elvira, 결혼 전 성은 본투리Bonturi)는 원래 푸치니 친구 나르시소 제미냐니(Narciso Gemignani)의 아내였고 둘 사이에는 포스카(Fosca)란 딸과 레나토(Renato)란 아들도 있었는데, 친구가 자기 아내에게 피아노 개인 교습을 해달라고 부탁하여 푸치니가 친구의 집을 드나들다가 불륜관계가 되었다. 엘비라는 끝내 딸을 데리고 남편과 별거하여[3] 푸치니와 지내게 되어 아들 안토니오까지 낳았고 푸치니의 차 사고 이후 하루가 지나 나르시소가 사망하자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참고로 친구 나르시소 또한 바람둥이에다가 이 사실에 매우 당당한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부부 간에 불화가 심했으며 나르시소는 결국 자기 불륜 상대의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그렇게 요란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결혼했건만, 그녀가 나르시소와 결혼해있던 상황에서도, 그리고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아서 가정불화를 겪었다. "나비부인"을 작곡할 당시에는 여주인공에 대한 영감을 얻겠다면서 일본인 소프라노를 집에 끌어들여서(...) 부인과 다투기도 했다.
  • 어린 소녀 도리아 만프레디(Doria Manfredi)를 가정부로 들였다가 남편과 소녀의 관계를 의심한 부인이 강력히 반발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소녀가 푸치니의 집을 떠난 후 얼마 안되어 자살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다.[4] 소녀는 유서로 자신의 시신을 부검하여 처녀인지를 밝혀달라고 청했다. 이에 부검 결과 진짜 처녀였음이 밝혀져서 푸치니의 부인이 투옥되었다가 나중에 푸치니가 거금을 들여 처를 석방시키는 일이 생겼다. 이를 두고 부인의 괜한 의부증이라는 주장과, 푸치니가 의심받을만한 짓을 한 것이 맞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도리아는 우연히 푸치니의 의붓딸 포스카가 당시 기획자 살바토레 레오나르디(Salvatore Leonardi)와 결혼한 유부녀[5]인 상황에서 대본작가 구엘포 치비니니(Guelfo Civinini)와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했다. 도리아가 자신의 부정을 누설할까봐 두려워진 포스카는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도리아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고 비난했다. 엘비라는 여기에 낚였고, 도리아를 의심한 나머지 심한 모욕을 가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푸치니는 그 소녀와 바람을 핀 것은 아니지만 그 소녀의 사촌 줄리아 만프레디(Giulia Manfredi)와는 실제로 바람을 피고 있었던 것. 사촌의 후손인 만프레디 집안의 구성원들은 자신들도 푸치니의 혈연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촌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의 이름과 본처와의 자식들의 이름이 모두 일치한다. 심지어 푸치니는 그녀를 위해 그녀를 찍은 사진, 영상 클립들을 선물했다. [6] 만프레디가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 사실이 소문으로 허다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만프레디가의 일원들은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자고 주장하나 푸치니가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 실제로 혈연이 있음이 입증되면 각종 재산 분할과 관련한 법적 분쟁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 이 일련의 사건은 ‘도리아 사건’이라고 불리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구설수에 오른 일이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8년에 푸치니의 여인(Puccini e la fanciulla)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 거위 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암으로 사망한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7] 하지만 푸치니의 사망 원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름아닌 담배. 실제로 푸치니는 지독한 골초로 유명했고,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는 오랫동안 교류를 해왔는데 이와 연관된 일화가 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매우 지독하게 다툰 뒤 한동안 만나기는커녕 연락조차 끊고 지내게 되었다. 이후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푸치니가 지인들에게 빵을 선물로 보내다가 실수로 토스카니니에게도 빵을 보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푸치니가 따로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보냈음'이란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토스카니니의 답장은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었음'이라고..... 이후 두 사람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럭저럭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5. 푸치니의 작품들



5.1. 오페라


  • 르 빌리
  • 에드가(푸치니의 오페라)|에드가
  • 마농 레스코
  • 라 보엠
  • 토스카
  • 나비부인
  • 서부의 아가씨
  • 제비(오페라)
  • 삼부작(Il Trittico)[8]
  • 투란도트

5.2. 관현악


  • 전주곡 E단조 (1876)
  • 아다지에토 F장조(1881~3)
  • 교향적 전주곡 A장조 Op.2 (1882)
  • 교향적 카프리치오 Op.3(1883)

5.3. 실내악


  • 현악 4중주 D장조(1881~3)
  • 현악 4중주를 위한 3개의 미뉴에트(1881)
  • 현악 4중주 C♯단조 '국화(Crisantemi)' (1890)

5.4. 피아노


  • 작은 왈츠(1894)
  • 피아노 소품(1916)

5.5. 합창


  • 칸타타 아리따운 이탈리아의 아이들(1877)
  • 미사 글로리아(1880)
  • 레퀴엠(1905)

5.6. 가곡


  • 태양과 사랑(1888)
  • 바다와 땅(1902)
  • 영혼의 노래(1904)
  • 황금같은 꿈(1912)
  • 로마의 찬가Inno a Roma (1919)
[1] 카를로 안제로니는 인내심과 제자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2] 사실 푸치니가 살던 시절에는 최고급이고 뭐고 간에 자동차 자체가 매우 비쌌다.[3] 아들 레나토는 아버지 나르시소와 같이 지냈으며, 아버지가 죽은 이후 주로 하인과 친척들 손에 컸다. 새아버지가 된 푸치니도 그를 신경써주기는 했다고 한다.[4] 푸치니의 미완성 유작인 오페라 투란도트에 남주인공의 하녀 류가 자살하는 내용이 도리아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평도 있다.[5] 그녀가 남편 살바토레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 2녀(프랑카, 엘비라, 안토니오) 중 하나인 엘비라(Elvira Leonardi Bouyeure)는 비키(Biki)란 예명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예명은 할아버지 푸치니가 장난꾸러기 소녀란 뜻의 이탈리아어 단어 birichina에서 따와서 그녀를 부르던 별명 Bicchi에서 유래했으며 푸치니는 그녀를 제일 아꼈다. 포스카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 사업가 마리오 크레스피(Mario Crespi)와 재혼했다.[6] 당시 사진은 매우 비싸고 시간을 잡아먹는 고급 매체였다.[7] 언젠가 거위 고기를 먹다가 잔뼈가 식도를 긁으면서 낸 상처가 악성 종양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것. 조류의 뼈는 속이 비어 있어 부러지면 굉장히 날카로우니…. 당시 의학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정말 그게 발병 원인이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탈리아인인 만큼 식도에 난 상처가 계속 매운 맛 등으로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영 못 믿을 말도 아니다.[8] 단막극 셋을 하나로 묶은 연작으로, 단테신곡을 모티브로 순서대로 지옥, 연옥, 천국편을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세 작품의 괴리감이 심해 같이 연주되는 일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