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1.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 경향
매너리즘
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스모라고 하며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나타났다. 늘어진 형태, 과장되고 균형에서 벗어난 포즈, 조작된 비합리적 공간, 부자연스러운 조명 등등의 특징이 있으며, 인공미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매너리즘의 특징으로는 왜곡되고 늘어진 구불거리는 형상, 불명료한 구도, 양식적인 속임수와 기괴한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콘트라포스트와 인체를 극도로 길게 늘이는 과장된 표현이 조각과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너리스트 미술은 열광적 감정, 긴장과 부조화의 느낌, 신경 불안의 감각을 전달한다.
한 예로 파르미지아니노의 <목이 긴 성모>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목이 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 연체동물 같은 아기 예수의 모습이 기이해 보일 정도다.
1.1. 상세
매너리즘이 유행하던 시대(15세기 중반~16세기 중후반)의 유럽은 서로마 멸망 이래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광풍은 전 유럽으로 퍼지고 있었고, 정작 르네상스의 출발점이었던 이탈리아는 발루아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경쟁 속에 파묻혀 버렸다. 중세의 이상적 기사도는 니콜로 마키아벨리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정치론에 파묻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중세적 질서가 통째로 흔들리기에 이른다. 르네상스 예술의 주요한 후원자 중 하나였던 가톨릭교회는 세력을 잃어감에 따라 예술가들에게 자유를 주었던 르네상스 시대와는 달리 점차 엄격한 양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1] 이러한 격변기 속에서 르네상스적인 가치었던 조화롭고 이상적인 미의 기준은 조금씩 그 의미를 잃어가게 되었다.
매너리즘의 단초를 처음으로 제공한 예술가는 미켈란젤로였다. 나이가 들면서 점자 신앙에 깊게 빠져들었던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르네상스적인 안정감이 무뎌지고 격정적이고 비례를 일부 포기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후의 심판>이 대표적인 이 무렵의 작품으로, 이 그림은 구도에 따라 사람들의 크기가 다르고, 통일성보다는 격정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틴토레토, 엘 그레코 등의 예술가들에 의해 본격화되어 전 유럽을 휩쓸게 된다.
매너리즘 양식은 훗날 절대왕정에 의해 궁정예술이 바로크 예술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전까지 상류층의 주된 예술 양식이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공화정이 붕괴되고 세속군주화되면서 상류층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비해 귀족적인 태도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원 덕에 이탈리아에만 머물렀던 르네상스와는 달리 매너리즘은 전 유럽으로 퍼질 수 있었다.
1.2. 부정적인 의미
원래 매너(Manner)란 특정한 양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매너리즘은 특정 기법이나 양식을 따라 작업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술사에서 이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전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같은 거장들에 비해 이후에 등장한 미술가 세대의 작품들이 보잘 것 없거나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가 하인리히 뵐플린이다. 그는 1520년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 회화에는 더 이상 고전적인 작품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뵐플린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매너리즘을 말기적 또는 퇴폐적이고 비창의적인 것으로 과소평가했다. 즉 르네상스가 끝물이던 시기에 등장한 허접 예술가들 정도로 평가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평가들은 주로 르네상스와 안정적인 고전주의적 미술을 높게 평가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1.3. 재평가
물론 매너리즘을 쇠퇴나 퇴행이 아니라 나름의 개성을 추구하던 것으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었다. 20세기 초에 접어들어서야 막스 드보르작을 위시한 학자들에 의해 이런 부정적 시대 개념이 지양되고 매너리즘은 독자적인 하나의 미술 양식으로 재평가되었다. 폰토르모, 파르미지아니노, 로소 피오렌티노, 브론치노, 후기의 미켈란젤로[2] , 틴토레토, 주세페 아르침볼도, 엘 그레코, 몬수, 바사리 등의 예술가들이 재평가를 받은 예술가들이다.
쉽게 말하면 드보르작은 오히려 정형을 벗어난 표현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는 낭만주의 시대의 인물이었던 드보르작이 신고전주의에 반발해 이런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과거의 고전미술이 황금비율 같이 특정 정형(카논)을 정해놓고 그에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면, 낭만주의 이후에는 도리어 그 정형을 탈피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이 대두된 현대미술에 와서, '완성도'보다 '메시지' 혹은 '정제된 표현' 내지는 '혁신' 등의, 반 기교 주의가 형성되면서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에 긍정적 의미가 추가되었다. 조금 이상해보이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정해진 것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까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라고는 볼 수 없다.
2. 의미의 파생
1번 문단에서 의미가 파생되어 일정한 기법이나 형식 따위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어 독창성과 신선한 맛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자기 표절과도 어느 정도 통한다. 오늘날에는 아무 설명없이 매너리즘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 이 파생된 의미로 쓰였다고 보면 된다.
상술한 미술사에서의 개념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이 차이가 난다.
- 뵐플린: 기존 형식과 달라서 나쁘다 (허접하게 흉내냄)
- 드보르작: 기존 형식과 달라서 좋다 (독창적인 시도)
- 파생되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 기존 형식과 같아서 나쁘다 (우려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