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경제
5. 기타
6. 매체에서 등장

[image]
[image]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국어
잔지바르 석조도시
영어
Stone Town of Zanzibar
프랑스어
La ville de pierre de Zanzibar
국가·위치
탄자니아 잔지바르 도시·서부 주
잔지바르시티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1], (iii)[2], (vi)[3]
지정번호
173
[image]
잔지바르의 깃발. 잔지바르 인민공화국 국기의 좌측 상단에 탄자니아의 국기를 합친 것이다.
[clearfix]

1. 개요


동아프리카탄자니아에 위치한 섬. 섬의 넓이는 2,461㎢. 서울특별시 면적(605.25 ㎢)의 약 4배 크기이다. 인구는 약 130만 명 수준(2018년 기준)으로 수원시보다 조금 많고 광주광역시보다는 조금 적다. 인구와 면적은 탄자니아 전체에 비해 미미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강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영어표기로는 Zanzibar.

2. 역사


[image]
잔지바르의 구시가지인 '바위 마을'
2만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고대로부터 교역지로 알려져 왔다. 중세시절에는 인도인페르시아인, 아랍인들이 오고가면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다가 1503년에 포르투갈에 점령되어서 오랜기간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았다가 1698년부터 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 시기의 잔지바르는 노예무역의 중개지로 번영을 누렸다. 당시 잔지바르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함께 단 둘뿐인 식민 제국인 오만 제국의 '''식민지'''였고, 오만 본토보다 잔지바르에 부와 영화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1739년에 나디르 샤에 의해 오만이 정복되자 잔지바르가 임시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들어 사이드 왕조의 오만 내에서 술탄 직위 계승 분쟁이 일어나 잔지바르는 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잔지바르 지역은 수에즈 운하의 등장으로 인해 쇠퇴가 가속화 되어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술탄이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을 치렀지만 결국 막강한 영국의 군사력에 잔지바르군이 참패하고 이후에도 영국의 간접지배를 받게 되었다.
1950년대 영국이 아프리카 각지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서 잔지바르도 독립 작업에 들어갔고 1957년에 첫 제헌의회 총선이 치러지면서 잔지바르 의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흑인 정당이 득표율에서 앞섰음에도 의석수에서 아랍계 정당과 보수정당에 밀리는 사태가 연달아서 벌어지고, 술탄이 사회 불안을 이유로 흑인정당을 탄압하여 흑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과거 아랍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던데에다가 노예해방 이후에도 다수의 흑인들이 하위층을 형성하고 아랍인이 상류층으로 군림하면서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고 이어져왔기 때문에 흑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갔다.
그러던 차에 1963년 잔지바르는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했으나 완전 독립을 앞두고 치러진 1963년 선거에서 흑인계 사회주의 정당인 ASP가 54%의 득표를 확보했음에도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의석수에서 아랍계 정당과 보수정당 연합이 선거에서 압승하자(24석 VS 13석) 흑인들의 불만감이 더욱 고조되었고 1963년 12월에 완전독립을 했지만 독립 1달후인 1964년 1월에 우간다 출신의 군소 게릴라 지도자 정도였던 오켈로[4]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겁을 먹은 술탄과 그 일가가 혁명 시작 하루도 안되어 각료들과 망명을 가고, 아랍인에 대한 보복이 시작되며 수천명의 아랍인과 인도인들이 사망하고[5] 살아남은 아랍인들도 대거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됨으로써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참고로 정권이 전복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7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월 들어서 학살극이 마무리되고, 카루메가 잔지바르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카루메와 오켈로는 근본적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에는 혁명주동자인 오켈로는 쫓겨났다. 그 후 카루메는 줄리어스 니에레레와 협상을 벌이기 시작하여 탕가니카와 통합작업도 진행되어 7월 탕가니카와 연방정부를 구성하면서 현재의 탄자니아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카루메는 시간이 지날수록 괴팍한 성격을 지닌 독재자로 변모해나갔고, 결국에는 1972년에 암살되었다. 줄리에스 니에레레가 카루메를 말려보았지만 안될때가 많았다. 이후로는 탕가니카와 마찬가지로 탄자니아 혁명당이 일당 독주하는 체제가 되었다.

3. 정치


잔지바르는 탕가니카와 별개로 자치권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법적으로 탄자니아 부통령을 잔지바르에서 뽑도록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영향력도 인구수에 비해서 센 편이다.
탄자니아 혁명당이 일당독주하는 탕가니카 본토와는 다르게 잔지바르에서는 시민연합전선의 힘도 강한편이며, 그래서 선거에서 여러번 접전이 벌어져서 충돌이 벌어진적도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잔지바르 내에서도 운구지 섬과 펨바 섬이 따로 놀기 때문이며, 잔지바르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아랍인을 축출하자 따로 독립하려고 하기도 했고, 이후로도 잔지바르 정부에서 펨바 섬에 별로 신경을 안써준다는 인식 때문에 불만이 많다. 한때 갈등이 심했을 때는 펨바 섬에서 수백 명의 난민이 발생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4. 경제


관광산업이나 수출형 농업산업이 잘 발달되어있기에 탄자니아 내에서도 잘사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예를 들면 잔지바르에서 TV방송을 1972년에 시작했고 1973년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초로''' 컬러방송을 시작했지만 정작 탕가니카에서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TV방송국이 개국되었다거나 하는 식이다.

5. 기타


잔지바르표범이 서식했었으나 현재는 멸종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2018년에 잔지바르 섬의 밀림에서 잔지바르표범으로 추측되는 고양이과 맹수의 움직임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섬 바깥과의 교통은 아베이드 아마니 카루메 국제공항(Abeid Amani Karume International Airport)과 잔지바르 항구를 이용할 수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탄자니아 인민 공화국 수립 당시 인도인 탈출행렬에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프레디 머큐리는 잔지바르 시절의 얘기를 하길 꺼렸다고... 마찬가지로 잔지바르 사람들도 프레디 머큐리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데 그가 양성애자였기 때문. 최근에는 프레디의 출생지라는 점 때문에 의 팬들이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하기 시작하면서, 돈냄새를 맡은 잔지바르인들 사이에서 그를 찬양 해대는 분위기가 늘었다.
교역의 중심지였던 스톤 타운(Stone Town)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잔지바르 관광의 중심지이다.

6. 매체에서 등장


  • 헐리웃 배우 잭 블랙과 카일 개스가 만든 밴드 터네이셔스 D의 앨범 수록곡 중 "Fuck Her Gently" 라는 노래에 등장한다.
[ 가사 보기 ]
[Intro]
This is a song for the ladies
But fellas... listen closely
[Verse 1]
You don't always have to fuck her hard
In fact sometimes that's not right to do
Sometimes you've got to make some love
And fucking give her some smooches too
Sometimes you got to squeeze
Sometimes you got to say please
Sometime you got to say, hey
[Chorus]
I'm gonna fuck you... softly
I'm gonna screw you gently
I'm gonna hump you sweetly
I'm gonna ball you discreetly
[Bridge]
And then you say, hey I brought you flowers
And then you say, wait a minute Sally
I think I got something in my teeth
Could you get it out for me?
That's fucking teamwork
[Verse 2]
What's your favorite posish?
That's cool with me
It's not my favorite
But I'll do it for you
What's your favorite dish?
I'm not gonna cook it
But I'll order it from Zanzibar
[Chorus]
And then I'm gonna love you completely
And then I'll fucking fuck you discreetly
And then I'll fucking bone you completely
[Outro]
But then I'm gonna fuck you hard!
Hard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참고로 당시 ASP 당수는 니에레레와 회담을 하기 위해 탕가니카에 체류중이었다고.[5] 최대 2만명이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지옥의 묵시록 항목에서도 언급되고 이 영화에 큰 영향을 준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몬도가네로 유명한 괄티에로 자코페티(Gualtiero Jacopetti, 1919~2011) 감독(프랑코 프로스페리 1926~2004. 공동 감독)의 1966년작 <Africa addio>라는 영화에서도 다루는데 헬리콥터로 학살당한 아랍인들을 찍은게 나온다. 그래도 1970년대 이후에 상당수 인도인들은 되돌아오기는 했다는 후문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