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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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KIA 타이거즈 시절.
'''이름'''
장일현(蔣一賢)
'''생년월일'''
1976년 5월 12일 (48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동대문상고 - 중앙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9년 2차 2라운드 (해태)
'''소속 팀'''
해태-KIA 타이거즈 (1999~2006)
'''지도자'''
신일고등학교 코치 (2013)
충훈고등학교 코치 (2014~2018)
'''해태-KIA 타이거즈 등번호 7번'''
이종범(1993~1997)

'''장일현(1999~2001)'''

이종범(2001~2012)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과 프로 입단
3. 프로 시절
4. 은퇴 후


1. 개요


해태-KIA 타이거즈의 외야수.

2. 아마추어 시절과 프로 입단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해태에 1999년 입단했다. 대학시절 천재 타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당시 해태가 '''이종범이 달던 등번호 7을 그에게 물려줄 정도'''로 거는 기대가 컸다. 즉, 타이거즈 역사 상 등번호 7번을 달고 뛰었던 단 3명의 선수(김종모, 이종범, '''장일현''') 중 한 명.
거포를 연상케 하는 체구나 비중, 그리고 해태가 큰 기대를 걸고 그에게 당시로서는 대단한 계약금을 준 점에서 김창희와 흡사한 선수.
장성호도 장일현이 해태에 입단할 당시 긴장했다고 한다.[1]

3. 프로 시절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과는 다르게 프로에 와서는 평범한 2할 6푼 정도를 치는데 그쳤다. 장타력도 기대 이하였고 수비도 별로였다. 무엇보다 2001 시즌 8월 어느 경기에서 '''경기 중에 몰래 담배를 피다가 당시 김성한 감독에게 걸려서 찍혀버렸다.'''[2][3]
이종범주니치 드래곤스에서 다시 타이거즈로 컴백하고 등번호를 뺏기게 된 그는 55번으로 바꿔 달았는데, 이 등번호도 다시 뺏기게 되어 결국 2005년에는 67번을 달게 되었다. 2006 시즌에는 다시 55번을 달게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좌타자라는 점과 얼굴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마쓰이 히데키와 닮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 해에 1군에 오르지 못하고 SK에서 방출된 조경환을 영입하기 위해 웨이버 공시가 되면서 야구와 연을 끊게 되었다.

4. 은퇴 후


은퇴 이후에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했으며 현재는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재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 실제로는 장일현이 1살 형이지만 장성호가 고졸이라 3년 먼저 입단했고, 98년 3할을 쳤지만 장일현이 온 것에 긴장했다면 장일현의 잠재력이 대단했다는 것에는 부인할 수 없다.[2] '경기 쉬는시간 중에 담배 필 수도 있지 않느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저 때가 해태에서 기아로 인수되어 이종범도 돌아오고 좋았지만 분위기는 아무래도 해태시절보다는 자유로워졌다고 하더라도 군기가 있던건 여전했다. 오죽했으면 손혁이 해태에 오기 싫다고 트레이드 거부선언을 했을 정도. 김주찬도 기아의 군기가 타팀에 비해서 세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3] 하지만 반박의견도 있는 것이, 이종범이나 몇몇 해태 선수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신인시절이나 어느정도 짬이 차면 클리닝타임에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먹었다고 한다. '''고로 장일현이 담배피다 혼난 것은 짬이 안되는데 싸가지 없이 행동해서였거나, 그냥 야구를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