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환(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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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소속의 외야수로 활약을 했고,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도 경험을 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백산초, 신월중, 서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1991학번)를 거치며 아마야구 최고의 타자로 각광받았고, 국가대표도 단골로 뽑힐 만큼 유망한 선수였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았는데, 정작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91학번) 졸업 후 조경환이 입단한 팀은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신생 실업 팀인 현대 피닉스였다. 당시 현대 피닉스는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가대표급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거 싹쓸이하고 있었는데, 조경환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그렇게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조경환은 실업 무대에서도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리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몇 수 아래의 투수들을 상대하는 건 그에게 허송세월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1996년 모기업인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을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하면서 현대 피닉스의 선수들은 대거 풀리기 시작했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최하위로 인해 병역특례 그런 거 없었던 조경환은 상무에 입대하여 복무를 마친 후 1998년 3월, 계약금 3억 원의 조건으로 원 지명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된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그와 함께 외야진으로 뛰었던 선수는 이병규와 최만호다.
여담으로 1985년 세계리틀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했던 선수 중 1명이다.[1]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만 26세의 늦깎이 신인으로 뒤늦게 프로에 데뷔한 조경환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장, 첫 타석에서 조계현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리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특히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2] 하지만 1998년 3월 상무에서 제대하자마자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한 관계로 동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 실업 무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프로의 높은 벽에 막혀 결국 0.231, 9홈런 40타점의 초라한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감한다.(응?)
하지만 이듬해인 1999 시즌, 펠릭스 호세와 마해영의 우산 효과를 든든하게 받은 조경환은 0.284 19홈런 65타점으로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 줬고, 2000 시즌에는 0.264 25홈런 64타점으로 마해영을 제치고 팀 내 홈런 1위에 오르며 당당히 롯데 타선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2001년에 마해영이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면서 조경환은 팀 내 유일한 토종 거포로서 큰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1년 만에 다시 롯데로 돌아온 펠릭스 호세의 존재는 조경환에게 큰 힘을 실어 줬고, 조경환은 그 해 0.303, 26홈런 102타점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하지만 펠릭스 호세가 다시 떠난 2002년에 조경환은 부진에 빠졌고, 그 해 6월 롯데의 새 감독으로 백인천이 부임하면서 그의 야구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백인천은 모든 롯데 타자들의 타격 폼을 일괄적으로 통일시키기 시작했고, 4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날리고 있던 중심 타자인 조경환도 예외는 아니었다.
176cm라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조경환을 슬러거로 만들어준 원동력은 타고난 손목 힘에서 나오는 커다란 어퍼스윙이었는데, 이걸 마뜩찮아한 백인천은 조경환의 스윙을 억지로 뜯어고치려 했다. 하지만 당연히 될 리가 없었고 결국 백인천의 눈 밖에 난 조경환은 그 해 7월,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된다.(조경환+대니얼 매기↔윤재국+박남섭+페르난도 에르난데스)
트레이드 통보를 받은 후 조경환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텅 빈 사직 야구장 스탠드에 올라가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서 인천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2.3.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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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이후 조경환은 홈런 한 개를 추가하는 데 그치며 0.214 13홈런 33타점의 성적으로 2002 시즌을 마친다.
그리고 절치부심한 2003시즌, 조경환은 0.285 23홈런 68타점으로 재기에 성공하며 SK의 창단 최초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하지만 2004 시즌에는 슬럼프에 빠지며 0.239 5홈런 31타점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박재홍이 입단하고 조동화가 상무에서 돌아온 2005 시즌부터는 아예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결국 조경환은 이듬해인 2006년 6월 26일 SK에서 웨이버 공시된다.
2.4.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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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종범의 부진과 심재학의 부상 때문에 외야진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KIA 타이거즈가 SK에 계약 양도를 신청하여 조경환을 영입하게 되고,[3] 조경환은 이적 후 4홈런을 기록하며 KIA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힘을 보탰다.
2007 시즌에는 주로 대타로 활약하며 0.225 5홈런 18타점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 KIA에서 방출 통보를 받게 되었고, 결국 은퇴하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2007 시즌 후 부임한 조범현 감독과의 모종의 악연이 있지 않았나 싶다. SK에 있을 때도 조경환은 조범현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퇴출되었으며, 조범현이 KIA 감독이 된 후 제일 먼저 취한 조치가 바로 조경환의 방출이었다. 당시 성적을 보면 조경환도 그다지 할 말이 없지만.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모교인 서울고와 고려대 타격코치를 역임했고, 2014년부터 현역 마지막 팀인 KIA 타이거즈의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하여 2016년까지 재임했다.
서울고 코치 부임 시절 안치홍과 박건우가 3학년으로 재학중이었다.
4. 그 외 경력
KIA 2군 타격코치에서 물러난 후 2017년부터 이대호, 이원석, 최준석 등이 소속되어 있는 에이전트사인 몬티스 스포츠의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그외 아마, 독립야구 중계를 맡았지만 사실상 프로인 2019년 KBO 리그 퓨처스리그 9월 3일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SK 와이번스 : LG 트윈스 경기 해설을 맡았다.
5. 여담
- 배우 김성민(1973)과 친한 사이였으며, 무명시절의 김성민에게 술도 사주고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 고려대 코치 시절 제자이기도 한 썩코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야구레슨과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 드라마 수사반장과 호랑이선생님으로 유명한 배우 조경환과 동명이인이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1] 프로로 진출했던 선수는 심재학, 김경원, 조경환, 김우덕 4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우덕은 부상으로 인해 일찍 은퇴했다.[2] 그러나 야구친구 기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다시 조사한 결과 조경환 이전에 데뷔 첫타석에서 홈런을 친 선수가 2명 더 있었다. 하지만 '''신인 개막전''' 데뷔 첫타석으로 한정하면 조경환만이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2018년에 강백호가 개막전 데뷔 첫 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유일한 기록은 아니게 되었다.[3] 이 때 엔트리가 꽉 찼던 KIA는 장일현을 웨이버 공시했다.[4] 임수혁과는 서울고와 고려대 시절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