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 키타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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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연예계 최대 거물급 기획사 중 하나인 '''쟈니스 사무소의 설립자이자 초대 사장'''. 통칭 쟈니상(ジャニーさん)으로 불린다. 1960년대 쟈니스를 설립한 이후 별세 직전까지 소속 연예인 발탁, 육성, 데뷔후 활동 및 공연 부분까지 관여하며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을 일본 엔터테인먼트에 바친 전설적인 인물이다.'''Show Must Go 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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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20~30대 시절 40~60대 시절 70~80대 시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귀국, 이 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6·25 전쟁 때 '''미군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전쟁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0개월 만에 한국어를 마스터했다고.
앙드레 김 선생처럼 특유의 외국어 섞어쓰기 + 일본 영어 발음이 하나의 클리셰화되어있어서 소속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종종 따라하는데, 대표적인 말투는 "'''You ~해버려!'''(You ~やっちゃいなよ!)" 소속 연예인을 부를 때는 이름보다는 'You'를 많이 쓰는데,[5] 이건 쟈니 사장이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누구는 이름을 알아서 이름으로 부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다면 특정 연예인을 편애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또 미국 문화의 영향도 있는지, 소속 연예인들이 자신을 부를 때 존댓말을 쓰지 말고 반말을 하도록 하기도 한다.[6]
스스로 무대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노령에 접어든 2010년대까지 무대 연출에 간접적이나마 관여했으며, 이때문에 쟈니스 소속 그룹의 모든 콘서트에는 '종합연출 쟈니 키타가와'라는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2011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콘서트를 프로듀스한 사람', '가장 많은 1위 싱글을 프로듀스한 사람'으로 등재되었으며, 2012년에는 '가장 많은 차트 1위 아티스트를 만들어낸 프로듀서'로 등재되었다.
언론에 자신을 노출하는 걸 극도로 꺼려 제대로 된 사진이 공개된 적이 없다. 위의 사진도 사실은 기네스북에 올려진 것인데, 현재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거의 유일한 쟈니 사장의 사진이라고 한다. 게다가 공적 + 사적으로도 자신의 속마음이나 언행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소속 연예인들은 그를 "대단하신 분이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평했다.
3. 사망
2019년 7월 1일 아라시가 아라시의 전시회 오픈식 기념 기자간담회를 통해 쟈니 사장이 현재 해리성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로 입원 중이라고 발표했다. 6월 18일에 의식이 없는 채로 병원에 실려왔고 ICU에서 치료받았으나 아직도 의식이 없다고 한다. 기사
결국 병원 이송 이후 약 1달 후인 7월 9일 오후 4시 47분 숨을 거두었으며, 쟈니스 사무소는 당일 저녁 사망 소식을 언론사에 배포했다. 기사 일평생 결혼을 하지 않아 배우자 및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직접 발굴하교 육성한 친자식과도 같았던 쟈니스 소속 아티스트들이 뭉쳐 가족장 형태로 장례식을 진행했다. 사무소 팩스 소속 연예인들 코멘트 장례식
2019년 9월 4일 오전 11시 도쿄 돔에서 고별회를 가졌다.# 쟈니스 소속 아티스드들이 전부가 참여했으며, 아베 신조 총리가 조전(弔電)을 전달하기도 했다.아베 총리 조전 오전 11시에는 소속 연예인 154명, 과거 쟈니스 소속 연예인[7] , 일반 연예인[8] , 기타 관계자들이 고별회에 참석했고, 오후 2시부터는 일반인들이 참석했다.고별회 재단 및 쟈니상과 쟈니스 그룹 일러스트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쟈니상을 추모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17시 30분 입장열의 접수를 중단했다. 주최에 의하면 오전 11시부터 행해진 관계자부 추모식에는 3,500명이 참석했고, 오후 2시부터 행해진 일반인들의 추모식은 오후 6시까지 무려 88,000명이 참석했다고 발표했다.출처
[1] 미국 시민권도 보유한 복수적이었으나, 2014년 말에 미국 시민권을 반납했다.[2] 쟈니에게 있어 자식과 다름없는 존재이다. 2019년 7월 12일, 가족들과 쟈니스 사무소 소속 연예인들에 한해 가족장 형태로 장례를 치렀다.[3] 평소 쟈니 사장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4]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관용구로서, 어떤 곤란한 일이 생겨도 하던 일은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5] 칸쟈니∞의 요코야마 유를 부를 때는 '요코'라고 부른다고.[6] 이에 대한 일화로,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카메나시 카즈야가 옆 대기실에서 전화통화를 하던 사쿠라이 쇼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첫 번째 통화는 존칭을 쓰고 두 번째 통화는 반말을 쓰기에 두 사람은 첫 번째가 쟈니 사장, 두 번째가 매니저일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가 매니저였고 두 번째 반말 통화가 쟈니 사장과의 통화였다고(...).[7] 고 히로미를 비롯, 카와사키 마요, 히카루GENJI, 닌자, 오토코구미의 일부 멤버들, 이마이 츠바사, 원오크락의 타카, KAT-TUN의 前 멤버 다나카 코키 등[8] 쿠로야나기 테츠코, 와다 아키코, 타케다 테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