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건

 


'''{{{#ece5b6 제(齊)나라 40대 국군
전씨 왕조 8대 국군
5대 왕
제왕 건
齊王 建}}}'''
'''묘호'''
'''세조(世祖)'''
'''시호'''
경왕(敬王)
''''''
규(嬀)
''''''
전(田)
''''''
건(建)
'''아버지'''
제양왕(齊襄王) 전법장(田法章)
'''어머니'''
군왕후(君王后)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21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64년 ~ 기원전 221년
1. 개요
2. 생애
2.1. 재위 초기 섭정기
2.2. 후승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치고 자신은 굶어 죽다
3. 여담
4. 대중 매체에서
4.1.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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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씨 제나라(田齊)의 제8대 군주이자, 마지막 . 제양왕과 군왕후(君王后)의 아들. 군 왕후의 섭정기 때는 나라가 안정되었다. 이때 진(秦)나라범저 때부터 사용한 원교 근공책을 사용해 제나라를 속여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초나라, 연나라가 망하는 것을 수수방관하게 했고, 연나라가 망하자 결국 제나라도 먹혔는데, 그것은 진나라와 내통한 상국 후승(后勝)의 말을 따랐기 때문이었다.[1] 그는 진시황에 의해 공 땅으로 유폐되어 굶어 죽었다.

2. 생애



2.1. 재위 초기 섭정기


제왕 건 원년(기원전 264년), 어머니 군 왕후가 섭정했다.
제왕 건 5년(기원전 260년), 진나라가 조나라를 쳤는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구원했다. 그러나 장평대전에서 조나라가 패해 40여만 명이 생매장을 당했고, 한단은 포위되었다.[2]
제왕 건 16년(기원전 249년), 어머니 군 왕후가 죽었다.

2.2. 후승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치고 자신은 굶어 죽다


제왕 건 28년(기원전 237년), 제왕 건은 진왕 정에게 입조했다. 진왕 정은 함양에 있었다. 그리고 술을 내어 제왕 건을 대접했다. 제왕 건은 군 왕후가 죽은 뒤, 후승(后勝)을 상국으로 삼았는데, 후승은 진나라로부터 황금, 보석 등을 받아 진나라를 섬길 것을 권해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진나라가 손쉽게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의 삼진은 물론, 초나라, 연나라까지 차례대로 멸망시킨다.
제왕 건 44년(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위에 언급한 나라들을 멸하자 제왕 건도 위기를 느끼고 후승에게 제나라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 이에 진시황왕전의 아들 왕분을 시켜 제나라를 쳐서 임치를 집중 공격하니 임치가 손쉽게 함락되었다. 진시황은 제왕 건의 항복을 받아들여 제나라는 멸망하였다.
제나라가 멸망하면서 진나라는 제나라를 군으로 삼았고 전건은 진나라에 입조하려 하다가 옹문을 지키는 사마와 대화를 해 나라에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해 사직을 위한 것이라 했다가 그 사마가 사직을 위해 왕을 세웠으면서 어째서 사직을 버리고 진나라로 들어가냐고 하자 제나라 지역으로 돌아갔다.
즉묵의 대부로부터 진나라에 복종하기 싫어하는 세력을 끌어들여 남쪽에서 왕을 칭한다는 의견을 들었지만 이를 거절했으며, 진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5백 리의 땅을 주겠다고 하자 전건은 그 말을 믿고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전건은 진 시황으로부터 공성(共城)의 송백나무 숲 속에 연금되었다가 굶어죽었다. 즉 음식을 끊어 그를 굶어 죽게 했다.[3] 후승은 진군이 제나라를 멸하자마자 처형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간신과 빈객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친 전건을 원망해 "소나무인가? 잣나무인가? 왕 건을 공에서 살게 한 사람들은 빈객인가?"라고 하면서 전건이 빈객들을 신중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

3. 여담


정말 여담이지만 제왕 건이 군 왕후 시절 때만큼 적극적인 군사적 움직임을 보였으면 멸망은 피할 수 없어도[4] 최소한 제나라를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제왕 건의 후손인 왕망(王莽)이 신나라를 세울때, 제왕 건에게 묘호를 세조(世祖), 시호를 경왕(敬王)으로 추존하였다.
그리고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강태공의 후손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이 양반의 조상은 강태공이 아니라 진여공(陳厲公)의 아들인 진완(陳完)이다. 애초에 제나라는 역성 혁명을 한 번 겪었으므로 국호는 변하지 않았지만 왕실은 강태공의 후손인 강제에서 전제로 바뀐 상태였다.

4. 대중 매체에서



4.1. 킹덤


전국 시대 진 시황과 장군 이신의 천하 통일을 그리고 있는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서는 뱀을 정력에 좋다고 생으로 씹어먹고 돈 주면 군대 무른다는 배금주의에 물든 천박한 왕으로 나와 실제 전건의 모습을 그리는듯했으나, 실제는 괴짜이긴 해도 제나라와 자기 백성을 아끼고 제나라뿐만 아니라 중화의 백성 전체를 생각하고 있던 범인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5]
진왕 영정이 중화 통일을 꿈꾼다는 이야기에 이목과 손을 잡고 다시 합종군을 일으켜 진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하였으나 영정이 꿈꾸는 세상이 단순히 진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쥐는 세상이 아니라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백성들이 다치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에 친히 극비리에 '''함양을 방문한다.''' 제왕은 진왕 영정(진시황)과 대면해 중화 통일에 대해 만약 진왕이 단순히 공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면 '''2차 합종군을 일으켜 진을 멸할 것'''이라고 단언하나 영정은 진나라가 육국을 단순히 정복하는 것이 아닌 중화 전체가 새로운 나라로 다시 세워지는 것이며 국적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법'을 기반으로 하는 육국이 차별받지 않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라 답한다.
이에 제왕은 진왕의 이상이 훗날 탁해지지 않는다면 진왕이 중화 전체를 좌우할 자격이 있을 것이라며 비공식적이고 조건이 붙었지만 대국 제나라가 '''마지막엔 진나라에 항복을 선언할 것'''임을 확인해준다. [6]그리고 영정은 인사를 올리며 예를 갖춘다. [7]
638화~639화에서 재등장해 업에 주둔한 진군에게 2배의 값을 받고 병량을 전달해주면서[8] '''이목의 뒤통수를 쳐버린다.'''[9]
[1] 후술하겠지만 군 왕후 섭정기에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2] 물론 그 포위는 풀렸는데 그 이유는 범저가 백기가 조나라를 멸망시켜 자신보다 큰 공로를 세워 승상이 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3] 열국지에 의하면 식량을 보내주기는 했는데, 가족들이 먹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어서 굶어 죽었다고 나온다.[4] 제민왕 때 털린 여파 탓에.....[5] 돈을 받고 합종군을 이탈한 모양새지만 제왕은 만약 진나라가 멸망한다면, 진나라의 땅과 백성을 두고 여섯 나라가 다툰 끝에 세상이 혼란해질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6] 실제 역사에서 제나라는 마지막으로 멸망한다. [7] 연출부터 대사 한마디까지 모두 감동적이었다며 호평을 받았던 에피소드지만 실제 역사의 전건의 찌질한 행보를 안드로메다 수준으로 미화시켰다(!). 다만 이 에피소드는 전부터 암시된 영정의 타락을 위한 에피소드일 가능성이 크긴 하다.[8] 진군이 실컷 먹기를 바라면서 한 말, '''"제의 밥은 맛있으니"'''[9] 작중에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과거 합종군에서 이탈할 무렵, 제왕과 면담한 채택이 '''"(제가 합종군에 참여해서 얻는 이익 또는 제가 진 전체를 얻는 이익의) 두 배의 값을 약속드리겠다!"'''고 했는데, 병량을 전달하면서 받은 '''두 배의 금액'''이 합종군 이탈에 대한 진의 보답인지, 아니면 왕전이 개인적으로 산 것인지는 알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