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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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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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의 우주선들을 만드는 연구소. 현재는 NASA의 행성과학 부서에서 쓰는 행성 탐사선을 개발, 운용하고 있으며, 장차 유인 소행성, 화성 탐사에 쓰일 장비들도 연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와 라 카냐타에 걸쳐 있으며, 형식상 NASA의 산하에 있으나 실제 운영은 칼텍이 담당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운영되는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정부 외 기관이지만, 관련 법과 규정에 의한 정부출연(즉, 물주가 정부이다) 기관이며, 이에 따라 정부의 인사통제에 의하여 운영된다. 한국의 준정부기관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소속 연구원들이 공무원 규정과 유사한 연구소 자체 규정에 의하여 행동이 제약되는 것을 고려하면, JPL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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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L의 전신이었던 Caltech의 로켓동아리(로켓 실험이 상당히 위험해서 팀원이 위기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동아리의 별명은 suicide squad 였다) 회원들. 왼쪽에서 세번째가 회장 프랭크 멜리너.
1930년대 칼텍 대학원생 프랭크 맬리너(Frank Malina)와 중국인 유학생 첸쉐썬이 만들었던 로켓 동아리가 전신이다. 이들은 자작 로켓을 만들며 패서디나 인근 아로요 세코에서 날렸는데,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을 파악한 이들의 지도교수 시어도어 폰 카르만이 동아리를 정식으로 학교 연구소로 편입하여, 제트추진연구소라고 이름붙였다. 실제로 로켓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로켓 연구소"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1930년대 당시 로켓이라는 단어가 양판소 SF 물에서 남용되어 싸구려 냄새가 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었다.[1] 하지만 이 기관은 설립 당시부터 제트엔진이 아니라 로켓엔진만을 연구했다. 다만 로켓 엔진은 어차피 제트 엔진(제트추진)의 일종이다.
한편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로켓무기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 군부는 이 연구소를 적극 지원했고, 연구소는 칼텍이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지만, 형식상 칼텍 산하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대는 물주인 미육군 소속이 되었다.[2] 연구소는 학내에서 로켓 관련 연구를 하다가 폭발사고를 여러번 일으켰기 때문에, 안전상 학교와 좀 떨어진 아로요 세코로 옮겼다.
2차대전 당시 이들은 주로 항공기용 로켓 부스터(JATO)와 전후에 전력화된 커퍼럴 지대지 미사일 등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V2를 실전에 투입한 나치 독일에 비해서는 매우 뒤떨어져 있었고, 나중에 베르너 폰 브라운이 미국에 투항하자 미국 우주개발의 방향은 JPL출신보다는 폰 브라운의 입김이 작용한다. 어쨌든 JPL에서 양성된 인력들과 브라운 및 나치독일의 기술, 천조국의 무지막지한 돈지랄이 합쳐져서 미국은 스푸트니크와 보스토크로 앞서나가던 소련을 따라잡고 아폴로 계획으로 소련보다 먼저 달에 착륙한다.
원래부터 상상력의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공상적인 연구가들은 대체로 성향상 진보적이었고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매카시즘 시대에 여러명의 종사자가 감옥에 가거나 쫓겨난 불상사도 있었다. 설립자이자 제2대 소장인 프랭크 맬리너는 유럽에서 도피성 외유를 했고, 첸쉐썬은 비밀취급 자격을 박탈당한채 연금생활을 하다가 중국으로 추방되었으며[3] 이들의 지도교수이자 제1대 연구소장인 폰 카르만(Theodore von Kármán)도 육군 항공대 총사령관 헨리 아놀드 원수의 고문이었음에도 여러번 FBI에 의해 조사받았았다.
1950년대 이후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고 나사가 설립되자 미육군에서 NASA소속으로 이관되어 나사의 여러 장비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운영에는 전현직 미군/국방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1980년대 SDI가 화두에 오를 적에는 NSA 국장을 지내고 공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 루 앨런 장군을 연구소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2016년 7월 강연 : 돈 탐사선과 세레스, 베스타, 이온 엔진을 다루고 있다.
JPL에서는 주요 연구원, 책임자들이 강단에 서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을 개최하고 있다. 이름하야 '''폰 카르만 렉처(Von Karman Lecture)'''로, 유튜브나 USTREAM, JPL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도 진행된다. 다만 JPL의 본분이 행성과학, 행성 탐사선 개발인지라 아무래도 주제는 유인 우주선보다 행성간 무인 탐사선에 치중하는 경향은 있지만 허블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같이 JPL이 아닌 미션 컨트롤에서 다루는 떡밥도 자주 올라오고 유인 소행성, 화성 탐사 같은 화끈한 주제도 올라온다. 보통은 쉽게쉽게 설명하는 편이라 웬만큼 해당 주제를 섭렵해본 사람이라면 무자막으로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잘 찾아보자. 지루하다는 지적이 있어서인지 가끔 위의 돈 미션처럼 개드립이 빵빵 터지는 강연도 있다.
강연 목록은 JPL 아카이브 참조. 유튜브에도 올라오긴 하지만 유스트림보다 며칠 늦게 올라오는 편이다. 강연이 끝나면 마이크에 줄서서 질문을 하는데 몇개씩 강의를 보다보면 몇달 전에 온 우주덕이 또 와서 질문 던지기도 하고 개중엔 거의 JPL 죽돌이(...)들도 있다.[4] 또한 외국인들[5] 도 많이 오는데 문제는 이들이 영어를 버벅거려서 온갖 브로큰 잉글리시로 손짓 발짓 섞어가며 눈물겨운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박사님들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해주신다(...) 현지 시간 기준으로 매월 셋째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게 보통이지만 연구원들의 스케줄이나 NASA 행사 일정에 따라 한주씩 앞당겨지거나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끔 빅 이벤트가 있는 경우 그 시기에 맞춰 강좌를 배정한다. 예를 들어 2016년 9월에는 카시니-하위헌스 그랜드 피날레 특집[6] 으로 진행되어 많은 우주덕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NASA의 우주선이 등장하는 대다수의 매체에서 등장한다. 다만 현실의 JPL과는 좀 다르다. NASA의 외부 천체 탐사용 우주선은 모두 무인 탐사선들이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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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ASA의 우주선들을 만드는 연구소. 현재는 NASA의 행성과학 부서에서 쓰는 행성 탐사선을 개발, 운용하고 있으며, 장차 유인 소행성, 화성 탐사에 쓰일 장비들도 연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와 라 카냐타에 걸쳐 있으며, 형식상 NASA의 산하에 있으나 실제 운영은 칼텍이 담당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운영되는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정부 외 기관이지만, 관련 법과 규정에 의한 정부출연(즉, 물주가 정부이다) 기관이며, 이에 따라 정부의 인사통제에 의하여 운영된다. 한국의 준정부기관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소속 연구원들이 공무원 규정과 유사한 연구소 자체 규정에 의하여 행동이 제약되는 것을 고려하면, JPL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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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L의 전신이었던 Caltech의 로켓동아리(로켓 실험이 상당히 위험해서 팀원이 위기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동아리의 별명은 suicide squad 였다) 회원들. 왼쪽에서 세번째가 회장 프랭크 멜리너.
1930년대 칼텍 대학원생 프랭크 맬리너(Frank Malina)와 중국인 유학생 첸쉐썬이 만들었던 로켓 동아리가 전신이다. 이들은 자작 로켓을 만들며 패서디나 인근 아로요 세코에서 날렸는데,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을 파악한 이들의 지도교수 시어도어 폰 카르만이 동아리를 정식으로 학교 연구소로 편입하여, 제트추진연구소라고 이름붙였다. 실제로 로켓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로켓 연구소"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1930년대 당시 로켓이라는 단어가 양판소 SF 물에서 남용되어 싸구려 냄새가 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었다.[1] 하지만 이 기관은 설립 당시부터 제트엔진이 아니라 로켓엔진만을 연구했다. 다만 로켓 엔진은 어차피 제트 엔진(제트추진)의 일종이다.
한편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로켓무기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 군부는 이 연구소를 적극 지원했고, 연구소는 칼텍이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지만, 형식상 칼텍 산하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대는 물주인 미육군 소속이 되었다.[2] 연구소는 학내에서 로켓 관련 연구를 하다가 폭발사고를 여러번 일으켰기 때문에, 안전상 학교와 좀 떨어진 아로요 세코로 옮겼다.
2차대전 당시 이들은 주로 항공기용 로켓 부스터(JATO)와 전후에 전력화된 커퍼럴 지대지 미사일 등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V2를 실전에 투입한 나치 독일에 비해서는 매우 뒤떨어져 있었고, 나중에 베르너 폰 브라운이 미국에 투항하자 미국 우주개발의 방향은 JPL출신보다는 폰 브라운의 입김이 작용한다. 어쨌든 JPL에서 양성된 인력들과 브라운 및 나치독일의 기술, 천조국의 무지막지한 돈지랄이 합쳐져서 미국은 스푸트니크와 보스토크로 앞서나가던 소련을 따라잡고 아폴로 계획으로 소련보다 먼저 달에 착륙한다.
원래부터 상상력의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공상적인 연구가들은 대체로 성향상 진보적이었고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매카시즘 시대에 여러명의 종사자가 감옥에 가거나 쫓겨난 불상사도 있었다. 설립자이자 제2대 소장인 프랭크 맬리너는 유럽에서 도피성 외유를 했고, 첸쉐썬은 비밀취급 자격을 박탈당한채 연금생활을 하다가 중국으로 추방되었으며[3] 이들의 지도교수이자 제1대 연구소장인 폰 카르만(Theodore von Kármán)도 육군 항공대 총사령관 헨리 아놀드 원수의 고문이었음에도 여러번 FBI에 의해 조사받았았다.
1950년대 이후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고 나사가 설립되자 미육군에서 NASA소속으로 이관되어 나사의 여러 장비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운영에는 전현직 미군/국방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1980년대 SDI가 화두에 오를 적에는 NSA 국장을 지내고 공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 루 앨런 장군을 연구소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3. 폰 카르만 강연
2016년 7월 강연 : 돈 탐사선과 세레스, 베스타, 이온 엔진을 다루고 있다.
JPL에서는 주요 연구원, 책임자들이 강단에 서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을 개최하고 있다. 이름하야 '''폰 카르만 렉처(Von Karman Lecture)'''로, 유튜브나 USTREAM, JPL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도 진행된다. 다만 JPL의 본분이 행성과학, 행성 탐사선 개발인지라 아무래도 주제는 유인 우주선보다 행성간 무인 탐사선에 치중하는 경향은 있지만 허블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같이 JPL이 아닌 미션 컨트롤에서 다루는 떡밥도 자주 올라오고 유인 소행성, 화성 탐사 같은 화끈한 주제도 올라온다. 보통은 쉽게쉽게 설명하는 편이라 웬만큼 해당 주제를 섭렵해본 사람이라면 무자막으로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잘 찾아보자. 지루하다는 지적이 있어서인지 가끔 위의 돈 미션처럼 개드립이 빵빵 터지는 강연도 있다.
강연 목록은 JPL 아카이브 참조. 유튜브에도 올라오긴 하지만 유스트림보다 며칠 늦게 올라오는 편이다. 강연이 끝나면 마이크에 줄서서 질문을 하는데 몇개씩 강의를 보다보면 몇달 전에 온 우주덕이 또 와서 질문 던지기도 하고 개중엔 거의 JPL 죽돌이(...)들도 있다.[4] 또한 외국인들[5] 도 많이 오는데 문제는 이들이 영어를 버벅거려서 온갖 브로큰 잉글리시로 손짓 발짓 섞어가며 눈물겨운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박사님들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해주신다(...) 현지 시간 기준으로 매월 셋째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게 보통이지만 연구원들의 스케줄이나 NASA 행사 일정에 따라 한주씩 앞당겨지거나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끔 빅 이벤트가 있는 경우 그 시기에 맞춰 강좌를 배정한다. 예를 들어 2016년 9월에는 카시니-하위헌스 그랜드 피날레 특집[6] 으로 진행되어 많은 우주덕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4. JPL이 등장하는 미디어매체
NASA의 우주선이 등장하는 대다수의 매체에서 등장한다. 다만 현실의 JPL과는 좀 다르다. NASA의 외부 천체 탐사용 우주선은 모두 무인 탐사선들이다.
- 마션 - 무자비하게 쥐어짜인다
- 빅뱅이론 - 극 중 배경 자체가 칼텍이며, 하워드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추정된다.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 다소 상관은 없지만 비슷한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 현재로 비유하자면, 어떤 연구소가 "워프 연구소"나 "UFO 연구소"라는 이름을 가진다면, 아마도 이런 연구소가 진지한 연구를 한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2] 당시 공군은 육군항공대라는 이름으로 육군의 하부기관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소의 후원자는 육군항공대의 사령관이자 후에 공군 원수로 영전하는 헨리 아놀드 장군이었다.[3] 첸박사는 이후 마오쩌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중국의 우주개발을 주도하였다.[4] 장소가 장소라 청중들 중에는 칼텍 학생 내지는 교직원과 가족, 교내외 인근 시설 임직원들이 많다.[5] 젊은 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칼텍 유학생이다.[6] 2017년 9월에 토성 대기에 진입하며 미션을 마감할 예정이다. 즉, 2016년 9월부터는 카시니에겐 마지막 1년이 시작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