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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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3군단 제12보병사단 예하 '''제52보병여단'''. 일반명칭은 '''쌍용부대'''.
사단의 3대 상징인 <향로봉, 4천계단, 을지전망대> 가운데 을지전망대가 바로 52보병여단에 해당한다.
2. 상세
최초 쌍용연대로 출발했으며, 과거 편제였던 37&51연대와 다르게 <쌍용>이라는 일반명칭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간혹 52여단는 GOP만 담당했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명백히 틀리며 52여단 역시 예비 여단을 담당했던 적도 많다[1] . GOP 좌측 축선을 담당한다. 양구군 해안면 일대의 을지전망대를 담당하며,[2] 인접 여단들과 마찬가지로 높고 험하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3개 보병연대 중 주둔지 면적이 가장 넓었다. 현재는 주둔지를 51보병여단이 사용했던 곳으로 옮겼다.
국방개혁 2.0 2020년 12월 1일부로 연대에서 여단으로 개편되었다.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 흉장에서 보이는 동물은 용 두 마리, 여단의 명칭인 쌍용을 그대로 사용한다. 쌍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95년 이후이고 이전에는 흑룡수색정찰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96년 사단 수색대대와 GP 임무를 교대하면서 DMZ 수색 및 매복 작전을 담당하였으나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다시금 GP를 담당한다. 육군이 3각편제로 개편되면서 5,6소대 인원들이 이 때 사단 수색대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해체된 정찰대 인원들이 수색중대로 넘어오면서 쌍용수색정찰중대로 불리었다. 이 시기 포반이 새로 창설됐다.
- 舊 제79포병대대가 전신이다. 79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졌다.
3.2. 군수지원대대
-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대대의 장이다.
3.3. 제1대대(서화)
창설 이래 37연대 원년 부대는 부대 이동 계획에 따라 1975년 8월 타 사단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1사단 9연대가 12사단으로 예속 및 이동하고 명칭을 37연대로 바꾼다.[3] 부대 터만 닦여 있는 상태에서 3대대가 서화대대에 배치되어 연병장에서 야전텐트 생활을 하며 민통선에서 GOP 사이의 구간에 벙커 작업과 참호, 교통호, 통신선 구축 등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 뿐만 아니라 대대 주둔지 각종 생활관 및 건물, 심지어 주둔지 내 실거리 사격장까지 만들었다. 그 사격장을 여전히 사용한다. 서화대대의 역사는 11사단 9연대 3대대 → 37연대 3대대 → 51연대 → 지금은 52연대 소속으로 변천되었다.
3.4. 제2대대(GOP/을지)
펀치볼을 반으로 나눠서 21사단 66여단에 이어 GOP 경계근무를 담당한다.
3.5. 제3대대(평촌)
민통선 검문소를 담당한다. 이곳 검문소를 지나면 고구려시대 토성인 서화성벽이 있다. 426축선의 주요목 경계를 담당한다. 6.25전쟁 전에는 이 길로 북한까지 연결되었기에 현재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과거 부대에 큰 목욕탕이 있어서 인근 부대 병력이 협조를 받아 겨울에 온수 목욕을 하기도 했다.
3.6. 과거 편제
4. 출신인물
4.1.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 여방오 일등중사: 52연대 9중대 3소대 2분대장으로 812고지 바로 옆 무명고지로 투입되어 공군에게 폭격 목표를 알리기 위해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적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었다. 국군 공군기는 적 기관총 진지에 화력을 퍼부어 파괴됐고 국군은 고지를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여 일등중사는 아군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뒤 장렬히 전사했다. 이후 무명고지는 쌍용고지로 불리게 되었다.[6] 그 희생과 공로를 인정받아 1955년 3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 받았다.
4.3. 병
- 노무현 前 대통령 : 52연대 2대대 정보과 상황병[7] 으로 근무했었다고 한다. 그가 있었던 건봉산 OP의 벙커는 2002년 말 16대 대선에서 승리한 걸 기념해 노무현 벙커로 불리웠으며, 현재는 고성의 22사단 55연대가 담당하고 있다. 연대본부 건물에 관련 기념물들이 전시 돼 있다.
5. 기타
5.1. 부대영상
5.2. 여단가
붉은 해 흰구름 휘몰아 가는곳
푸른 하늘 넓은 곳 쌍용의 무대
나가자 52 나가자 52 굳세게 힘차게 뭉쳐서
진격 나가자 52
야간전투 제일은 무적쌍용
승리의 종소리 크게 울려라
나가자 52 나가자 52
굳세게 힘차게 뭉쳐서
진격 나가자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