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루칸 백작 존 빙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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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ingham, 7th Earl of Lucan
1934년 12월 18일~?(1974년 11월 7일 잠적) 생존해 있다면 현재 89세.
원래 지체높은 백작가문의 자제로, 본명은 리차드 빙엄이다.
루칸은 작위에 따라 하사받은 영지이며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 있다. 빙엄 가문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의 후손이며,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 지방의 백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존 빙엄은 그것과는 무관하게 런던 토박이었고, 백작이 되었을때 이미 아일랜드는 사실상 독립한 상태라서 백작위는 그냥 허울이었다.[1]
귀족답게 이튼 스쿨을 졸업한 후, 은행원, 도박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두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 했으나...
루칸 부부는 1973년에 이혼하고 말았다. 루칸은 아이들의 양육권을 놓고 전 부인과 갈등을 겪었고, 보모를 넣어준다는 구실로 부인을 감시하기도 했다. 이듬해 11월 7일 밤에 루칸은 술에 취해 부인의 집으로 쳐들어가 준비한 쇠파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부인이 아닌, 자신이 부인을 감시하도록 보낸 보모였다. 이후 루칸은 지인의 집으로 가서 범행을 부인한 뒤에 다시 나가서 소식이 끊어졌다.
루칸의 차가 근처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경찰은 그의 소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살을 염두에 두고 해안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못 찾았다. 이후 1999년에 법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루칸은 실종되어 생존여부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루칸의 아들은 백작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2월 3일 42년만에 법원이 승계를 인정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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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뉴질랜드에서 루칸과 용모가 비슷한 로저 우드게이트라는 사람이 발견되었다. 당사자는 강력히 부인했으나, 호사가들에 의한 루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루칸 백작이라고 지목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 로저가 사용하는 영어는 전형적인 영국 상류 귀족들이 쓰는 언어이다. (이른바 Posh English를 구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국 영어 참조.)
2. 전문생존 방법으로 집 없이 차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아 영국 명문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영국군에서 복무한 루칸 백작일 가능성이 높다.
3. 루칸 백작의 실명인 리처드 존 빙엄의 가문 이름 빙엄이 우드게이트 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4. 로저는 영국과 아일랜드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는데 빙엄 가문이 아일랜드에 큰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이상 4가지를 근거로 로저 우드게이트의 이웃에 살았던 마가렛 헤이스라는 여자가 그를 루칸 백작이라 지목하고 영국 경찰과 뉴질랜드 경찰에 루칸 백작을 찾았다고 제보한 것이다. 그러나 로저 우드게이트는 루칸 백작보다 10살이나 더 어리고 키도 5인치(12.7cm)가 더 작다고 한다. 또 로저 우드게이트는 "내가 영국 출신인 것은 맞지만, 루칸 백작 사고가 발생하기 5개월 전에 이미 런던을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거나 아돌프 히틀러가 살아있다는 소문처럼, 루칸의 생존설도 떠도는 소문일 뿐"이라며, "루칸 백작이 사라진 해에 내가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이전부터 루칸이라고 주장한 사람이나 지목된 사람이 여러 사람 나왔지만 모두 자작극이거나 아닌 것으로 밝혀졌던 것으로 보아, 이 사람도 아닌 듯하다. 어쨌든 루칸 백작으로 지목된 로저 씨는 사람들의 관심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어딘가로 떠나버렸다고 하며 소재지를 알 수 없게 됐다고 한다.
John Bingham, 7th Earl of Lucan
1934년 12월 18일~?(1974년 11월 7일 잠적) 생존해 있다면 현재 89세.
1. 이력
원래 지체높은 백작가문의 자제로, 본명은 리차드 빙엄이다.
루칸은 작위에 따라 하사받은 영지이며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 있다. 빙엄 가문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의 후손이며,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 지방의 백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존 빙엄은 그것과는 무관하게 런던 토박이었고, 백작이 되었을때 이미 아일랜드는 사실상 독립한 상태라서 백작위는 그냥 허울이었다.[1]
귀족답게 이튼 스쿨을 졸업한 후, 은행원, 도박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두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 했으나...
2. 살인 및 실종
루칸 부부는 1973년에 이혼하고 말았다. 루칸은 아이들의 양육권을 놓고 전 부인과 갈등을 겪었고, 보모를 넣어준다는 구실로 부인을 감시하기도 했다. 이듬해 11월 7일 밤에 루칸은 술에 취해 부인의 집으로 쳐들어가 준비한 쇠파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부인이 아닌, 자신이 부인을 감시하도록 보낸 보모였다. 이후 루칸은 지인의 집으로 가서 범행을 부인한 뒤에 다시 나가서 소식이 끊어졌다.
루칸의 차가 근처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경찰은 그의 소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살을 염두에 두고 해안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못 찾았다. 이후 1999년에 법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루칸은 실종되어 생존여부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루칸의 아들은 백작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2월 3일 42년만에 법원이 승계를 인정했다.[2]
3. 비슷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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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뉴질랜드에서 루칸과 용모가 비슷한 로저 우드게이트라는 사람이 발견되었다. 당사자는 강력히 부인했으나, 호사가들에 의한 루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루칸 백작이라고 지목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 로저가 사용하는 영어는 전형적인 영국 상류 귀족들이 쓰는 언어이다. (이른바 Posh English를 구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국 영어 참조.)
2. 전문생존 방법으로 집 없이 차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아 영국 명문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영국군에서 복무한 루칸 백작일 가능성이 높다.
3. 루칸 백작의 실명인 리처드 존 빙엄의 가문 이름 빙엄이 우드게이트 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4. 로저는 영국과 아일랜드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는데 빙엄 가문이 아일랜드에 큰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이상 4가지를 근거로 로저 우드게이트의 이웃에 살았던 마가렛 헤이스라는 여자가 그를 루칸 백작이라 지목하고 영국 경찰과 뉴질랜드 경찰에 루칸 백작을 찾았다고 제보한 것이다. 그러나 로저 우드게이트는 루칸 백작보다 10살이나 더 어리고 키도 5인치(12.7cm)가 더 작다고 한다. 또 로저 우드게이트는 "내가 영국 출신인 것은 맞지만, 루칸 백작 사고가 발생하기 5개월 전에 이미 런던을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거나 아돌프 히틀러가 살아있다는 소문처럼, 루칸의 생존설도 떠도는 소문일 뿐"이라며, "루칸 백작이 사라진 해에 내가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이전부터 루칸이라고 주장한 사람이나 지목된 사람이 여러 사람 나왔지만 모두 자작극이거나 아닌 것으로 밝혀졌던 것으로 보아, 이 사람도 아닌 듯하다. 어쨌든 루칸 백작으로 지목된 로저 씨는 사람들의 관심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어딘가로 떠나버렸다고 하며 소재지를 알 수 없게 됐다고 한다.
[1] 이 작위는 2번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1691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재커바이트 반란의 주도자인 패트릭 잘스필드(가톨릭 신자)를 위해 제임스 2세가 만들어준 작위다. 잘스필드는 윌리엄 3세에게 패한 이후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갔고, 뤽상부르 휘하에서 종군하다가 란덴 전투에서 전사한다. (잘스필드의 아내는 제임스 2세의 사생아인 제임스 피츠제임스와 재혼하는데, 이 직계 후손이 스페인의 알바 공작이다.) 이후 윌리엄 3세가 작위를 몰수하지만, 1795년에 잘스필드의 조카손자에 의해 2번째로 만들어진다.[2]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