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한

 

* 정치인/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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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擎韓
1900년 7월 30일 ~ 1993년 1월 7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백강(白岡)이다. 본관은 옥천(玉川).
1900년 전라남도 순천군 주암면 한곡리 한동마을[1]#에서 태어났다. 중국 베이징 시 계명학원 법정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독립단의 국내 연락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1919년 3.1 운동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후 192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만주에서 항일무력투쟁, 광복군창립,독입운동 단체의 조직에 참여하셨다. 1930년 7월 북만주에서 한국독립당을 창당할 때, 홍진, 이청천 등과 함께 창당에 참여했으며, 한국독립당의 선전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1년 만주 사변 직후 한국독립군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말 난징에 있던 김구의 제의로 이청천 등과 중국관내지역으로 이동하였다. 1934년 낙양군관학교가 개교되자 이범석 등과 교관을 맡았다. 1935년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하였다가 김원봉과의 이견으로 1937년 민족혁명당을 탈당해 조선혁명당을 창당하였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4년까지 의정원 의원으로 활약하였다. 1940년 충칭 시에서 한국독립당에 참여했으며, 중앙상무집행위원 겸 훈련부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 몸담았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남도 순천시-승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현역 전국구 국회의원김우경에 밀려 탈락하였다. 그 해 이갑성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격하여 논란이 되었다.
별세할 당시, '''나를 국가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가득한 현충원이나 국립묘지 에 묻지 말아달라'''는 씁쓸한 유언을 하신 바 있다....

[1] 옥천 조씨 집성촌이다. 인근의 주암리, 오산리, 복다리, 문길리, 구산리, 죽림리, 어왕리, 백록리, 대구리, 궁각리, 요곡리, 대광리에도 옥천 조씨가 많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