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드미
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 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영화인이다.
2. 일생
조나단 드미는 1944년 2월 22일 뉴욕 주의 볼드윈에서 출생하였다. 학업으로는 플로리다 대학의 화학과를 전공하였다. 학창시절부터 영화광 조짐이 보였던 드미는 대학신문에서 영화 평론등의 칼럼을 기고하였다고 한다.
영화인으로서 첫 발걸음은 로저 코먼 사단 휘하의 스탭진으로 일하는 것이였는데 틈틈히 영화 칼럼가로서 평론이나 매거진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B급류 작품들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로저 코먼과 단짝으로 마구잡이 호러물. 액션물을 만들던 필리핀 영화감독 겸 제작자 시리오 산티아고(1936~2007)와 같이 필리핀에서 촬영해 만든 영화 핫 박스(1972)같은 영화에서 제작과 각본을 같이 하기도 했다.
본인의 첫 연출작품은 1974년작 여자 수용소(Caged Heat)이며 1975년에는 크레이지 마마(Crazy Mama) 등 70년대에만 4개의 작품을 연출하며 경력을 쌓아간다.
그에게 영화계의 본격적인 명성을 준 작품은 1980년작 멜빈과 하워드(Melvin And Howard)로서 얻게되는데 하워드 휴즈의 일화를 모티브로 만든 이 작품은 제 5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하게 된다.
감독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인 1991년작 '''양들의 침묵'''은 1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 7000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였고 제 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그랜드슬램''(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한다.
다음 작품인 필라델피아에서도 성공가도를 이어가며 톰 행크스에게 정극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작인 찰리의 진실에서 크게 말아먹고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도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2006년작 맨추리안 캔디테이트의 호평으로 건재함을 알렸으며 레이첼, 결혼하다등 여러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 당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201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PENSOL상(일종의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2017년 4월 26일, 뉴욕 맨해튼에서 지병인 식도암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73세.
3. 일화
양들의 침묵 촬영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다. 한니발 렉터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의 무시무시한 몰입 연기에 다른 배우들은 중압감을 이겨내질 못하고 버티지를 못하였는데 조디 포스터도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으며 특히 빈정거리듯 몰아붙이는 몰입감에 상당히 긴장하였다고 하는데 촬영 후에 촬영분을 보니깐 자신의 의도하지 않는 공포감과 두려움을 잘 살려내었다는 반응이었다.
토킹 헤즈 특히 데이빗 번이랑 친해서, 스탑 메이킹 센스 같은 라이브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비러브드로 같이 작업한 탠디 뉴턴이 회고하길 상당히 신사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미션 임파서블 2 촬영 당시 연기가 미흡해 재촬영한다는 사실에 기가 죽어있는 탠디에게 자긍심을 가져라라고 충고해주기도 했다. 링크
4. 필모그래피
[1] 데뷔작. 제목처럼 B급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로 각본과 감독을 같이 했으며 제작은 로저 코먼 외. 촬영감독은 후지모토 타크(식스 센스, 사인,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등등을 촬영 감독을 맡았다.)[2] 아카데미 5관왕에 빛나는 감독 최고의 걸작. [3] 제 6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톰 행크스), 주제가상(브루스 스프링스턴), 제 44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남우주연상(톰 행크스). 에이즈 환자인 변호사가 성 정체성을 이유로 로펌에서 쫒겨나고 이에 대항한다는 내용의 법정 드라마.[4] 본인 인생 최대 흑역사 작품. 재밌는 점은 박중훈이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