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조선)

 



1. 개요
2. 내용
3. 관련 문서


1. 개요


趙斗淳[1]
1796년(정조 20년) 4월 7일[2][3] ~ 1870년(고종 7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揚州), 자는 원칠(元七), 호는 심암(心菴),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조영극(趙榮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종철(趙宗喆)이고, 아버지는 조진익(趙鎭翼)이며, 어머니는 박종악(朴宗岳)의 딸이다.[4]

2. 내용


1816년(순조 16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1826년(순조 26년)에 황감제시(黃柑製試)[5]에 장원 급제했다. 이어 같은 해 4월에 열린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규장각대교로 선발되었다.
1849년에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헌종실록 편찬을 주관했다. 1850년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신도비문을 지었으며, 병조판서가 되었다. 1851년 동문휘고(同文彙考)[6] 편찬을 담당했다.
고종이 즉위하고 초반에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의 복고적 개혁 정치의 일환인 경복궁 중건, 삼군부 설치, 대전회통 편찬 등을 담당했다. 1866년에 은퇴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 그의 서조카다. 즉, 조두순은 조병갑의 서큰아버지가 된다.

3. 관련 문서



[1] 동명이인과 한자까지 동일하다.[2] 출처: 《양주조씨족보》 조두순편.[3] 양력 5월 13일 [4] 출처 [5] 매년 제주목에서 진상밀감을 임금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하사하면서 거행하는 일종의 과거 시험.[6] 조선 후기의 대청(對淸) 및 대일(對日) 관계의 교섭 문서를 집대성한 외교문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