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1. 후한 말의 인물
趙浮
생몰년도 미상
1.1. 설명
후한 말의 인물.
한복 휘하에서 종사를 지냈으며, 조부는 정환과 함께 한복의 명으로 강노군 1만을 거느려 하양에서 진영을 세우고 주둔했다. 그런데 한복이 기주를 원소에게 주려 한다는 것을 알고 맹진에서부터 동쪽으로 향했으며, 원소가 조가의 청수구에 있을 때 조부 등은 배후에서 수백 척의 함선, 만여 명의 군수를 이끌고 정연한 병사들이 북을 울리면서 밤에 원소군의 진영을 지나가 원소가 이를 싫어했다.
조부는 정환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항거할 것을 주장했는데, 원소의 군대는 군량이 없으면서 흩어졌다는 점을 들어 직접 병사를 이끌고 막는다면 열흘 안에 원소군이 무너질 것이라 했는데, 한복은 이를 묵살하고 원소에게 항복했다.
한복의 측근이었던 경무, 민순은 전풍이 자객을 보내 암살했다는 기록이 삼국지의 주석으로 인용된 영웅기에 남아있지만 삼국지와 후한서 등에서 조부, 정환, 이력의 행적은 뚜렷하지 않다. 다만 남송시대의 홍매가 쓴 용재수필에는 기주를 장악한 원소가 경무, 민순, 이력, 조부, 정환 등을 전부 죽였다는 서술이 있어서 이후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1.2. 창작물에서
호접몽전에서는 주인공 진용운이 소속한 공손찬군이 한복을 공격하러 가면서 맞서 싸우는데, 국의의 명령으로 이력과 각각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좌측으로 오는 공손찬군에게 맞서 싸운다.
포위를 염려해 병력을 나눈 것이었지만, 공손찬군의 기병이 노를 날린 것으로 인해 전열이 흩어지면서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후방을 아군인 이력에게 공격받았으며, 조부는 태사자와 싸우다가 몇 합 지나지 않아 태사자에게 죽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58, 무용 60, 지모 46, 정무 37, 인사 37, 외교 36의 능력치로 161년생으로 나온다.
2. 조송의 황족
趙旉. 고종의 태자다. 후술하지만 잠깐 동안 황제로 재위했는데 기간이 짧고(1130년) 정통성이 없어 정식 황제로 보지 않는다.
고종의 유일한 아들인 조부는 1129년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런데 같은 해, 고종의 굴욕적인 대금정책에 반발한 이강 등의 무단파가 반현비(潘賢妃) 소생으로 고종의 유일한 아들인 조부(趙旉)를 황제로 옹립하고 연호를 명수(明受)라 정했으나 진회와 장준 등 문치파의 격렬한 반대로 약 한달만에 황태자로 원위치 되었다.
조부는 이때의 충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니 향년 '''3세'''였다. 고종은 크게 비통해 하며 원의태자(元懿太子)라는 시호를 추증했고, 고종의 직계가 단절됨에 따라 태조의 셋째 아들 조덕방의 6세손인 조신을 양자로 삼아 제위를 물려주니 그가 바로 효종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