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몽골 제국)
[clearfix]
1. 소개
몽골 제국의 황족. 칭기즈 칸의 아들. '조치', '죠치' 등으로도 발음하기도 한다. 특히 알파벳으로는 발음은 같아도 스펠링이 다른 경우도 많다. 원나라 건국 이후 쿠빌라이 칸에 의해 묘호 목종(穆宗)에 시호 도녕황제(道寧皇帝)로 추숭되었다.
2. 생애
칭기즈 칸의 첫째 아들이지만 말이 많은 인물이다. 일단 칭기즈 칸의 아내 보르테가 적대적인 메르키트 부족에게 붙잡혀 약 1년 정도를 다른 남자의 아내로 살다가 돌아온 뒤에 낳은 아들이 주치고 주치란 이름 자체가 '''손님'''이라는 말이기 때문에[1] 주치가 진짜 칭기즈 칸의 아들인지, 아니면 보르테를 겁탈한 메르키트족의 장수 '''칠게르'''의 자식인지 하는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필 주치의 출생 자체도 굉장히 애매한데, 칭기스칸이 보르테를 되찾고 '9개월 뒤'에 나왔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9개월 뒤'가 당연히 정확하게 270일 뒤를 말할 가능성은 낮을테고, 현대 의학에서는 임신 기간을 280일 좌우로 계산하기 때문에 결국 친자식일 가능성과 아닐 가능성 모두 존재한다. 만약 좀 이른시기에 겁탈당해서 주치의 탄생과는 시간 간격이 좀 길어진다면 친자식일 가능성에 무게가 좀 더 실리겠지만...
칭기즈 칸은 주치가 자신의 아들이냐 아니냐 문제에 대해 노 코멘트로 일관하였지만 이런 애매한 상태 때문에 후계자 문제 때 다른 형제들(특히 둘째인 차가타이)과 갈등을 빚었다. 메르키트놈의 자식이라며 대놓고 모욕했을 정도. 결국 아버지 말도 씹고 유럽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버지 칭기즈 칸이 주치를 토벌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런데 사실, 주치가 돌아오지 못한 것은 병 때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주치는 유럽으로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또한 주치가 칭기즈 칸의 원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칭기즈 칸이 주치에게 러시아 초원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사건의 영향인지 주즈자니의 사서에선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나왔다. 참고로 이 사서엔 고증에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이 때 무하마드 샤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고 하는데 무하마드 샤는 이미 죽은 뒤라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칭기즈 칸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칭기즈 칸이 주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그 다음 날까지 자신의 게르에 홀로 틀어박힌 채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3. 죽음 이후
어쨌든, 이 일로 주치의 후예인 킵차크 칸국과 다른 칸국과의 사이가 벌어져서 몽골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사실이다. 예로 일 칸국의 훌레구 칸이 맘루크 왕조와의 전투에서 패해서 역습을 준비하려 했을 때 다른 곳도 아닌 킵차크 칸국에서 공격해서 이를 이룰 수가 없었고 맘루크 왕조에 몽골군과 싸운 경험이 있는 노예들을 판 것도 킵차크 칸국이었다.칭기스칸의 큰아들 주치는 1227년 2월경, 아버지보다 6개월 먼저 아랄 해 북쪽 초원에서 죽었다. 비록 칭기스칸이 조치의 의심쩍은 출생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그들 사이의 틈은 끝내 넓어져만 가고 있었다. 조치는 우르겐치 점령시에 참전한 것을 끝으로(1221년 4월), 그 후 1222년부터 1227년까지는 은퇴하여 자기 속령에 있는 투르가이와 우랄스크에 살면서 아버지가 추진한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우울한 움츠림은 칭기스칸을 얼마간 불안하게 했으며, 그는 큰아들이 자신에 대해 모반을 꾀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조치의 죽음은 그들 사이에 일어났을지도 모를 고통스러운 갈등을 막아주었다.
-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pp.368-369
하지만 주치 가문과 툴루이 가문의 경쟁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칭기즈 칸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할 때 몽골의 풍습에 따라 큰아들 주치에게는 '''부모의 주거에서 가장 먼 곳을 큰아들의 영역으로''' 남겨주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서쪽은 주치의 후손들에게 속하는 것이여야 했다. 그래서 유럽 원정 시에 주치의 아들 바투가 몽골 군대의 지휘관이였던 것이고. 하지만 툴루이의 아들 훌레구가 이를 무시하고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아버렸으니 주치의 후손들로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이전만 해도 툴루이 가문이 대칸이 될 수 있게 후원해준 것은 바투였다. 또, 훌레구의 이란 원정에 1만 명 이상의 군대를 파견한 것이 킵차크 칸국이었다. 하여튼, 킵차크 칸국과 다른 칸국 간의 갈등은 출생 때문'''만'''은 아니다.
뒷날 티무르 제국을 몰아낸 우즈베크족의 시조가 주치이며, 티무르와 대립한 라이벌인 킵차크 칸국의 토크타미쉬 칸도 바로 주치의 후손. 또한 티무르는 차가타이의 모계 혈통을 이은 후예를 자칭한 것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티무르를 포함해 차가타이 가문과는 죽은 이후에도 악연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즈베크와 티무르 모두 튀르크계 언어를 쓰는 튀르크화된 몽골인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징기스칸 4 등에서도 당연히 등장. 전투 90, 정치 58, 지모 74에 건설, 기동, 연사, 공성 특기를 가지고 있으며 시나리오 1에서 몽골로 시작하면 시작과 동시에 아군으로 들어온다. 칭기즈 칸의 아들답게 강하지만[2] 행적을 반영한 건지 혈연인데도 처음 충성도가 너무 낮다. 군주가 되었을 때 연회에서의 고유 대사는 '''내 출생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는데... 그대의 얼굴을 보면 모두 잊어버릴 것만 같다'''이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칭기즈 칸과 보르테의 장남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사생아 관련 트레잇이 붙어 있지 않아서''' 플레이하기에 따라 주치가 칭기즈 칸의 뒤를 이어 대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