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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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튀르크계열 민족. 이들의 민족 국가로는 우즈베키스탄이 있고 2017년 기준 우즈베키스탄 인구 3212만 명 중 2691만 명이 우즈베크인이었다#.
우즈벡인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와 바이칼 호 유역의 넓은 스텝 지역에서 기원전부터 살아온 튀르크계 민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기본적으로 튀르크 문화, 언어와 같다. 또한 옛 예니세이강 중류에 살다가 현재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많은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들 또한 우즈벡에 살며 우즈베크 국적을 가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이 다민족 국가인 이유로 우즈베크인 역시 외양이 다양한 편이다. 언어는 차가타이어파에 속하며 정체성과 문화는 튀르크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튀르크인들과 언어적 문화적으로 유사하다. 튀르크인들은 유목을 주로 하였지만 농경을 병행했다.
터키와도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상당수 우즈베크인들은 따로 터키어도 공부하고 구사하는 편이다. 우즈벡어와 터키어는 문법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 같은 단어와 문장이 있어 우즈베크인 입장에서는 습득하는데 단기간이면 충분하다.
우즈벡인이라는 현대적 정체성은 티무르 제국 시기 이후 샤이바니 칸 때 부터 본격적으로 확립되었다.[1] 옛 중앙아시아에는 소그드인(스키타이) 등 여러 민족들이 튀르크인들의 국가에 살면서 튀르크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중세 이후 튀르크화되었다. 16세기, 우즈베크인들은 모굴리스탄 칸국을 격파하고 부하라 칸국,히바 칸국,코칸드 칸국을 건국하였다. 다양한 노력을 통해 무굴 제국과의 무역을 부흥시키고 번영했던 바 있다. 이웃한 튀르크 민족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과도 교류가 많았다.
2. 디아스포라
소련 시절에는 소련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2] 민족이었다. 현재도 러시아에 200만 명 이상의 우즈베크인들이 체류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인접국인 타지키스탄(104만 명, 인구의 13.8%)과 키르기스스탄(91만 명, 인구의 14.7%), 카자흐스탄(59만 명, 인구의 3.2%) 등에선 가장 큰 소수민족 그룹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구소련 국가는 아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인구의 10% 가까이(약 380만)가 우즈베크족인 것으로 추산되며, 타지크족 및 키르기스인, 투르크멘인 등 다른 튀르크계 종족들과 함께 탈레반에 맞선 북부동맹을 구성하기도 했었다.[3]
중국에도 소수[4] 거주하여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나 카자흐, 키르기스 등 타 튀르크 민족들과 함께 살고 있으나 극소수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투르크멘인도 우즈베크인으로 분류한다.
심지어 터키, 인도, 파키스탄 등에도 우즈벡인이 살고 미국에도 우즈벡계 미국인들이 있으며 중앙아시아계 미국인들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5] 대체로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호주로도 이주하는 등 신대륙에도 우즈벡인이 꽤 산다. 이들 대부분은 적백내전을 피해서 이웃 국가로 망명한 경우에 속한다.
신장의 위구르인들 중 일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을 떠나 카자흐, 키르기스, 타지크 등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동부로 오기도 했었다. 우즈벡인들도 무슬림들에게 장사를 하기위해 비자를 얻고 신장에 장기적으로 체류하기도 한다.
2.1. 재한 외국인 규모
한국에도 우즈베키스탄 국적 출신은 2020년 9월 기준으로 6만여 명이 거주 중인데, 이중에서 한 3만 명 정도의 고려인을 제외하면 우즈베크계인은 대개 3~4만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재한 외국인 참고 (귀화자는 제외)
러시아를 제외한 독립국가연합의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이 한국으로 이주해 왔다. 초기엔 독재자 이슬롬 카리모프의 폭정을 피해 온 사람들이 였으나 카리모프가 죽고 나서는 한국의 경제 및 문화를 동경하면서 이주하거나 공부하러 온 경우가 대다수이다. 소수는 국내 여행으로 왔다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공부로 유학 비자 또는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러 오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으로도 귀화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재한 외국인으로 우즈벡인들은 꽤 많은 편이다. 5위로 필리핀인보다 많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인은 겨우 3,829명 밖에 안되지만(2018년 6월 자료) 한국에는 68,433명(2018년 12월 자료)이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어나 우즈벡어를 하면 놀란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서울특별시에는 동대문 근처, 부산광역시엔 부산역 맞은편 구 차이나타운에 있다. 일단은 차이나타운인데, 러시아와 구 소련권 쪽 상점이 절반 정도 된다. 원래부터 화교 거리였는데 1990년 한-소 수교 후 부산항과 가까운 위치 때문에 러시아인 선원들이 유입되면서 러시아인들이 더 많다.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역사 도시인 사마르칸트의 이름을 딴 식당도 두 군데 모두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영업 중이다. 사마르칸트, 사마리칸트 비슷한 이름으로 된 식당도 있는데 이 식당들은 가게 주인이 다 같다. 한국에서 제법 돈 벌어서 여러 분점을 냈던 것인데, 초창기 한국어가 서툴어서 가게 이름이 엉뚱하게 등록되어 저렇게 되었다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양꼬치와 러시아식 병맥주를 마실 수 있다. 또한,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 창원시나 양산시 남부시장, 대구광역시 북부정류장, 동성로 등에서도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가천대, 세종대, 숭실대 유학생 중 우즈베키스탄 출신 유학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원래는 우즈벡 출신 한국 유학생들이 서울 소재 여러 대학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즈벡 출신 유학생들이 해당 학교로 우르르 몰렸다.
3. 언어
언어는 튀르크어족의 한 갈래인 우즈베크어를 사용한다. 이외에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꽤 있으며 러시아 학교가 존재하여 수업을 러시아어로 하는 학교가 존재한다. 수도의 경우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만 사용하며 고려인들은 우즈벡어를 전혀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우즈벡어를 아는 우즈벡인보다 한국어 습득이 더 늦는 경우도 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우즈벡어의 사용이 훨씬 늘어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전부 우즈벡어를 사용되게 되었으며 대통령 또한 연설시 우즈벡어로 연설하고 있다. 정부 관련 사이트는 우즈벡어가 기본이지만 러시아어 번역도 존재한다. 도시쪽에선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비중이 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이기 때문에 우즈벡어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비중도 상당한 편이다. 또한 최근에는 라틴문자 사용과 영어에 대한 큰 관심으로 영어를 배워 능숙히 구사하는 젋은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으며 러시아어와 영어의 문법 유사성으로 인해 매우 빠른 시간에 영어를 습득하고 있다.
우즈베크어는 터키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위구르어와 같이 튀르크어족에 속한다. 하위 어족으론 차가타이어파[6] 에 속한다.튀르크어는 알타이 제어에 속하며 일타이 제어는 최근에 유라시아횡단어족이라는 학설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4. 기원
우즈베크인의 기원은 튀르크 민족이며 언어, 문화 , 민족적 정체성이 튀르크어, 튀르크 문화에 속한다. 초기 기마 목축 문화권은 BC2000에서 BC1500년 카스피해 북부에서부터 알타이산맥 그리고 몽골 서부 지역에 나타난다. 스루브나야 문화, 카라숙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는 넓게 중앙아시아로 확장되어 현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타기스겐 문화, 켈테미나르 문화 투르키스탄 정착 문화로 나타난다. 튀르크는 인종적으로 흰색피부, 짙은 눈동자, 원형 얼굴의 백인계통으로 분류하고 있다.
튀르크인은 고대부터 스텝(Steppe) 유목 생활을 하였는데 최근 키셀레프와 체르니고프의 고고학 발굴에서 튀르크인의 본거지는 알타이-우랄산맥 사이와 카스피해 북서 초원 지대라는 결과가 나왔다.석기 시대 이래 안드로노보 문화를 이끈 중심 종족 중 일부가 튀르크인의 조상인데 이들은 남부 스키타이와 뚜렸이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우랄 문화권과 밀접한 교류가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기원전 2000년대에 이미 동쪽은 바이칼호, 서쪽은 돈강, 남쪽은 톈산 산맥까지 확산되었고 기원전1500년경에는 스키타이와 밀접한 교류가 있어 왔다. 튀르크인들은 고대부터 실크로드를 개척하여 실크로드를 동아시아까지 연결시켰다. 튀르크인들은 우수한 기마 조직을 이용해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지역들을 정복하거나 기존 이질적인 국가 체계에 관리나 군인으로서 부족 전체가 대규모로 참여하였다. 튀르크인들은 동방의 오르도스 지역에도 진출한 결과 룽산 농경 문화가 소멸되고 말 사육, 천신 사상, 정비된 군사조직, 동물 문양과 같은 투르크 요소의 양사오 문화가 나타난다. 양사오 문화는 중국 주나라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중국 산시성 객성장 140호분에서 출토된 동제부조에서도 언어가 튀르크어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7]
5. 문화
이슬람이 전파된 이후 트란스옥시아나 일대는 여러 타지크계 왕조와 튀르크계 왕조가 번갈아가면서 번성했는데, 그 결과 우즈베크인들의 조상들은 이슬람을 믿고 페르시아의 순니파 이슬람 문화를 상당부분 흡수하게 되었다. 우즈베크인의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확립된 것은 티무르 제국 시대로 당시 우즈베크어 문학이 발전하면서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우즈베크어가 페르시아어를 완전하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우즈베크인들은 다른 튀르크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높았으며 튀르크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에도, 무슬림 튀르크인 여성의 권리는 아랍인 및 페르시아인의 그것에 비해 비교적 더 우월하고 유도리 있는 편이었다. 과거 중앙아시아 튀르크인 사이에서 파란자, 부르카, 니캅 같은 옷차림은 극히 드물었다.
6. 종교
종교는 주로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으며, 일부는 시아파나 수피즘 신자이다.
튀르크족 특유의 널널한 종교인식 덕분인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신도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골칫거리다. 심지어 다에쉬라 불리는 일명 IS에도 우즈벡 출신들이 가담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라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단체가 활동 중이다. 이들은 2017년 초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테러 용의 그룹으로 강력히 추정되고 있다.
기독교는 주로 정교회이다. 기독교 하면 러시아인이 생각난다는 이유로 기독교에 대해선 약간의 적개심을 갖기도 하며, 그래도 선교사들이 활동 중이고 소수나마 우즈벡인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주로 교회는 러시아인과 고려인으로 구성된다. 그 외 소련시절 캅카스 지역의 여러 민족들이 왔는데 아르메니아인들도 적지 않게 들어오면서 이들의 영향으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우즈베크인보다는 아르메니아계 출신들이 더 많다.
7. 창작물에서의 우즈베크인
신부 이야기에 등장하는 카르르크와 에이혼 가문은 사실 우즈베크인은 아니고 확실히 말하면 위구르계 사람이다. 같은 튀르크어족이니 유사하다고 말 할 순 있다.
8. 출신 인물
- 구잘 투르수노바 - 아버지는 우즈베크인, 어머니는 타타르 튀르크인
- 도스톤벡 투르스노프
- 루스탐 아슐마토프
- 바호디르 나시모프
- 사르도르 라시도프
-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 쇼흐루흐 가도예프
- 압둘 라시드 도스툼
- 오딜 아흐메도프
- 이슬람 카리모프
- 이크롬존 알리바예프
- 엘리나 카리모바 - 부모님이 우즈베크, 우크라이나인
- 자밀라 압둘레바 - 아버지는 타타르 튀르크와 우즈베크인 어머니는 몰도바(루마니아)인
- 잠시드 이스칸데로프
- 조블론 이브로키모프
- 티무르 카파제
[1] 킵차크 칸국의 우즈베크 칸이 샤이바니칸의 선조이며 샤이바니 칸이 이끌던 튀르크 부족은 우즈베크인이라 불리우게 된다.[2] 슬라브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다음이 튀르크계 우즈벡 민족이었다.[3] 북부 동맹에 참여한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 우즈베크인이다.[4] 2010년 인구조사 당시 10,569명[5] 두번째는 카자흐계 미국인이다.[6] 카를루크어파라고도 한다.[7] 이희수, 정수일, 크리스토퍼 벡위드
토론 결과 1. “우즈벡인들은 문화적으로 위구르족들과 언어, 문화가 매우 비슷하다.”라는 내용의 서술을 제외하지 않는다. 2. 우즈벡인에 외양과 기원에 대해서 서술 시 “ ‘혼혈’이라는 단어 대신 역사적으로 통혼이 활발했다.” 같은 서술을 활용한다. 라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토론 결과 1. 우즈베크 문서의 기원과 문화 항목을 각각 기원, 문화 두 가지로 분리한다. 기원 항목은 토론 발제자가 맏되, 발제자가 토론 직후 3일 차단당한 관계로, 3일 기간 동안은 기존 서술 내용을 유지한다. 차단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토론 발제자가 새로 서술 내용을 더하고 수정한다. 2. 기원, 문화 항목 등의 서술 내용에 반론이 있을 시 가급적 이전 서술을 덮어쓰지 말고 반론 항목을 하위 항목으로 신설한다. 삭제가 필요한 경우 토론을 열고 협의한다. 3. 위구르인과 공통점 항목은 우즈베키스탄 요리 문서로 이동하며, 요리 문서에 맞게 내용을 수정 및 보강하여 기입한다. 4. 토론 발제자는 토론 종결 이후 3일 차단에서 해제되면 우즈베크인의 기원 항목의 내용을 작성한다. 5. 토론에 맞추어 문서 서술을 보완하는 동안에는 추가 서술시 문단마다 한 개 이상의 출처를 각주로 단다. 반대 의견이 있을 경우 토론하고 협의한다. 6. 문화 항목에는 "우즈베크인들은 다른 튀르크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높았으며 튀르크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에도, 무슬림 튀르크인 여성의 권리는 아랍인 및 페르시아인의 그것에 비해 비교적 더 우월하고 유도리 있는 편이었다. 과거 중앙아시아 튀르크인 사이에서 파란자, 부르카, 니캅 같은 옷차림은 극히 드물었다.”라는 서술을 추가한다. 라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