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과부적

 


1. 개요
2. 반례
2.1. 전투
2.2. 가공의 경우

'''고사성어'''
'''衆'''
'''寡'''
'''不'''
'''敵'''
무리 중
적을 과
아닐 부
원수 적

1. 개요


적은 수효(數爻)로 많은 수효(數爻)를 대적(對敵)하지 못한다는 뜻.

2. 반례


이 문서에 나열된 중과부적의 반례는 말 그대로 반례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유명하고 후세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는 그럴 경우가 거의 없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그것을 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역사상 무수하다면 딱히 그 이야기들이 유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세력이 소수의 세력에 패하면 후손대대로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같은 이유로 그런 상황이 역사상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고사성어로 내려오는 이유는 나는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에 빠져 자신을 파멸의 나락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옛날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2.1. 전투


  • 1126년 송나라 지방관과 금나라 사신 호위대의 충돌: 금군 17명 vs 송군 2000명
  • 대창원 전투: 금군 400명 vs 몽골군 8000명
  • 용인 전투: 조선군 7~8만 명 vs 일본군 1600명
  • 명량 해전: 조선군 13척 vs 일본군 대략 300여척
  • 쌍령 전투: 조선군 40,000여명 vs 청군 대략 300~1000여명
  • 팽성대전: 초군 30,000여명 vs 한군 약 560,000여명
  • 정형 전투: 한군 30,000여명 vs 조군 약 200,000여명
  • 베티고지 전투: 대한민국 국군 36명 vs 중공군 800명
  • 길주성 전투: 고려군 2,000명 vs 여진군 60,000명
  • 제1차 진주성 전투: 조선군 3,800명 vs 일본군 30,000명
  • 제2차 고구려-수 전쟁: 고구려군 345,000명[1] vs 수군 1,133,800명
  • 카가얀 전투 스페인군 40명 vs 일본 왜군 1,000명

2.1.1. 비록 졌지만 잘 싸운 경우



2.1.2. 논란이 있는 경우


  • 살수대첩의 경우 당연히 고구려군이 수나라 30만 별동대보다 적을 것이라 여기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얼마뒤 고당전쟁에서 수만~수십만을 연타로 동원하는 위력을 보여준 고구려이기도 하거니와 먼훗날 고려군이 더 많은 상태에서 승리한 귀주대첩도 있기 때문이다.[2]

2.2. 가공의 경우


어차피 얼마 못가 골디언 크러셔로 끔살해버렸다..
북한 육군은 한동안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진태는 총탄에 전사하였다.
[1] 추정치이며, 자세한 병력은 불명이다.[2] 하지만 대개의 유목제국이 그렇듯 요나라 영토가 넓기만 하고 인구밀집지대는 연운 16주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에 의외로 고려와 인구차이가 그닥 크지 않다. 더구나 요나라는 대외원정대고 고려는 수비하는 입장이다. 유목민인 만큼 동원력은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