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비앙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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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2년 포스 인디아 테스트 드라이버를 거쳐 2013년 마러시아를 통해 F1에 데뷔했던 프랑스 국적의 카레이서. 페라리에서 공을 들여 키우던 유망주였으며 비앙키가 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키미 래이쾨넨이 2016 시즌까지 페라리에 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팬들도 있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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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년차인 2014 시즌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당시 매 그랑프리 꼴찌를 담당하는 마러시아 레이스카를 타고 9위로 체커를 받으며 팀 창단 이후 최초의 포인트를 선사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저 9위도 패널티로 인해 1계단 하락한 순위였다! 당시 모나코의 마러시아 개러지는 그야말로 환호의 도가니, 팀원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도 그럴것이 '''22대의 차 중에서 탑 10 안에 든 것이기 때문. 그것도 만년 꼴찌 팀이!!''' 이 성적 덕분에 마러시아는 시즌 결산에서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걸로 다음 시즌 엔트리에 다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팀 감독은 개막전인 호주로 떠나면서 트위터로 '''"이 모든 것이 쥘 덕분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2] 이후 마러시아를 계승한 매노어 레이싱의 파스칼 베를라인이 2016년 7월 열린 오스트리아 GP에서 1포인트를 획득하기 전까지 비앙키는 매노어의 최초이자 마지막 포인트를 가져다 준 드라이버였었다.
2. 사고와 사망
그러나 모나코 이후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레이스 도중 사고로 리타이어한 자우버 소속 아드리안 수틸의 차량을 수습하던 리커버리 차량과 빠른 속도로 충돌,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급히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보통 F1 차량은 웬만한 사고에서도 드라이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들이 많지만, 차량이 리커버리 차량 (정확하게는 크레인 차량)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그대로 헬멧을 강타당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그 날 일본 그랑프리는 즉각 중단 후 마무리되었다.[4]쥘, 크리스티네, 그리고 그의 형제자매인 톰과 멜라니에의 부모는 쥘이 니스의 파스퇴르 병원에서 사망했음을 알린다는 것에 매우 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쥘은 항상 그래왔듯이 끝까지 싸워보려 했으나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 일가는 형언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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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당시, 사고 직후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후송용 헬기가 뜨지 못해 엠뷸런스에 비앙키를 태운 다음 병원에 후송'''했고, 그로 인해 결정적인 골든아워가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따라서 무리해서 일본 대회를 강행한 FOM 측은 이후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계각층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5] 어떤 스포츠에서라도 사고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며, F1의 경우는 큰 사고가 발생할 경우 드라이버가 중상을 입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고려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드라이버들은 모두 표정이 굳어버렸고 서킷 안의 분위기도 심각했으며 레이스는 더 이상 속행되지 않을 것이란 메세지와 함께 방송으로 보기에도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이후 여러 보도가 있었지만 쥘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고 이후 일본에서 고향 니스로 옮겨져 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기다렸으나 2015년 7월 17일 고향 니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수틸은 본인의 사고에 영향을 받아 비앙키의 사고가 일어난 것에 죄책감으로 매우 괴로워했으며[6] 이후 비앙키 장례식에도 참석해 비앙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비앙키의 팀이였던 마러시아는 쥘의 대한 배려라는 의미로 다음 경기였던 러시아GP에서는 맥스 칠튼의 엔트리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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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2015년 7월 21일 고향인 니스 대성당에서 치뤄진 후 화장되어 모나코에 위치한 몬테 카를로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때 젠슨 버튼, 펠리페 마싸, 루이스 해밀턴, 제바스티안 페텔, 파스토르 말도나도 등을 비롯한 비롯한 그의 동료 드라이버들이 그와 함께했다. 그 중에 말도나도와 마싸는 흐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F1 관계자와 팬들은 모두 깊은 슬픔에 빠졌고 요절 직후 열린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그동안 함께 레이스를 했던 동료 드라이버들은 레이스 시작 전 그리드 위에 다같이 모여 자신들의 헬멧들을 비앙키가 쓰던 헬멧 주위에 모아놓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원을 그리면서 추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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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날 헝가리 GP에서 우승한 페텔은 비앙키를 언급하며 오늘 경기를 그에게 바친다고 했다.[7] 또한 그의 엔트리 번호 17번은 F1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3. 그의 죽음이 남긴 영향
그의 사고 이후 다시 한 번 F1은 안전성에 대해 여러 지적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아일톤 세나의 사고 이후 21년만에 나오는 드라이버 요절 사고이기 때문.
전문가와 팬들 사이에서 지목된 사고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첫째로 FIA가 당시 태풍이 오고 있고 강수량이 엄청난 상황 속에서 경기를 강행했다는 것이며,[8] 둘째로 리커버리 차량 밑으로 차가 부딪히면서 비앙키가 머리를 심각하게 다쳤다는 것이다.
당시 스즈카는 비가 이미 세차게 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미 한 차례 레드 플래그로 장시간 레이스를 중단 시켰다가 재개를 하였다. 문제는 이미 경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스즈카가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던 것.''' 이미 서킷 컨디션도 중단해야 할 정도인데 날씨까지 어두워지니 서킷은 극도로 위험해져 있었다. 이미 경기가 한 번 중단되었다 재개된 상황이었고 드라이버들도 경기를 속행할 상태가 아니라며 무전으로 FIA를 욕해대고 있었다.
게다가 아드리안 수틸이 코너에서 미끄러져 방호벽에 부딪히고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 리커버리 차량이 투입된 것이 결정적인 화근이었다. 세이프티 카가 투입되지 않고 옐로 플래그만 발동, 이후 그린 플래그가 휘날리면서 통제가 느슨해지자 비앙키가 같은 코너에서 스핀하여 부딪혔다는 것이었다. 이 때 비앙키의 충돌 속도는 무려 '''180 km/h''' 정도로 추정되었다.
또 하나는 F1 경주차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인 에어 인테이크[9] 가 부러지면서 충돌당시의 충격을 비앙키의 머리가 고스란히 받았다는 것이다. 리커버리 차량은 강철로 만들어진 쇳덩이였고 여기에 빠른 속도로 인테이크 부분이 부딪히면서 부러지고 만 것. 원래 F1의 에어 인테이크는 착 깔린 F1 레이스카 중에서도 우뚝 솟아있는데 이것은 전복 시에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지대 역할을 하는 디자인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부러져 버렸으니 드라이버를 보호할 수단이 무력화 되었던 것. 수직 전복에는 강력하지만 측면 충돌에서는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할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사고 이후 수많은 보완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는 FIA에 의해 검토되어 실제로 적용된 것들이 모든 그랑프리의 레이스 시간을 전보다 1시간 앞당기는 것[10] , VSC[11] 의 도입, 그리고 '''드라이버들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헤일로 디바이스'''의 도입이다.
이는 F1 경주차 디자인의 일대 혁신으로, F1 경주차는 '''오픈 콕핏, 오픈 휠이 표준 규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오픈 콕핏이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선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하여 메르세데스에서 먼저 이 개념을 제시했고, 이후 레드불이 반 캐노피 상태의 보호장치를 제시했다. 레드불이 제시한 반 캐노피는 우려와 달리 휠와 같은 거대한 데브리[12] 를 막아주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야 문제에서 일부 드라이버들에게 시야 왜곡이 있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물론 헤일로 디바이스도 강한 소재로 만들어져 휠를 막아주지만 마싸의 경우처럼 날아오는 볼트 하나에도 두개골이 깨지는데 그런 작은 데브리는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드라이버의 전방 시야를 왜곡하면 어떡하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헤일로의 경우는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이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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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헤일로 디바이스가 2018 시즌부터 F1의 규정으로 의무 장착화'''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F1 팬들은 타이어같이 큰 데브리는 막을수 있을지 몰라도 작은 파편은 의미가 없고[14] 무엇보다 '''너무 못생겼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중. 드라이버들도 의견이 분분한데 GPDA[15] 디렉터로 이 문제를 많이 지적했던 페텔은 찬성하는 쪽이고, 루이스 해밀턴은 못생겨서 싫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헤일로가 전면 도입된지 반년이 지난 2018년 시점에서 헤일로는 눈에 띄는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F2 경기에서 콕핏 위로 올라탄 상대 차량의 타이어를 완벽하게 막아내면서 그 위력을 보인 것.# 이외에도 F1 경기에서 몇차례 위험한 상황에서 헤일로가 확실하게 그 무게를 견디며 우려의 시선을 빠르게 걷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2018년 벨기에 GP에서 레이스 스타트 직후 니코 휠켄베르크와 엉킨 페르난도 알론소의 차량이 샤를 르클레르의 차량 위를 올라타며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알론소의 차는 르클레르의 콕핏 위를 그대로 깔고 지나갔는데, 몇 년 전에 알론소가 그로장을 상대로 당했던 사고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위험했다.[16]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르클레르는 걸어서 차에서 나올 수 있었다.[17] # 이 한 건의 사고로 헤일로 디바이스의 유용성은 완벽하게 입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비록 비앙키는 불행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 했지만, 그의 요절이 이끌어낸 변화로 인해 그와 가장 절친했던 르클레르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헤일로는 2020 시즌 바레인 GP에서 동향 선배인 로맹 그로장을 다시 한 번 구해냈다. 스타트 직후 크비얏과의 충돌로 배리어와 충돌해 차에 화재가 발생하고, 콕핏 뒤가 부러져 차량이 두동강나고 서바이벌 셸이 배리어에 꽂히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때 헤일로가 기능을 발휘해 그로장의 머리를 보호했다. 덕분에 그로장은 레이싱복이 내화상을 발휘 할수있는 시간내에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비앙키 덕분에 빠르게 도입된 헤일로는 말 그대로 수호천사처럼 드라이버들을 지켜주고 있다.
4. 여담
- 한때는 페라리의 미래로써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마러시아를 몰고 고군분투하면서도 팀의 첫 포인트를 따내는 등, 그 형편없는 성능의 차로도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곤 했다. 만약 비극적인 사고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페라리에서 활동하는 비앙키를 볼 수 있었을지도.
- 샤를 르클레르의 형인 로렌조 르클레르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샤를과도 친형제처럼 친했으며, 샤를은 쥘을 자신의 멘토로 여길 정도로 각별한 관계였다.[18] 그래서인지 샤를은 F1에 데뷔하기 전부터 종종 인터뷰에서 쥘을 향한 그리움을 표하곤 했다. 위의 장례식 사진에도 잘 찾아보면 로렌조와 샤를 르클레르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2019 시즌 페라리를 타고 빼어난 실력을 뽐내며 페라리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리게 된 샤를 르클레르의 모습은 마치 쥘 비앙키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많다. 아직도 많은 F1 팬들이 쥘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어쩌면 샤를의 모습을 보며 그리운 쥘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딱히 특출난 포디움 등의 기록이 없는 것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닌 데뷔한지 2년 정도 되었던 새내기 드라이버여서 그런 것이다. F1급 경기에서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드라이버가 포디움에 오른다는 것은 실로 기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소속되었던 마러시아는 만년 꼴찌를 달릴 정도로 차량 성능이 좋지 않았다.
[1] 실제로 페라리에서 비앙키의 사고 이후 그동안 F1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던 쓰리카를 언급하며, 만약 페라리가 3번째 차를 달리게 했다면 그 주인은 비앙키였을 것이라고 공식 인터뷰를 했었다.[2] 팀을 창단했던 버진 시절부터 단 1포인트도 획득하지 못한 마러시아에서 무려 5초 가산 패널티를 받고도 얻어낸 성적.[3] 영상에서 마샬이 그린 플래그, 즉 경기 재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사고가 발생한 마샬 포스트의 위치상 이전 마샬 포스트에서 옐로 플래그가 나오고, 사고현장에 해당하는 마샬 포스트 이후 구간에서 경기를 재개해도 좋다는 신호다. '''즉 해당 마샬은 잘못한 것이 없다.''' 트랙터가 해당 구간에서 벗어나 자우버 머신을 들어올려 나오고 있었으니 해당 마샬 포스트 구간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가속해도 된다는 것. 실제로 그린 플래그가 나온 이후 약 10초 후에 비앙키의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지적받는 것은 FIA의 대응으로, 태풍으로 트랙 상태도 좋지 못한 상황에서 트랙터까지 나와 자우버 머신을 수습하기 시작했을 때에 바로 세이프티 카를 내보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후술되어 있듯이 일본 대회를 강행한 점과 세이프티 카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4] 태풍 판폰으로 인한 폭우가 원인이다.[5] 실제로 쥘의 유족들은 마러시아 F1 팀 및 FIA 포뮬러 1 운영위원회에게 소송을 걸었다.[6] 수틸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앙키의 사고가 일어났다.[7] 팀 라디오를 통해서 "Merci Jules, Cette Victorie est pour toi."라고 언급했다.[8] 심지어 폭우가 오는 상황에서 레이스 페이스를 끌어올리겠다고 '''DRS를 허용하는'''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렀다.[9] 차량의 실내에 외부공기를 유입하기 위해 만든 덕트로, 우리말로 공기흡입구이다. F1 경주차의 에어 인테이크 부분은 드라이버의 머리 바로 뒤에 있는 큰 구멍이다.[10]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시야 확보가 되지 않으므로.[11] 버추얼 세이프티 카, 더블 옐로 플래그보다 강력한 상태의 통제로, 가상으로 세이프티 카가 발동된 것 같은 상태를 말한다. 이 때 각 차들은 잘게 쪼개진 구간에 의해 제한 속도를 지켜야 한다.[12] 사실 타이어는 서스펜션 안에 첨단소재의 줄로 연결되어 있어 서스펜션이 부러지면 그 줄이 휠을 잡아주기 때문에 대부분에 경우 달랑거리면서 날아가진 않는다. 최근에 그 줄이 끊어져 휠이 날아가는 경우가 있었다.[13] 일부는 운전에 집중하다보니 헤일로가 있었다는 자각조차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14] 쥘 이전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선례는 펠리페 마싸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싸는 앞 차에서 튀어나온 스프링에 두부를 강타당해 두개골이 깨졌는데, 그런 작은 스프링조차 두개골을 부러트리는데 헤일로 디바이스로는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것. 여담이지만 다행히도 마싸는 사고 후 살아남아 다시 F1에 기적적으로 복귀한 뒤 승승장구했다.[15] Grand Prix Drivers' Association, 그랑프리 드라이버 협회. 한국으로 치면 선수협 정도.[16] 당시 그로장의 차의 노즈가 알론소의 콕핏을 스치고 지나갔다. 당시에는 하이노즈가 대세였으므로 차가 살짝만 들려도 노즈의 높이가 다른 차의 노즈를 쉽게 타고 넘을 수 있을 만큼 높았다. 따라서 조금만 각도가 틀어졌어도 노즈가 알론소의 헬멧을 강타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 셈. 이후로는 노즈 높이에 관한 엄격한 규정이 제정되며 이듬해 그 전설적인 스텝노즈가 등장하게 되었다.[17] 심지어 샤를은 이후 개인방송에서 밝히기를, 사이드미러를 보기 전까지 리어 윙이 날아간 줄 모르고 좀 밀리긴 했지만 이대로 레이스를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드라이버 본인에게 가해진 충격은 없었다는 것.[18] 참고로 샤를은 쥘의 아버지에게서 카트를 처음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