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엉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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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즈엉반민(Dương Văn Minh, 楊文明(양문명))
생몰년도
1916년 2월 6일 ~ 2001년 8월 6일
재임기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1963년 11월 2일 ~ 1964년 1월 30일
1964년 2월 8일 ~ 1964년 8월 16일
1964년 9월 8일 ~ 1964년 10월 26일
베트남 공화국 대통령
1975년 4월 28일 ~ 1975년 4월 30일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


베트남 공화국의 군인 및 정치인, 4대이자 마지막 대통령.

2. 생애


즈엉반민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띠엔장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이공프랑스가 설치한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후 1940년 프랑스군에 입대했다. 1945년에는 일본 제국이 인도차이나 총독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그는 포로로 붙잡혔다. 이때 그는 일본군 헌병에게 구타당해 치아가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전후에도 그는 프랑스군에서 복무하다가 1952년 베트남국의 군대인 베트남 국군에 입대한다.
1955년 베트남국은 베트남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는 베트남 공화국군에서 복무를 계속한다. 1963년 그는 CIA로부터 응오딘지엠 정부가 전복되어도 반대하지 않을거라는 통보를 듣고 응오딘지엠을 실각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날 응오딘지엠은 총을 맞아 암살되었다. 그는 군정을 선포하고 군사정부의 수반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즈엉반민은 베트콩과의 대결보다는 화해를 추구했고, 이는 결국 미국이 응우옌카인의 쿠데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즈엉반민은 응우옌카인의 쿠데타에 의해 실각했다.
즈엉반민은 실각된 이후에도 어느 정도의 권력은 유지해서 응우옌카인과 권력 다툼을 하기도 하여 자주 정부의 수반에 올랐다가 실각했다가 하다가 1964년 12월 19일 쿠데타가 일어나 판칵스우가 수반에 오르며 그는 태국 방콕으로 망명했다. 즈엉반민은 쿠데타 당시의 미국 CIA의 친분을 이용해 베트남에 돌아가려 했고 1968년 귀국했다. 그는 1971년 대선에서 응우옌반티에우와 대결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편 베트남 공화국에선 미군이 철수하고 1973년 북베트남베트콩과 파리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1975년 3월 북베트남은 이 협정을 깨고 베트남 공화국을 침략했다. 1975년 4월 21일에는 응우옌반티에우 대통령이 대만으로 망명했고, 쩐반흐엉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지만 북베트남과 평화 협정을 북베트남 측이 거절하자 그는 4월 28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즈엉반민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즈엉반민은 어떻게든 북베트남군을 막아보려했지만 베트남 공화국군 장성들은 자살하거나 해외로 망명하고 있었다. 4월 30일 9시 30분경 그는 라디오 방송으로 이런 연설을 한다.
본인은 동포들을 대표해, 우리 베트남인들의 화해에 대한 깊은 신념으로, 불필요한 유혈을 막기 위해 민족의 화합을 제의한다. 베트남공화국 전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침착하게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 나는 또 혁명군 전사들에게 사격을 멈출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질서 있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이곳에서 임시 혁명정부를 기다릴 것이다.
이후 정오 경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대통령궁에 진입한다. 북베트남군이 대통령궁에 들어가자 즈엉반민은 테이블 주위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북베트남군 장교는 "당신의 정권은 이미 사라졌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넘겨준다는 거냐"며 일갈했다. 그날 오후 북베트남군이 지켜보는 앞에서 라디오 연설을 통해 베트남 공화국 정부는 해체되었다고 선언했다.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그의 역할은 불과 이틀만에 끝난 것이었다.
그는 통일 이후에도 베트남에 머물며 8년간 은둔 생활을 해왔고 베트남 정부도 그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1983년 망명이 허락되어 파리로 이주했다.
1980년대말 그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베트남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망명 기간 동안에는 과거의 일들에 대한 것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고, 회고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죽자 베트남 정부(!!!)에서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들에게 항복했고, 군사정부 수반일때도 베트콩과의 화해를 추구해서 딱히 자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이 없기 때문이다.

3. 기타


그는 키 183cm에 몸무게 90kg으로, 당시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키가 매우 컸다. 그 덕분에 빅 민(Big Minh)이라는 별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