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스문트 2세

 

[image]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image]
율리우스

지기스문트 2세

오토프리드 2세
'''지기스문트 2세
Sigismund II · ジギスムント2世'''
'''OVA'''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SE ???. ??. ??. ~ SE ???. ??. ??. (??세)
'''재위'''
SE 453. 5. 1. ~ SE 469. ??. ??.(16년)
'''가족 관계'''
율리우스(증조부) 프란츠 오토(할아버지), 칼(사촌동생), 오토프리트 2세(아들)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위'''
은하제국 황제
'''별칭'''
치우제,痴愚帝,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없음
1. 개요


1. 개요


은하영웅전설 본편 이전의 인물로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의 7대 황제. 제위기간은 제국력 144년 ~ 160년.
바보 황제(痴愚帝, 치우제)라는 별칭이 있다. 본명은 지기스문트 폰 브로네, 즉위 전 작위는 후작. 본래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칼 공작의 사촌이다.
전임 황제 율리우스가 칼 대공의 사주로 독살되었음을 알아낸 지기스문트 후작은, 이 증거면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칼 공작을 협박하여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황위 계승권을 넘기라는 뒷거래 끝에 황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제국력 144년 5월 1일 즉위한다.
지기스문트 2세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바보 황제라고 불린 것은 아니지만, 즉위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처리를 빼고는 굉장히 무능한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이 황제가 될 기회를 잡는 과정도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율리우스 황제가 암살된 후, 당시 선제의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총희 5명에게 선제 암살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결 명령이 내려졌고 결국 총희들은 전원 사망했다. 그런데 이 5명의 총희 중 한 명은 칼 대공의 사주를 받아 율리우스를 암살한 실행범이었다. 칼 대공은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려고 암살 실행범을 포함한 총희들을 제거했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죽을 수 없었던 암살범이 화장품으로 자신의 팔찌 뒤에 율리우스 암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써놓았고 이 팔찌는 유품이 되어 친위대 장교로 복무하던 오빠에게 건너갔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이 장교는, 누이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지기스문트 2세에게 팔찌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결국 지기스문트 2세가 황위에 오른 것도, 칼 대공의 실수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지기스문트에게 '바보 황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붙은 결정적인 이유는, 재위기간 동안 '''은하제국의 국고와 국정을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은 그의 사치행각과 국정농단이다.'''
먼저 선제 율리우스를 보좌했던 유능한 세 대신인 국무상서 한 백작, 재무상서 베링 제국기사, 군무상서 케텔러 원수를 모두 해임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심복인 바르텐베르크 후작, 나우가르트 자작, 루벤 남작을 각각 국무상서, 군무상서, 재무상서에 임명했다. 신임 군무상서 나우가르트는 원수 서임까지 받았는데, 고작 병사 500명 정도를 지휘해 본 경험 밖에 없었다. 이 세 사람은 황제의 막대한 금전욕을 충족시키는 데 열과 성을 다했고, 그러는 동안 그들 자신도 사리사욕을 채웠다.
지기스문트 2세는 '''"국고는 자신과 부하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믿었고, 막대한 금전을 끌어모으고 탕진해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간 최악의 금치산자로 기록되었다. 징세권을 부유한 상인이나 대귀족에게 팔아치우고, 형사범의 죄를 돈으로 갚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미녀를 후궁으로 들일 때 막대한 지참금을 요구하고, 후궁을 신하에게 하사할 때도 막대한 예물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수영장 바닥에 에메랄드를 깔고, 진주식초에 녹여 마시며, 백금다이아몬드로 자신의 관을 짜고 사후세계에서도 후궁을 가지려고 순금 미녀상 600개를 주조하게 하는 어마어마한 세금 낭비를 자행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하제국은 황제 곁에 붙어 이익을 얻은 극소수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로 나뉘어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민심은 서서히 제국을 떠나갔다.
이렇게 돈을 뜯어내도 모자라 죄 없는 거상 300명과 그 일족들을 처형하고 전 재산을 몰수한 것이 화근이 되어, '''보다못한 황태자 오토프리트가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장원에 연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1] 지기스문트 2세의 사치행각을 보좌하던 세 대신은 처형했고, 재산은 제국 정부에 몰수된다.
폐위 이후의 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몰래 죽음을 당하고 그 죽음이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토프리트 2세는 선제가 초토화시킨 국고와 국정 질서를 수습하는 데 6년이 걸렸고, 그러는 동안 생명력이 고갈된 것이 원인이 되어 과로사했다.

[1] 이때 아들에게 폐위당하지 않고 수십 년을 더 재위했다면 춘추전국 시대를 불러왔을 황제다. 당시 권신들의 힘이 어찌나 막강해졌는지, 훗날 문벌귀족의 최고 가문들은 이때 완성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