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귀족(은하영웅전설)
1. 개요
門閥貴族
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국가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의 문벌귀족 집단. 여기서 문벌(門閥)이란 가문의 권위를 뜻하는 말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문벌(文閥)이 아니며 문(文)은커녕 무(武)와도 한참 동떨어진 무능한 집단이고, 명색이 제국의 최고 귀족 가문들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매우 병맛나는 적폐세력이다.'''
모티브는 앙시앙 레짐과 융커.
2. 특징
처음 문벌을 이루기 시작했을 때에는, 실력을 중시하던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뽑은 부하들답게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루돌프가 사망하자 때는 이때다 하고 일어난 반란군들을 달걀 짓밟듯 밟아버렸을 정도다.[2]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면책특권이나 면세특권 등 수많은 특권으로 부를 쌓기 쉬워지고 책임 없이 특권만 누리며 향락과 사치에 몰두한 결과, 몇 세대가 지나자 조상 세대의 능력은 못 물려받고 이상할 정도로 높은 자존심과 오만함으로만 무장한 무능력집단이 되고 말았다.
원래 은하제국은 전제군주제를 추구하던 국가였지만, 은하영웅전설 본편의 시대에는 황권이 약화되고 봉건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카스트로프 동란에서도 볼 수 있듯, 문벌귀족들은 행성 규모의 영지와 막대한 재력을 보유하여 '''중앙정부를 상대로 전쟁까지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3] 그래서 은하제국 역사에는 궁정음모만큼 지방 반란의 수가 많았다고 하며, 라인하르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에 와서는 아예 연례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은하제국의 이념 때문인지 군대와 전쟁도 좋아하는 집단이다.[4] 문벌귀족치고 장성이 되지 않은 사람이[5] 없고 사병들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으며 부하로 직업군인들을 다수 부리고 있다. 파티와 사교와 문예, 예술활동도 자주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흥이고, 파티 중에도 대귀족들끼리 따로 모여서 비밀 회의를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취미와 달리 그들 중 상당수는 군재가 없었고, 거기에 젊은 귀족은 공명심까지 쓸데없이 비대해 단합이 잘 되지 않았다. 이 단점들은 이후 그들 자신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게 된다.[6]
이런 어리석은 집단 안에서도 마린도르프 백작가, 클라인게르트 자작가 등 능력과 인망을 갖춘 가문은 있었으나, 문벌귀족 내에서는 비주류에 속했다.
OVA와 대부분 매체에서는 18세기 부르봉 왕조가 다스리던 앙시앵 레짐 프랑스 왕국 또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던 말기 신성 로마 제국 정도의 전형적인 근세 귀족이 생각되는 옷을 입고 있지만[7] , DNT에서는 19세기-20세기 초반 산업시대의 프로이센 왕국 및 독일 제국에 맞춰 주로 프록 코트식 양복같은 신사 정장을 입은 융커들로 정립되었다.
3. 분열
우주력 796년, 은하제국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붕어하였다. 당시 제위 계승 후보로는 황제의 친손자 에르빈 요제프 2세, 황제의 외손녀인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와 자비네 폰 리텐하임이 있었다.
계승권만 놓고 보면 적장손인 에르빈 요제프 2세가 가장 순위가 높았으나 당시 5세로 어린데다 어머니 쪽 가문의 배경이 약해 제위 계승 후보로 고려되지 않았고, 두 여성 후보의 제위 계승을 두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거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선제의 두 외손녀 중 하나가 제위에 오를 경우 강대한 힘을 가진 외척이 국정을 농단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받아 20세에 원수직까지 오른 은하제국군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을 끌어들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고, 스스로를 공작으로 높이고 섭정직에 취임하는 한편 로엔그람 백작의 작위를 후작으로 높이고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하도록 했다.
이 조치는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 두 대귀족 가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벌귀족들을 소외시킨 조치였으므로, 문벌귀족들은 분노했다. 이에 문벌귀족들이 서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귀족사회는 두 개의 파벌로 나뉘게 된다.
- 추축파 -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과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의 추축세력.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세력 자체는 '연합파' 귀족에게 크게 밀렸던지라 소수의 귀족만이 추축파에 가담했다.
-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
-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
-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8]
- 겔라흐 자작
- 연합파 -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의 연합세력. 추축파의 기습으로 신 정권에서 소외당했지만 다수의 영지, 자본 및 사병을 보유하여 대부분의 귀족들이 여기 가담했다. 이들은 제국 수도 오딘의 립슈타트 숲에 있는 별장에서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발족하고, 추축파를 규탄했다.
-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
- 오펜하이머 백작
- 히르데스하임 백작
-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
- 플레겔 남작
- 샤이트 남작
- 그 외 귀족 3,733명.
- 중립 - 이외의 귀족들은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12] 두 파벌 중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퇴역 원수
- 하인리히 폰 큄멜 남작[9]
-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자작[10]
-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11]
4. 내전과 몰락
우주력 797년 2월, '연합파' 귀족들이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발족하고 정식으로 제국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귀족들 대부분은 군재가 없었고,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나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등 유능한 제독들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거기다 선민의식만 넘치고 아랫사람 보기를 우습게 아는지라 끊임없이 패배하고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민심마저 잃어버렸으며, 결국 근거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함락과 동시에 몰락하고 만다.
내전의 결과로 다수의 귀족이 자결 및 전사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거나 페잔 자치령 및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했다. 내전 이후 '추축파' 귀족들 간에 2차 내전이 벌어져 로엔그람 후작이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하고 작위를 공작으로 높이며 재국재상으로 취임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권력과 재산을 잃어버린 망명귀족들은 페잔 자치령의 지원을 받아 황제를 납치하고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하여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수립했으나, 일련의 과정들은 로엔그람 공작의 모략이었기 때문에 페잔 자치령이 멸망하고 자유행성동맹은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으며, 은하제국 정통정부도 붕괴한다.
이후 은하제국의 문벌귀족 계급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귀족 계급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로엔그람 왕조 수립을 적극적으로 도운 귀족들의 영지나 재산은 보전했으나 면세 등 그동안 누린 특권은 박탈했고, 국가 공신들에게도 작위는 내리지 않았다. 그나마 작위를 내린 사례가 죽은 친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대공으로 추서한 것과, 자신의 누이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를 대공비로 올린 것, 황자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에게 대공 작위를 준 정도뿐이다.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했다 살아남은 귀족들은 반역죄로 핵심 가담자들은 처형 혹은 감옥행을 면치 못했고, 나머지는 처벌을 면했다 해도 제국정부에 전 재산과 영지를 몰수당하고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귀족들의 사유지였던 수많은 저택이나 병원 등은 평민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개방되었고, 귀족들이 소유하던 미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으로 보내졌다. 귀족들이 소유한 장원들은 모조리 몰수되어 평민들에게 분배되었고, 농노들도 모두 해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귀족은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라인하르트의 신체제를 비난했다.
사실 그들이 마음껏 누리던 부귀영화가 대다수 민중의 피땀을 쥐어짠 결과라는 것을, 그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조직적으로 저항할 힘이 없었다. 기껏해야 테러 수준으로 저항할 힘만 남아있었으나,[13] 이때는 지구교 때문에 치안이 엄격해져서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아름다운 정원은 천한 것들에게 짓밟히고, 두툼한 융단에는 흙발자국이 찍혔으며, 고귀한 자만이 잘 수 있었던 천장 달린 침대에 지저분하고 불결한 아이들이 침 자국을 남기는구나. 과거 위대했던 이 나라는 이제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것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바라건대 이 추태와 참상이 하룻밤 악몽으로 끝나기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3권 <자복편>, 김완, 이타카(2011), p.50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로엔그람 왕조 초대 국무상서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은, 자신과 조금이나마 인연이 있던 이들이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라도 경제적으로 원조를 해 주었다. 문벌귀족들에 대해 냉혹한 태도를 고수하던 라인하르트도 마린도르프 백작의 선의는 굳이 막으려 하지 않았으나, 경제관념 없이 낭비에 익숙해진 귀족들은 그 돈도 다 써버리는 바람에 마린도르프 백작도 더 도울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한 귀족이 죽어 1만 명 평민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짐에게는 바로 정의다. 굶어 죽기 싫다면 일을 하라. 평민들은 500년간 그리 해왔으니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253
5. 여담
게임에선 '''쓰레기 같은 능력치가 특징인 집단.''' 사실 해당 시나리오에서도 숫자상 은하제국의 함대의 절반, 제국내의 3대 주요 요새와 많은 면적을 점유하고, 사실상 정부 소속 영역을 두동강 내놓은데다가 수도성계인 발할라 성계를 바로 침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놈의 능력치 때문에 다 말아먹는다. 한 자리수 능력치들이 특징이다. 플레이하다보면 요툰하임 성계나 트라바흐 성계 하나둘 점령하는 것으로 끝이다.
평소에는 제국의 상류층으로서의 우월감이 하늘을 찌르지만 궁정음모나 권력투쟁에서 패했다 싶으면 주저 없이 얼마전까지 반란군이라고 부르던 자유행성동맹으로 튀는 경우가 많다. 소설 외전에서는 라인하르트가 이걸 비꼬아서 동맹이 없어지면 망명할 데가 없어지니 귀족들이 일부러 열심히 싸우지 않는게 아닐까라고 (물론 속으로)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하면 동맹으로 망명하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황손마저도 동맹으로 망명했다가 복귀해서 황제로 즉위한 사례가 있었으니.
전체적으로 보자면, 앙시앵 레짐 시기의 프랑스 귀족 집단을 연상케 하는 면이 많다.[14] 사실 앙시앵 레짐 시절의 귀족들은 은하영웅전설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중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아버지와 로이엔탈과 가까운 유형의 이들이었는데(돈으로 귀족이 된 사례와 그들의 자손) 이는 혈연으로만 이어지는 문벌귀족과는 다른 점이다.[15] 한편으로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처럼 대가 끊긴 귀족가에 공훈을 바탕으로 입적되는 일도 많은 듯 하다.[16]
외전에서 보면 이들이 즐기는 유흥으로 결투가 있다. 사실 이건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정식 재판을 대신하는 고전적인 갈등 해결 방법이고, 재판이 그렇듯이 남의 재산을 뺏기 위해 악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대전사를 세울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정식 소송에서 승산이 없어보이면 의도적으로 결투의 명수를 고용해서 결투를 걸어버린다. 당연히 사회적/재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좋은 결투자를 얻기 유리하고, 악질적인 경우에는 아예 상대편이 제대로 된 대리인을 얻기 힘들도록 방해공작을 넣기도 한다.
이 결투는 어디까지나 유흥이자 스포츠[17] 이기 때문에 상대방 결투자(본인이건 대전사건)를 죽이는 건 피한다. 상대를 죽여서 이긴다고 해서 결투가 무효화되거나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시합이 아니었다고 해서 결투자는 물론 결투에 나선 가문까지 사교계에서 비웃음을 사게 된다. 때문에 상대에게 가능한 작은 상처를 입혀서 제압하는 편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18]
현역 군인은 원칙적으로 군법에 의해 결투가 금지되어 있다.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규정을 무시하고 결투를 한 죄로 대위에서 중위로 강등된 적이 있다.[19][20]
참고로 처음엔 총으로 승부를 보아 나지 않으면 검으로 검으로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면 맨손으로 승부를 보는데 실제로 그렇게 과격하게 되는 일은 적다고 한다. 물론 꼭 총으로 시작하는게 아니라 합의하에 검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6. 명단
-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 오이겐 폰 카스트로프 공작
-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
-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 → 남작[21]
-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
-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 → 공작[22]
-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부인
-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
-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
-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23] → 대공비[24]
- 히르데스하임 백작
- 콘라드 하인츠 폰 로엔그람 백작 → 후작[28] → 백작[29]
-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25] → 후작[26] → 공작[27]
- 에리히 폰 하르텐베르크 백작
- 에른스트 팔스트롱 백작[30]
- 칼 마티아스 폰 포르겐[31]
-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
- 오펜하이머 백작
-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
- 요한 디트리히 폰 아이젠후트 백작
-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자작 → 공작[32]
-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자작
- 겔라흐 자작
- 코르푸트 자작
- 놀덴 자작
- 샤프하우젠 자작
- 도로테아 폰 샤프하우젠 자작부인[33]
- 세틀러 자작
- 헬더 자작
- 콜비츠 자작[34]
- 마크달레나 폰 베스트팔레 남작부인[35]
- 미하엘 지기스문트 폰 카이저링 남작
- 플레겔 남작
- 게르하르트 폰 슈테거 남작
- 라트부르흐 남작
- 호징거 남작
- 카르나프 남작
- 하인리히 폰 큄멜 남작
-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남작
- 샤이트 남작
[1] 이 장면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테니스 코트의 맹세를 패러디한 것이다. 원본이 문벌귀족과는 대척점에 있는 현대 민주주의의 시발이 된 사건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사실상 대놓고 '''조롱한 셈이다.'''[2] 이 일로 5억 명이 죽었으며 그 가족, 친구 등 100억 명이 피해를 입었는데, 제국 건국 당시 인구가 3천억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의 반란이었다.[3]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의 가문인 마린도르프 가문 역시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다.[4] 제국 귀족의 필두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대신 오딘께 바칠 제물로 처녀를 바치겠다느니 옛 전통을 따라 금발 애송이의 해골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겠다느니 발언했으며, 휘하 귀족들도 전쟁을 하고 싶어 미쳐있다고 보일 지경이다.[5] 작중에서 머저리 취급받는 플레겔조차 실전에 나가본 적도 없는 주제에 소장 계급을 달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6] 이 문벌귀족의 일원이었음에도 훗날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도 귀족들에게 군재가 없음을 간파하고 라인하르트의 승리를 확신했을 정도다.[7] 귀족들의 머리스타일도 퍼루크 가발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8] 본디 중립을 희망했으나 제국의 귀족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연합파에 가담하려 했다가 딸 힐데가르트의 설득으로 추축파의 편에 섰다. [9] 몸이 약해서 가담하지 않았다. 만일 몸이 건강했다면 숙부인 마린도르프 백작을 따라 추축파의 편에 섰을 것으로 추정[10] 취미 외엔 관심없어서 가담하지 않았다.[11] 중립이라고는 해도 페잔 고등판무관이다보니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립슈타트 전역에 참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관료라는 점과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할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보다는 오히려 리히텐라데 계열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12] 세상사나 권력 다툼에 관심이 없거나, 몸이 너무 병약하거나 등등.[13] 실제로 엘프리데는 로이엔탈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14] 하지만 앙시앵 레짐시기의 프랑스 귀족의 전쟁 수행능력은 은영전의 문벌귀족과 차원이 달라서 앙시앵 레짐 문서에서도 결국 장교단의 문제를 이야기 할 정도다. 당연하지만 중세유럽만이 아니라 전세계 역사 대부분에서 귀족이란 전쟁수행의 핵심을 담당하는 계층으로 특정 수준 이상의 전쟁 수행능력을 항상 요구받아왔고 아무리 타락하고 질이 떨어졌다고해도 유럽 최강의 군대라는 자부심과 실질 실력도 보유한 프랑스군 장교를 떠받치는 프랑스 귀족들의 전쟁수행 능력이 은영전 문벌대귀족과 비교될 수준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이전에 프랑스가 수행한 가장 대표적인 전쟁은 미국독립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활약은 대단했으며 전쟁의 종결도 프랑스군이 주도한 해군에 의해서 종결될 정도로 프랑스 귀족들의 전쟁수행 능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다만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앙시앵 레짐 시기의 귀족들이 특별히 유능했다는건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그래도 뭔가라도 배우고 군인이 되었기에 문벌귀족보다는 낫다는 것 실제로 이런 귀족들조차 없어졌던 초기 프랑스 공화정은 패배를 많이 해서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에는 공화국에 충성하는 귀족들은 살려주어 전선을 맡도록 해야 했다.[15] 물론 앙시앵 레짐 시기의 프랑스에서도 대검 귀족이라 하여 문벌귀족과 유사한 귀족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이른바 '법복 귀족'이라 불리는 돈으로 작위를 사는 등 후천적 귀족과 그 자손이 대부분이었다.[16] 라인하르트가 로엔그람 백작가를 물려받을 때도 리히텐라데는 좀 찜찜해했어도 '''이미 이전에도 있던 일이라''' 넘어갔고,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이 분통을 터뜨린 이유도 라인하르트 같은 (자기들이 보기엔) 근본도 없는 자를 문벌귀족에 집어넣는다는 것뿐이었다.[17] 관중들이 승부에 돈까지 건다. 이쯤되면 검투 경기와도 다를바 없어보인다고 할 수 있다.[18] 결투자들이 사용하는 사격 표적도 손>팔>어깨 순으로 점수가 낮아진다. 가장 점수가 낮은 부위가 심장과 머리 같은 맞으면 즉사하는 급소다.[19] 라인하르트는 하고도 처벌받지 않았는데 대리인으로 참가했기 때문으로 대리인은 도구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20] 참고로 같은 시기 미터마이어는 소위에서 중위로 승진했다. 둘이 만난 것도 중위이던 시절.[21] 헤르베르트 대공의 원정에 반대했다가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심기를 건드려 작위가 강등됨.[22] 로엔그람 백작과 연합하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면서 공작으로 승격.[23] 본래 제국기사 작위를 받은 하급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황제의 총비가 된 후 그뤼네발트 백작 가문의 성을 받아 문벌귀족에 편입.[24] 라인하르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대공비로 승격. 여성 대공을 의미.[25] 본래 제국기사 작위를 받은 하급귀족이었지만 로엔그람 백작가를 이으면서 문벌귀족에 편입.[26]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을 견제하기 위해 리히텐라데 후작이 로엔그람 백작을 끌어들이면서 후작 작위를 하사.[27] 립슈타트 전역 이후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하고 스스로 공작이 됨.[28] 에리히 2세 즉위 이후 후작으로 승격.[29] 차남 필립의 사고로 황녀가 죽으면서 후작 작위를 반납.[30] 본래 은하연방 출신이라 작위 따윈 없었지만, 은하제국 건국 이후 공화파 탄압에 큰 공을 세워 백작 작위를 수여받음.[31] 포르겐 백작가의 자제이나, 4남이라서 백작 작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다.[32] 딸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가 황제가 되면서 황제의 아버지로서 위엄을 갖추기 위해 공작으로 승격.[33] 본래 평민이었으나 샤프하우젠 자작과 결혼하면서 자작부인 칭호를 얻음.[34] 후지사키 류 코믹스 한정. 원작에서는 제국기사였다.[35] 남작의 아내로서가 아닌 여성 남작이기 때문에 남작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