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코너스
1. 소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비에른 보리와 존 매켄로와 함께 주름 잡았던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1972년부터 1996년까지 24년의 오랜 세월 동안 활약하면서 오픈 시대 이후 109개의 우승컵[2] 과 1,535경기를 치러 1,256승을 거둔 위대한 선수이다. 위의 3가지 기록은 현재까지도 단독 1위이며 로저 페더러는 지미 코너스의 승리 기록을 경신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발언하기도 했다.[3][4]
2. 커리어
'''그랜드 슬램''' 우승 8회 / 준우승 7회
- 호주 오픈 우승 1회(1974) / 준우승 1회
- 프랑스 오픈 4강 4회
- 윔블던 우승 2회 (1974, 1982) / 준우승 4회
- US 오픈 우승 5회 공동 1위[5] (1974, 1976, 1978, 1982, 1983) / 준우승 2회 / 4강 진출 14회 단독 1위 / 본선 98승 단독 1위
1972년에 프로 데뷔 후 3년차인 1974년에 호주 오픈, 윔블던, US 오픈[9] 까지 휩쓸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지만, 아쉬운 것은 프로 단체 간의 계약 문제로 인해 프랑스 오픈 단식에 참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10] 이듬해인 1975년에도 불참을 결정한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대회에서 결승에 올랐으나 모두 패배하면서 쟁반만 3개 들기도 했지만, 이듬해 US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1977년까지 ATP 랭킹 1위를 160주 연속 차지했다. 이후 비에른 보리, 존 매켄로, 이반 렌들과 경쟁하면서 4개의 우승컵과 4개의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1975년 호주 오픈 준우승 이후 결승에 오른 건 윔블던과 US 오픈이었다. 미국 선수이다 보니 US 오픈과 관련한 특이한 기록으로는 1974년 우승 시에는 잔디, 1976년 우승 시에는 클레이, 그리고 1978년 이후로는 하드 코트에서 우승하여 US 오픈의 3개의 재질 모두 우승해본 기록을 갖고 있다. 이후 오랜 선수 생활에도 불구하고 39살의 나이에 US 오픈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는 노익장을 발휘하기도 했다. 1983년에는 이벤트 매치로 비에른 보리와 함께 서울에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투어 우승을 한 건 37살이었던 1989년이었다.
1974년 전성기를 펼치고 있을 무렵 역시 그 해 여자 단식에서 두 개의 그랜드 슬램을 우승한 크리스 에버트와 약혼했고, 그해 US 오픈 혼합 복식으로 같이 나서 준우승까지 하는 등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둘의 약혼은 얼마 가지 못해 깨졌고 이후 재결합-헤어짐을 몇 번 반복하다 정리되었다. 그런데 코너스는 2013년에 쓴 자서전에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지만 에버트가 일방적으로 낙태를 결정했다고 주장했고, 크리스 에버트는 가장 깊숙한 사생활을 끄집어낸 데다 허위 사실을 적었다고 분노 섞인 반응을 보였다.#
3. 여담
인터넷에서 떠도는 테니스 규칙을 바꾼 기술이라는 제목의 스샷에 주인공이다.# 그러나 사실 저러한 샷은 당시에도 반칙이었고, 실제로 스샷속의 샷은 반칙처리 되었다. 스샷 속에서 지미 코너스는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득점을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 그냥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1]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와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나뉘어진 일리노이 주의 도시. 세인트 루이스 항목 참조[2] 100개 이상의 타이틀을 따낸 선수는 지미 코너스와 로저 페더러 이 두 명이 전부이다.[3] 사실 그랜드 슬램 단식 20승이 목표였는데 나이가 든 후 힘들어질 거 같자 저걸로 말을 바꿨는데, 우승 20회를 먼저 달성했다(...) 2018년 2월 현재 1,139승이다.[4] 로저 페더러 항목 가면 페더러의 기록 옆에 참고로 지미 코너스의 이름이 무지 자주 나온다.[5] 로저 페더러, 피트 샘프러스와 공동[6]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의 전신에 해당한다.[7] 로저 페더러(237)에 이어 2위[8] 로저 페더러(302), 피트 샘프러스(286), 이반 렌들(270)에 이어 4위[9] 그 중 윔블던과 US 오픈은 결승 상대가 똑같이 켄 로즈웰이었다.[10] WTT(World Team Tenis)가 주관하는 경기를 뛰는 계약을 맺었는데 WTT에 반대하던 ATP와 프랑스 테니스 협회에서 지미 코너스의 프랑스 오픈 참가를 금지시켰다. 이때문에 지미 코너스는 ATP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했으나, 1975년 윔블던에서 당시 ATP의 회장이었던 아서 애쉬에게 결승에서 패하자 갑작스럽게 소송을 취하하면서 ATP와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