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복기
1. 개요
[image]
1917년 11월 17일~2000년 (향년 82~83세). 7대 대선 후보.
1950년대 육군대위로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에 참가했다. 이 때 몇달동안 수염을 자르지 못했는데, 토벌전이 끝나고 나서도 기념으로 카이저(당시엔 카이젤) 수염은 남겨두었고, 이것이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기호 6번으로 출마했던 카이저 콧수염을 기른 '''진복기''' 정의당[1] 후보는 전쟁을 통해 북진통일을 완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을 발굴해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122,914표(1%)를 득표해 전체 3위(!)에 올랐다.[2]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되면서 다시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했지만 신군부 일당이 집권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상습 대선 출마자로 몰려 1980년대에 3김씨와 함께 정치규제대상이 되기도 했다. 본인은 1980년대 언론에서 "나는 한번밖에 출마 안했는데 상습출마자가 되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직선제 개현 이후 이후에도 기독성민당 등을 창당해 지속적으로 정치에 도전하기 시작하여 1987년, 1992년, 1997년 등의 대선 등에도 모두 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실제 출마로 이어지지는 않아 영원한 대선 후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실은 이당시 후보 공탁금(1987년 1억원)이 없었기 때문인듯 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 서류를 가지고 왔다가 마감후 되돌아가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고은 시인이 진복기 씨를 소재로 시를 쓰기도 했다.
2. 선거 이력
[1]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의 정의당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다.[2] 이 선거는 박정희, 김대중 2명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었으며, 3선 개헌, 지역감정,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유명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허경영 후보가 득표한 96,756표보다는 많았으니 나름 선방한 셈이다.[A] A B 성북구 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