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린드버그 주니어 유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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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개
3. 범인?
3.1. 반론
4. 여담


1. 개요


1932년 찰스 린드버그의 생후 20개월 된 아들인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1930년 6월 22일생)가 유괴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다.[1]

2. 전개


1932년 3월 1일 유모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들어오자 창문이 열려 있고 사다리 하나가 창문에 걸쳐진 채로 아이만 사라진 것. 부유한 명문가의 딸이자 아내인 앤 모로 린드버그[2]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이가 유괴되자 전세계가 뒤집혔다. 당시 린드버그는 레전드급 인물이라서[3] 미국에서도 너도 나도 린드버그의 아기를 찾겠다고 나섰다. 유괴범은 처음에는 편지로[4] 5만 달러를 요구했으며 나중에는 몸값은 10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린드버그는 조용히 거절하고 암흑가 인물과 접촉하는 등[5] 망신을 샀고 콘돈 박사[6]와 협력하여 수사를 했다. 어느 날 협박장이 날아와서 그에게 큰 돈을 요구했고, 돈을 주고 싶으면 신문광고에 실으라는 대담한 범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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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장 사진.
결국 범인의 요구대로 당시 거액인 5만 달러를 아내랑 린드버그와 단 둘이서 복면을 쓴 범인에게 돈을 건네주었지만 아들은 결국 린드버그 집 주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7]
당연히 린드버그와 미국은 뒤집어졌고 다행히 지폐일련번호는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2년후인 1934년, 어느 은행에서 이 일련번호의 지폐가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왔다. 다행스럽게도 은행에서 이 지폐를 사용한 남자를 수상히 여겨 차량번호를 기록해놔서 찾을 수 있었다.

3.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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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으로 잡힌 하우프트만)
범인은 독일출신의 목수[8]인 브루노 리하르트 하우프트만(Bruno Richard Hauptmann/1899~1936)이였고[9] 콘돈 박사가 들은 범인 목소리와 일치했으며 린드버그가 범인에게 준 지폐일련번호와 일치하는 돈다발이 발견되었다. 하우프트만은 이 돈이 자기에게는 독일로 이주한 이시도어 피슈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맡겼으며 지금은 죽었다고 말했다.[10] 그는 재판에서도 이 증언을 반복하는데 이 말도 안되는 증언은 배심원들의 괘씸죄를 사기에 충분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시도어 피슈 자체는 가공인물이 아닌 실존인물이며, 하우프트만이 증언한 대로 독일에서 사망한 것은 맞았다. 또한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여권을 신청한 날이 기묘하게도 린드버그 주니어의 시신이 발견된 1932년 5월 12일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의 의문점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슈의 동생은 피슈에게 하우프트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을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하우프트만은 위의 피슈가 돈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주장 이외에도 피슈가 자신에게 이 돈을 맡겼지만, 피슈가 자신에게 수천 달러의 빚을 졌기 때문에 이 돈을 사용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자폭했다. 또한 피슈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많았는데, 분명 피슈가 여권을 신청한 것은 1932년 5월 12일이 맞지만, 독일로 출국한 것은 여권을 신청하고 1년 7개월 후인 1933년 12월이었다. 상식적으로도 범죄 도피를 위해 여권을 신청한 거라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11].
하우프트만의 아내는 남편이 무죄라고 1994년 95세로 죽을때까지 주장했지만 결국 하우프트만은 자백을 안 해도 결정적인 증거가 충분해서 사형당했다. 하우프트만은 죽는 순간까지도 독일어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사실 증거 일부는 검찰에서도 조작했었다고 했지만 범행에 쓰인 사다리는 목수가 아니면 만들 수 없었는데 조잡하긴해도 충분히 사다리로써 기능이 작동했다.
훗날 재감정했을 때 사다리는 범인이 근무하던 목재소의 목재[12]와 일치하고 필적도 일치했다고 한다. 린드버그가 장난으로 아기를 숨겼는데 그만 죽자 난처해서 자작극을 했다는 음모론이 떠돌지만 증거가 너무 뚜렷하다. 하지만 음모론이란게 원체 생명력이 강해서 아직까지도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과 루스벨트 행정부에 대해 악의적인 음모론을 주장하고 퍼뜨리던 사람이 죽어서까지 자식의 죽음에 관한 음모론에 시달린다는게 아이러니하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이 소개될 적에, 이 음모론이 정설인 것처럼 소개되기도 했다.

3.1. 반론


하우프트만의 경우 목재의 크기가 홈에 딱 맞는 우연성과, 이후 변호사의 배심제 하에서 이런 우연성을 배심원들에게 반박하기에 어려운 분위기라 생각한 나머지 변론에서의 당황 내지 무너진듯한 모습까지 겹쳐 이후 유죄선고를 받았다. 한편 주지사 호프만의 경우 그의 무죄를 인정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로인해 38년 공직에서 배제되었다. 마르크베네케 저 『살인본능』에서 인용.
이러한 우연성이라 해도 약간의 석연치 않는 가능성이(무죄로 볼 수도 있는) 존재하고 있었고, 이 점을 무시한 것에 대해서 '살인본능'의 저자 마르크베네케는 자신의 직업 태도와 맞지 않는 점과 그 가능성의 개연성을 해설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해당 서적에는 린드버그 범인설도 있으며 모든 가능성의 부정 후에야 남는 방법의 유죄 채택 방식의 관철 주장이다.

4. 여담


이렇게 사건은 끝났지만 여러 수준낮은 기자들의 졸렬한 취재로 아내인 앤 모로우 린드버그(1906~2001)와 둘째 아들인 존(1932~ )까지 충격을 받은 것[13]에 분노한 린드버그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카렐-린드버그 펌프를 만들고 몇년 뒤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90년대에 KBS2에서 일요특선 외화로 더빙방영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위에 상술한 아내 앤과 아들 존이 탄 차량을 막고 기레기들이 사진을 찍어서 놀란 존이 엉엉 우는 모습이 신문 1면에 실리자 린드버그는 그 신문을 구겨 내던지면서 "이 망할 기자놈들!"이라고 분노한다. 결국 인터뷰 자리에 나온 린드버그는 단단히 화를 내면서 내 가족을 더 슬프게 하는 건 빌어먹을 신문기자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영화에선 린드버그가 해외로 이민가자 미국인들이 미국이 영웅을 스스로 떠나게했다고 안타까워하는 게 나온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집필하였다. 이 소설에서는 유괴범이 빼앗은 돈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부자 행세를 하고 살지만 아이의 유가족들이 결국 유괴범을 처단하여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

[1] 범행이 정말 대담한 게 아기가 집안에 있었음에도 어른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납치됐다는 점이다. 유명인들이 자기 자녀를 언론에 가급적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집안의 경비경호가 아무리 삼엄해도 유괴범은 어떻게든 침입할 수 있기 때문. 마이클 잭슨 또한 생전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스카프나 베일로 가리는 이유를 말할 때 린드버그를 언급하곤 했다.[2] 찰스가 완전히 상류층으로 진입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 그녀는 나중에 린드버그와 같이 비행기로 대서양도 횡단했다.[3] 린드버그가 도착한 날 미국 주식거래소는 상장을 중단했고, 심지어 인기가 절정을 달릴 때는 '''린드버그의 모친'''이 미용실에 간다는 이유로 밖에 나오자 경찰들이 교통 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일화도 있다.[4] 여러 차례 유괴범으로부터 온 편지는 good을 gut로 적는 등 외국인의 소행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5] 당시 경찰들이 하도 암흑가 쪽을 뒤지니까 빡친 암흑가 쪽 사람들이 먼저 수사에 협조를 제공했다. 심지어 당시 알카트라즈에서 수감 중이던 '''알 카포네'''마저 수사를 도와주겠다고 제의를 했으나 당시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그의 제공은 묵살당했다.[6]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던 동네 약사로 직접 신문에 광고를 보내 유괴범에게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으면 자신을 거치라고 했고, 실제로 유괴범은 콘돈 박사와 접촉했다.[7] 일단 공식적인 사인은 두개골 골절이나, 발견될 당시 시신의 부패가 너무 심해서 범인이 처음부터 죽인 건지 납치 과정에서 실수로 사망하게 한 건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8] 그가 살던 브롱크스는 당시 흑인들과 독일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9] 협박장에도 독일식 영어가 쓰였다고한다. 위에 달린 주석에 있는 good을 gut로 쓴게 그 중 하나다.[10] 혹은 독일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는 기록도 있다.[11] 다만 여권을 받는 즉시 출국하면 경찰이 덜미를 잡을 것이라는 우려로 일단 잠적해 정황을 살피다 사건이 잠잠해진 틈을 탔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12] 워싱턴 행정부 소속의 나무 전문가 아르투르 쾰러가 에드가 후버에게 법정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제재소에서는 긴 각목을 다듬는 데 칼날이 8개 장착된 회전 대패를 사용합니다. 이 대패는 1분에 대략 4000번 회전하며, 32개의 절단면을 남기는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그러므로 이 나무는 가문비나무이며 사우스캐롤라이나 혹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로써 그 나무를 생산했음직한 공장이 4만(당시 미국 제재소의 수)에서 1598개로 줄어듭니다. 공장주들에게 문의한 결과 25개의 공장만이 넓은 쪽 8날, 각쪽 6날 장착 대패를 사용합니다. (후략)" 이런 식으로 검사한 결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돈 앤드 컴퍼니라는 곳에서 사다리가 생산되었으며 이는 '''브롱크스'''의 럼버 앤드 밀워크스 컴퍼니로 판매된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13] 어느 정도냐면 아이를 태우고 차를 몰고가던 아내를 다른 차로 교통을 방해한 다음 기레기들이 몰려들어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고는 그걸 대문짝처럼 신문 1면으로 실으며 "린드버그 부인, 슬픔을 잊고자 한다~"라는 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을 본 린드버그는 신문을 찢으면서 인터뷰고 뭐고 모조리 거부하며 미국을 떠난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