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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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품 소장가인 '체스터 장'[1] 박사와 '완다 장'씨 부부가 한국 정부에 기증한 '천보총'으로 추정되는 '희귀 소총'의 실물 모습이다.[2] 출처
1. 설명
2. 설계에 대한 추측
2.1. 성벽 거치식 - 총통 개념
2.2. 개인 화기 - 저격총 개념
2.3. 구한말 의병 - 뇌관식 행장총(일반 조총)의 애칭
2.4. 장조총 - 그밖의 개조형 화승총
3. 총평
4. 매체에서의 등장


1. 설명



조선 중기에 자체적으로 개발된 개량 조총이다. 성벽에 거치하여 운영하거나 개인화기로서 사용하며, 중세 말기에 등장한 전장식 소총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명칭은 사거리가 1,000보에 달한다는 감탄사로서 붙인 이름인데, 조총과 마찬가지로 과장이 있다. 다만 설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며, 조총으로 보느냐 총통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사거리에 대한 평가도 갈린다.
제작자는 조선 숙종 시대의 군기시[3]에서 일하던 박영준. 등장 연대는 1680~1700년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시범적으로 설치해서 운용하다가, 이후에 영조 시기에 이르러서 신형 장총에 천보총이란 이름을 갖다 붙여서 조금 양산되었다고 한다. 천보총을 소개하는 서적이나 인터넷 사이트, 위키 등지엔 비거리가 최대 900보, 살상 거리는 500보 정도라고 적혀있지만 이는 와전된 것에 가깝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살상 거리가 900m에 달한다지만, 현대 소총의 살상 거리를 보아도 이는 과장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이 "천보"는 총의 살상 거리를 뜻하는 말이 아닌 "살상 범위가 넓다" 정도의 뜻을 가진 접두어인 것이다.
초기형 천보총은 성벽에 설치하는 거치형, 신형 천보총은 장조총의 개조형으로서 개인 화기였다. 실제 운용이 이루어진 장소는 서북지방이었다.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유물이 없어서[4], 현재는 몇 가지 추측이 존재한다. 개념을 이해하자면, 조선시대에 저격총의 개념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던 무기체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설계에 대한 추측



2.1. 성벽 거치식 - 총통 개념


흔히 Wall Gun이라 불리는 대형 전장식 화승총. 야전에서는 2인 1조로 사수가 동료 병사의 어깨, 혹은 받침대에 거치하여 쏜다.영국의 월건을 예시로 보자#
유럽열강, 인도, 중국[5]을 가리지 않고 화승총을 운용했던 국가라면 써먹었던 무기이고, 크기가 크기인지라 소총 기준으로 굉장한 비거리가 나와서 저격에 써먹기도 좋다. 조선후기에 조선영토를 침공한 미국인들의 기록에도 조선군이 이를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조선에서도 이러한 개념의 무기를 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되긴 하는데, 이게 곧 천보총이라고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천보총 외에도 일반 조총보다 대형 규격으로 짐작되는 총기들도 꽤 있다. 다만 천 보를 실제 비거리로 봤을 때, 당시 조선 기술로 그 정도 성능을 내는 총을 운용하려면 이 방식이 제일 적합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러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2.2. 개인 화기 - 저격총 개념


영조 시대에 양산된 신형 천보총은 수어사[6] 윤필은이 만든 것이다. 초기형 천보총은 무겁고 거대하여 불편하지만, 약 30여 년 후에 윤필은이 만든 신형 천보총은 이전과는 달리 하나의 쇠막대기처럼 가볍고 편리하다는 언급이 있다. 즉, 천보총은 숙종 시대의 대형 조총과 영조 시대에 양산된 장총[7], 두 가지 버전이 있는 셈이다.
이러한 1인 운용식 개념을 따르자면, 천보총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제자일(Jezail)"[8]과 매우 흡사한 무기로 생각된다. 제자일의 경우 사거리가 200~300m나 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비거리를 자랑하는 실질적인 저격총으로서, 파수튠 족은 이걸로 만들어서 산악지대에 숨어서 영국군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참고로 이 총은 추리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의 화자인 존 왓슨 박사를 의병 제대시킨 놈이기도 하다.
제자일은 인접한 티베트-인도 지역까지 전파되어서 사용되었다. 천보총의 사거리나 용도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천보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무기는 아니며, 비슷한 점 외에도 차이점이 많다.
다만 새로운 천보총이 이전 버전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했던 걸로 보인다. 신미양요에 참전한 미국 장교가 집에 보낸 서신을 보면 조선군의 포 중에서 어떤 것은 동료 병사의 어깨에 거치해서 쏘는 것도 있는데, 전투 중 몇 발의 총탄이 미국 군함에 날아들어 부상자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2인 1조로 운용되었다고 추측되는 기존 버전 역시 살아남아 별도로 운용되었던 것이다. 실제 이 당시 노획된 장신의 조총이 나중에 유물로 공개되기도 했다.

2.3. 구한말 의병 - 뇌관식 행장총(일반 조총)의 애칭


하지만 신형 천보총의 경우에도 많은 수가 양산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실질적으로 전해지는 유물은 없다. 구한말 의병들이 천보총으로 게릴라를 펼치며 저항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대부분이 유실되거나 반출되면서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유물은 없다.
덧붙여서, 구한말의 의병들이 사용한 화승총은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구형 화승총(행장총)[9]뇌관식으로 개조하고, 신형 총탄을 사용하여 비거리를 늘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링크 즉, 의병들이 사용한 무기는 중세 조선군에서 개발했던 천보총이 아니다.
한마디로, 초기에는 거치형 대형 조총을 가리키는 이름이 신형 장조총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의병들이 개조한 구식 화승총에게로 옮겨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이런 용어의 혼란 자체는 흔한 현상이다. 현재에도 조선 중기에 애용했던 장총(장조총)이란 단어를 소총의 민간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구한말의 의병들이 자신들이 개조한 화승총에다 천보총이란 개념을 빌려와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뇌관식으로 개조한 천보총 유물이 있다! 거의 사람 키만 한 장총으로, 지금은 "일본 조총"이라는 잘못된 레이블이 붙어 있다. 재미교포가 미국에서 입수해서 2005년에 기증한 유물이라고 한다. 다만 이게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물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2.4. 장조총 - 그밖의 개조형 화승총


천보총 이외에는 장조총이라는 무기도 있었다. 이름에서 유추되듯이 화승총의 총신을 길게 늘린 것으로, 조선중기에 사용한 화승총으로서 종종 기록이 발견된다. 현대에도 장총이라는 명칭이 소총(라이플)의 단어로서 민간에서 혼용될 정도로, 천보총과 함께 조선군이 화승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총신의 개량이나 다양한 화승총의 혼용을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3. 총평


조선군에서 사용하던 천보총에 대한 기록은 1871년에 어영청에서 1기가 남아있던 것이 마지막이다. 아마도 운용상의 까다로움이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사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는 18세기 조선에서 개발된 장조총인지 천보총인지 모를 기증품이 있다. 문서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사진인데, 보면 알겠지만 몹시 길다.
또한 조선총독부에서 의도적으로 천보총 등의 유물을 녹여 다른 무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日帝, 조선 유물 1610점 녹여 무기 만들었다
덤으로, 천보총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무기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데, 이는 시대가 지날 때마다 천보총이란 용어를 재발굴해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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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별곡에서는 전장식 소총에 가까운 신형 천보총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쪽은 장총이랑 별로 구분이 안 되는 형상이다. 실제로도 최근 매체에서는 천보총과 장총을 같은 개념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초기 천보총이 거치형 화기였던 개념을 생략하고, 초기형 조총에서 바로 천보총=장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식으로 간략화하여, 두 가지 무기를 동일화하는 식이다.[10]
미니어쳐 게임Warhammer스케이븐이 사용하는 워프록 제자일은 2인 1조로 운용하는 거치형 무기라는 점에서, 숙종 시대의 박영준이 개발한 초기형 천보총의 크기나 운용법이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웹툰 귀도호가록에서는 장용영에서 탈영한 사수 '장일량'이 천보총을 무기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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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에서도 등장하며 안길강이 연기한 해승이라는 캐릭터가 사용한다. 한성별곡과는 달리 미국의 기록에 남아있는 미군에 피해를 입힌 조선군의 징겔포(Wall-gun)를 천보총으로 해석하여 고증한 것으로 보이는데, 거치식 형태로 드러나며 야전에서는 2인 1조로 사용하고, 성벽에서는 성벽에 거치해서 사용한다. 거치식 형태인 만큼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하며 긴 총열 덕분에 장거리 사격도 가능하다. 다만 전주성에서 홍계훈(윤서현)의 경군을 공격하던 중 백이현(윤시윤)의 저격으로 천보총이 망실당한다.

[1] 재미교포로 민영휘의 증손자다.[2] 장 씨 부부가 기증한 이 '천보총' 추정 '희귀 소총'은 1700년대 제작된 화승식 장총으로 조선 왕실근위병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아직도 왕실 문양이 뚜렷이 남아있다고 한다. 재질은 강철과 나무로 이루어졌으며 길이는 160cm 정도이다.[3] 현대로 따지면 조병창쯤 되는 국영 시설.[4] 엄밀히 말하면 유물은 조금 있긴 있다. 문제는 어느 게 천보총이고, 어느 게 장조총인지 현재로서는 구분이 안 간다는 게 문제. 단순히 총신 길이가 좀 긴 장조총은 더 이전부터 있었다.[5] 이쪽은 청나라 시기 유럽 열강과 전쟁할 때도 심심치 않게 사용했으며 흔히 징겔포로 불렸다. 신미양요 때 미국 측 기록에서도 조선이 보유한 대형 조총을 징겔포라고 불렀다. 유럽의 화력에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작살나던 중국산 화기 중에선 그나마 꾸준히 열강 군대에게 부상자를 만드는 전과를 올렸던 물건이다.[6]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한성을 방위하는 수어청의 사령관.[7] 장조총. 조총의 조선판 개조 버전 중 하나. 천보총보다 이전에 개발되었으며, 이 둘은 별개의 무기체계로서 확실하게 언급된다. 당연히 장총은 1인이 운용하는 개인화기였다. 참고로, 장총은 조선 중기부터 상당량이 양산되어서 보급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장총은 한국에서 소총을 지칭할 때 흔히 사용할 정도로 널리 퍼진 개념이다.[8] 아프간의 파슈툰 족이 영국군의 브라운 베스를 노획해서 개조한 소총이다.[9] 보병용 조총. 임진왜란에서 사용된 그거 맞다.[10] 등장인물들의 업적을 띄워주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쓰는 경우가 많다. 주로 영조, 정조. 당연하지만 이들 이전에도 조선의 조총이나 화포는 지속적으로 개량되어 왔다. 본 항목에서 천보총과 함께 여러 번 언급된 장총이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