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C-123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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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2년 6월 1일 오후 2시 49분,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전교육단 교관 5명과 공수기본 250기 교육생 44명, 공군 제5672부대 장병 4명이 탑승한 C-123 수송기가 짙은 안개로 인해 방향을 잃고 비행하다 청계산#s-1 매봉 인근에 추락한 사고. '''탑승자 53명 전원 사망.'''
이들의 유해는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31, 32번 묘역에 안치되었다.
2. 상세
3주간의 지상훈련을 마친 특전교육단 장병들은 공수낙하훈련 임무를 위해 해당 수송기에 탑승하였는데, 이륙 직후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인해 방향을 잃었고, 원래 항로에서 벗어난 뒤 청계산 산자락에 그대로 충돌했다. 충돌한 지점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청계산#s-1 매봉이며, 충돌지점은 해발 450~500m사이라고 한다.[2]
당시 윤성민 국방부장관은 "국방책임자로서 순직한 장병 가족과 국민 여러분에게 깊이 사죄한다." 하고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고, 사후처리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1982년 6월 2일 중앙일보 기사 그러나 사망자에게 보상이 있었다는 기록은 눈을 씻고 봐도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국립묘지에 묻어줬다고 제주 추락사고에 비해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없었다.
1970~1980년대 공군의 주력 수송기였던 C-123은 이 사건 이전에도 제주 C-123 추락사고 등을 일으켰고[3] , 1994년 12월 퇴역 때까지 노후화와 고장이 심각하여 수많은 정비사들을 고생시키고, 당시 많은 육/공군 장병들을 공포에 떨게 한 기종으로 악명이 높았다.
3. 충혼비
1982년 11월 6일, 특전교육단과 6.1유족회는 사고장소인 청계산 매봉 정상 아래(위치)에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데,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8년 즈음이다.[4]忠魂의 숨소리
그대들이 흘린 뜨거운 피와 忠魂의 얼로
祖國은 살아 크게 숨 쉬나니
그대들의 靈魂은 祖國의 山河에서
永遠히 살아 꽃피리라
그대들은 祖國을 사랑하고
또한 祖國은 그대들을 사랑하노니
거룩한 英靈들이여
祖國의 품속에 고이 잠드소서
- 1982년 6월 1일 오후 2시 49분 -
웹과천시지에서는 충혼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청계산 충혼비 근처에 설치된 안내판은 사고의 원인을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은 3주간의 지상 훈련을 마치고 1982년 6월 1일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는데[5] , 과천시지의 충혼비 설명에 따르면 '''"...전두환 대통령 경호를 위하여 이동하던 중..."'''이라고 해서 확인이 필요하다. 다만 유족들의 반응과 당시 국방부의 대처를 보면 정부에서 사고를 은폐하려 한 것 같지는 않고, 과천시지 작성자가 1982년 2월 5일에 일어난 제주 C-123 추락사고와 혼동했던 것 같다.전체적인 비의 형태는 4단의 화강암 받침을 만들고 그 윗면 가운데 '충혼비'라고 대리석 명패를 붙였다. 그 윗부분에 회색대리석 받침을 다시 두고 마지막으로 검정색 대리석에 글을 새겼다. 그 옆에는 다섯 매의 화강암을 기둥처럼 만들고 맨 윗부분에 군장을 하고 행군하는 모습의 군인을 부조하였으며 그 위에 베레모를 쓴 군인의 토르소를 얹어 마무리하였다. 이 부분의 정면에는 세로로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전반적인 조각은 특정 인물을 상징하기보다는 일반적인 군인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웹과천시지의 원 링크
또한, 청계산 충혼비 근처에 있는 안내판에는 소재지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청계산#s-1 중턱(성남시 서북방 7km)"라고 되어있는데, 청계산#s-1이 과천시에 걸쳐 있기는 하지만 중앙동이었던 적은 없다. 현재 행정구역상 충혼비의 주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이므로 이 문서에서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표기하였다.
4. 희생자 명단(총 53명)[6]
4.1. 공군(4명)
대령 이동천
소령 최규덕
상사 장형수
중사 장현준
4.2. 특전교육단 교관(5명)
대위 이복노
대위 박윤서
중사 강동인
중사 고명수
상병 이규학
4.3. 공수 250기 교육생(44명)
일병 강재훈
일병 김규성
일병 김근식
일병 김동권
일병 김봉현
일병 김상덕
일병 김상수
일병 김성훈
일병 김영균
일병 김영현
일병 김윤일
일병 김정수
일병 김정희
일병 김종기
일병 김종엽
일병 김중권
일병 김형식
일병 김흥문
일병 남기호
일병 박상홍
일병 박선기
일병 박선우
일병 박원섭
일병 박철규
일병 송철헌
일병 위성수
일병 이기연
일병 이상권
일병 이상문
일병 이상봉
일병 이상학
일병 이준재
일병 이진우
일병 이형주
일병 이희일
일병 임찬모
일병 장권옥
일병 정구완
일병 정치환
일병 조정현
일병 최규창
일병 하상돈
일병 홍병욱
일병 홍영달
5. 관련문서
[1]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93196 참조[2]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VRr&fldid=5nva&datanum=2443&q=c-123&_referer=V7kfJwkeLEGMZxGlgqZEmXIYt.EfhRkA 참조[3] 게다가 1991년에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공군 수송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5명이 전원 사망한 적이 있었는데, 공식 언론자료에서는 사고기종을 밝히지 않았지만 사고기종이 C-123이라고 공공연히 알려졌다.[4] 충혼비 하단의 추진경과 참조[5] https://boramirang.tistory.com/1475 참조[6]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9319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