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67년 4월 8일
'''유형'''
기체 결함, 관제센터 과실
'''발생 위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청구동
'''기종'''
Curtiss C-46 Commando
'''소속'''
대한민국 공군
'''기체 등록번호'''
-
'''출발지'''
대한민국 김포국제공항
'''경유지'''
대한민국 여의도공항
'''도착지'''
대한민국 대구국제공항
<color=#373a3c> '''탑승인원'''
24명
<color=#373a3c> '''사망자'''
'''탑승자 전원 및'''
'''지상 주민 56명'''
'''총 80명 사망'''
<color=#373a3c> '''생존자'''
'''없음'''
1. 개요
2. 상세
3. 기타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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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7년 4월 8일, 공군의 C-46 수송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해 여의도 공항에 일시 착륙한 뒤, 그 곳에서 일부 사람을 태우고 이륙해 대구로 가려다가 고도를 잡지 못하고 청구동 산 중턱에 추락한 사건. 수송기가 산 중턱의 판자촌을 덮쳐 수송기에 타고 있던 24명 및 주민 56명이 사망하고, 15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대형 참사였다.(가옥 21동 전파)[1]

2. 상세


이하 내용은 1967년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장지량 중장의 회고록을 인용한 것.
이 사고는 김포공항 관제탑의 실수로 빚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원래 관제탑은 공군이 맡아 왔으나, 사고가 나기 3년 전 부터는 교통부 항공국에 이관되어 관할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 관제탑의 통신 지휘가 이상하게 엇갈리고 말았던 것.
대구를 출발해 김포로 향하던 민간 항공기가 김포비행장에 내리기 위해 서울 동남방 무선통신지휘소 상공으로 다가오고, 공군 수송기 C-46 역시 여의도 공항을 이륙해 무선통신지휘소 상공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무선통신지휘소가 있는 곳은 착륙과 이륙을 위해 신호를 받는 교차 지점이었고, 이 곳에서 관제탑의 통신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륙과 착륙 비행기가 동시에 있을 경우 먼저 착륙 비행기를 상공에서 선회하게 한 뒤, 이륙 비행기가 이륙을 마치고 무선통신지휘소를 빠져 나갈 때 착륙 허가를 내주는 것이 기본 수칙이었다.
하지만 관제탑은 뭔가 착각을 했던지 이륙하려는 비행기(공군 C-46기)에게 홀딩 명령(상공 선회)을 지시하고, 대구에서 오는 민간 항공기에게 먼저 착륙 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정 반대의 지시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륙중인 항공기에게 상공을 선회하라는 것은 잘못된 지시였다. 이륙하는 도중에 공중에서 선회하라는 지시이기 때문.
C-46 수송기 조종사는 관제탑의 사인이 옳지 않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통신 지휘를 그대로 받는 것이 기본) 이륙하던 중 낮은 고도에서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동쪽의 불암산, 남쪽의 남한산성, 북쪽의 도봉산과 청와대가 있는 인왕산도 들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 날은 구름이 잔뜩 낀 악천후였다.
결국 조종사는 낮은 고도에서 구름속을 헤메다 방향을 잃고 끝내 청구동 산비탈(현 신당 삼성아파트 근처)에 기체를 들이받고 추락하고 말았다.
이 사고에서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연이 하나 있는데, C-46 수송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해 여의도 공항에 있는 탑승객을 싣기 위해 잠깐 여의도 비행장에 기착했다. 이 곳에서 몇 명의 탑승객을 싣고 C-46이 이륙하려던 때 공군 장교 A가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여의도 비행장으로 달려 들어왔다. A장교는 애초 동료 장교 B와 함께 기차로 고향인 대구를 다녀올 예정으로 김포 공군기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제 2 한강교에 이르렀을 때, 수송기가 여의도 비행장에 기착하는 것이 이들의 눈에 보였던 것. A는 B에게 저 수송기는 대구로 가는 비행기이니 저것을 타고 가자고 말했으나 B는 서울역에 볼 일도 있고 하여 그대로 가겠다고 했고, A는 혼자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여의도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A가 막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는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조종사의 눈에 택시에서 내려 쏜살같이 달려오는 사람을 보니 조종사 동기생이었던 것, 그래서 C-46 조종사는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A가 타기를 기다렸다가 잠시 후 이륙했다.
그대로 기차를 타고 갔으면 될 것을 A는 결국 모험하듯 아슬아슬하게 달려가 수송기를 타고 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3. 기타


제주도청계산 그리고 경상남도 밀양시에 추락하여 111명의 국군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외에도 1994년 퇴역때까지 잦은 고장을 일으켜 정비사들을 고생시키고 특전사와 공군 장병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C-123의 아성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고기종이었던 C-46 또한 당시 노후화와 잦은 추락으로 악명이 높았던 기종이었다. 이 사고 이전에도 1961년 10월에 경기도 오산시, 1963년 3월에는 부천시에서 추락하였다. 사고 기체는 1941년에 제작되었으며, 당시에도 이미 부속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전해진다.

4. 같이 보기


[1] 만약 이 사고가 근래에 일어났다면 특별재난지역 선포도 가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