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태(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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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농구선수이자 현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코치. 대학 시절에는 유망주로서의 평가가 매우 좋았으나, 프로로 들어오고 난 이후에는 부상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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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승태, 이정석, 진상원
양정고 시절에는 무릎이 파열되는 잦은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나, 고교 농구대회에서 용산고등학교를 꺾는 이변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승태의 플레이를 본 최희암 감독이 가능성을 확인하자 그 부름으로 [8] 연세대로 진학해 방성윤, 이정석 등과 함께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등을 선보이며 MVP에도 발탁되었다. 그 후 얼리 엔트리로 KBL 드래프트에 신청해 프로선수로서의 입단을 결심하게 된다.
3.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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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순위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2003-04 시즌 최하위권 순위에 든 모비스와 우승을 노리는 KCC가 외국인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과정[9] 에서 양 팀의 1라운드 지명권도 맞교환되어 최승태는 전주 KCC에서 뛰게 되었다.[10] 식스맨으로 어느 정도 잠재력을 보였으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그럭저럭 보여주지 못하면서 2006-07시즌을 앞두고 2:2 트레이드로[11] 인천 전자랜드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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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드 포지션의 포화로 트레이드를 고려하고 있던 전자랜드가 발전성이 높은 선수를 영입하고 싶다는 이유로 이적료와 2007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형식으로 창원 LG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지만, 여기서도 왼쪽 무릎에 십자인대가 부러지면서 선수 명단에서 말소되어 이후 1년 동안은 재활 치료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래도 꾸준하게 재활치료를 한 덕분에 2008-09시즌 후반쯤에 들어서 다시 최희암 감독의 부름으로 전자랜드에서 뛰다가, 이상수와 1:1 트레이드로 대구 오리온스로 이적해 당시 연세대 시절 은사였던 김남기 감독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또 한번 무릎 부상에 시달려 가능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현역을 은퇴하게 되었다.
은퇴한 지 1년이 지난 2010년에는 KBL 2군 리그 드래프트에 신청해 1라운드 3순위로 서울 SK 나이츠에 지명되어 현역에 복귀하였으나 고작 1년만 뛰고 다시 은퇴하였다.
4.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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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은퇴 후,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가 미국 연수로 앨라배마 대학교 버밍햄 캠퍼스에서 운동생리학을 전공하였으며 대학 과정을 거쳐 대학원에 합격한 직후, GA(Graduate Assistant) 자격을 얻고 남자 농구부 팀의 코치를 맡았다.
2015-16시즌부터 전주 KCC 이지스 코치를 맡게 되면서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한 추승균을 보좌하게 되었다. 그러던 2018년 12월 2일, 2015년에 발생한 승부조작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전창진 전 감독이 3년만에 농구계에 복귀해 감독 대행직에서 정식으로 감독이 된 스테이시 오그먼의 운영을 돕기 위해 KBL 경험이 풍부한 코치가 필요하다며 수석코치로 영입했다고 밝혔는데, 그 과정에서 재정위원회 개최 하루를 앞두고 갑작스런 경질 기사가 나오면서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2020년 4월 29일 현역 시절 KCC에서 함께 뛰었던 조성원 감독의 부름을 받아 창원 LG 세이커스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5. 기타
- 당시 창원 LG에서 뛰었던 2006-07시즌, 중국에서 전지 훈련을 마친 뒤 김승민과 코치를 맡았던 이지승의 이름인 "승"자만 붙인 3인방들의 화제가 되어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12][13] [창원 LG 전훈현장] ③ 챔피언은 ‘3승’의 이름으로
6. 관련 문서
[1] 지명된 후에 무스타파 호프와 R.F. 바셋의 교환 트레이드 과정에서 양동근과 지명권이 맞교환되어 전주 KCC 이지스에서 뛰었다.[2] 04-05 시즌 전주 KCC 시절[3] 05-06 시즌 전주 KCC 시절[4] 창원 LG 시절[5] 인천 전자랜드 시절[6] 대구 오리온스 시절[7] 서울 SK 시절[8] 성균관대가 최승태를 놓친 대신 데려 간 정현준은 박성근 감독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농구를 그만두었다.[9] KCC get: R.F. 바셋, 2004년 신인드래프트 7순위 지명권 / 모비스 get: 무스타파 호프, 2004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10] 반대로 울산 모비스에게 뛰게 된 1순위 선수가 양동근이다.[11] 최승태, 정훈종 ↔ 박상률, 한정훈[12] 최승태의 이름 가운데 "승"자는 기사에도 보았듯이 정승 승(丞)이 맞으며 돕거나 나아가다는 뜻으로도 쓰고 있다. 반면 전주 KCC 이지스와 대구 오리온스 시절에는 이을 승(承)으로 되어있는데, 사실상 잘못 표기된 한자이다.[13] 당시 LG 세이커스 관계자들에 따르면 셋의 "승"을 합하면 반드시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고 했으며 선수들이 힘을 합쳐 서로 도와주면(丞) 경기에 이길(勝) 수 있고, 승리가 모아져 챔피언에 오른다(昇)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