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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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캠퍼스
4. 학문
5. 스포츠
6. 동문
6.1. 정관계
6.2. 경제계
6.3. 학계
6.4. 문화계
6.5. 스포츠
6.5.1. NFL
6.5.2. NBA
6.5.3. MLB
7. 기타


1. 개요


미국 앨라배마 주의 터스컬루사(Tuscaloosa)에 위치한 4년제 공립 연구대학.[1] 앨라배마 대학교 시스템의 플래그십 대학이다.[2]

2. 역사


1818년, 미 의회는 새로 형성된 앨라배마 지역권에 신학교육을 위한 군구 건설을 허용했다. 그러다가 앨라배마가 1819년 3월 20일, 연방 주로 가입하면서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무상토지에 새로운 군구가 추가된다. 이렇게 해서 1820년 12월 18일 주의회를 통해 앨라배마 주 대학이 신학대학교로 명명되어 재단 이사회가 설립된다. 이어서 1827년, 학교부지가 당시 주도였던 터스칼루사로 지정되면서 학교가 건립되고, 1831년 4월 18일 개교된다. 그러나 흑역사가 뒤따랐는데, 기강해이와 학생들의 비행은 개교 이후로 지속된 문제점이었다. 이에 학교 측은 금주 및 욕설금지같은 교칙으로 기강을 세우려고 했으나 고쳐지지 않았는데 심지어 총격전과 폭동들이 일어나는 것은 예삿일도 아닐 정도였다. 결국 이를 바로잡기 위해 당시 총장이었던 린든 갈랜드는 1860년 주의회의 승인을 받아 학교를 사관학교로 전환한다.
이러한 결과로 이 당시 수학했던 생도들은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남부동맹군의 장교로 복무하기 위해 입대하게 되는데 그 댓가로 1865년 4월 4일, 북부연방군이 동교를 점령한 뒤 교정을 불태워 없애버렸다. 아쉬운 점은 이게 장군이 북부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을 선언하기 닷새 전에 일어났었다는 점이었다. 이에 생도들은 무력저항으로 교정의 사수를 위해 애썼지만 남은 건물은 총장 관저, 고르가스 하우스, 리틀 라운드 하우스, 그리고 구관 전망대의 4개의 건물뿐이었다. 결국 학교는 1871년 재개교를 하고 1880년, 의회로부터 4만 에이커의 탄광촌과 250만 달러를 전쟁피해 배상조로 받았다. 이어 2년 후인 1892년, 여학생을 받아들여 남녀공학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남부를 휩쓸었던 흑백차별은 이 학교도 피할 수 없었는데, 1956년 어서린 루시(Autherine Lucy)가 흑인 최초로 이 학교에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입학, 흑백통합 학교로 이어질 듯 싶었으나 그녀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과격시위로 이어지면서 주정부는 그녀의 신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정학시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뒤인 1963년 6월 11일, 비비안 말론(Viovian Malone)과 제임스 후드(James Hood) 두 흑인 남녀학생들이 성공적으로 학교학생으로 등록함으로서 흑백통합을 이뤄낸다. 사실 이것 역시 당시 주지사였던 조지 월러스가 두 학생의 등록을 막기 위해 학교 건물 앞에 서서 거부권을 행사하려 했으나 당시 법무장관이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 장관이 니콜라스 카젠바흐 법무차관과 연방 대법관인 서굿 마셜을 파견함으로써 성사된 것이었다. 한편 이 중 남학생이었던 후드는 2개월 후 중퇴했으나 훗날 복학, 1997년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게 된다. 학교는 훗날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 세 흑인 학생들의 이름을 교정에 명명하는데 교내 강당인 포스터 강당(Foster Auditorium)앞의 광장은 말론-후드 광장(Malone-Hood Plaza)이라 불리게 되고, 사실상 최초의 흑인 학생이었던 어서린 루시의 이름은 광장에 신설한 시계탑에 붙이게 된다.

3.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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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위치한 터스컬루사시는 여느 앨라배마주 도시들처럼 시골풍경 뿐인 곳이지만, 앨라배마주의 초기 수도였기 때문에 꽤 유서가 깊은 도시이다. 이 때문에 상술한 대로 남북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전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중앙 도서관인 Gorgas Library 옆에 Little Round House라고 이 지역을 사수하던 남군이 북군에게 항복 문서에 조인한 헌장이 전시되어 있다. (...)
땅만 드럽게 넓은 여느 남부의 공립대학들처럼 캠퍼스가 무지하게 넓다. 때문에 캠퍼스 반대편에서 수업듣고 다음 수업있는 건물로 걸어가려면 지각하기가 일쑤. 대신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나 Crimson Ride라 불리는 캠퍼스 버스를 이용할 수가 있다. 그리고 건물도 엄청나게 많아서 학교 다니는 내내 이름도 모르고 가 볼 일도 없을 곳이 많다. 최근 돈도 잘 벌고 기부도 많이 받고 있어 계속해서 새 시설들이 늘고 있는데, 특히 여러 기숙사들과 공대쪽 거대한 건물군이 대표적이다. 캠퍼스 자체는 쿼드의 커다란 고목들과 네오클래식 디자인의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4. 학문


미국 621개의 4년제 공립대 중 36등을 차지하며 학과는 13개로 나뉘어져 각각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제공한다. 그중 학교의 전미 탑 50인 문과 계열이 두드러지는 학교로 사회계열과 인문계열이 모두 강세이다. 특히 이쪽은 대학원과 학부 간 연동 연구 프로그램이 아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중. 상대, 예대 등도 강세이며 특히 엔지니어링 쪽은 최근 시설 투자를 많이 하여 많이 올라오고 있는 상태이다. 이쪽도 문과 계열처럼 Co-Op 및 학부생들이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또한 UA 로스쿨은 전미 랭킹 20위 내에 들어가는 매우 우수한 수준이다. 앨라배마 주에 있는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및 협력업체에 앨라배마 로스쿨 졸업자들이 많이 가서 활약 중이기도 하며 로펌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메인인 터스컬루사 캠퍼스 외에도 UAB(버밍햄)[3]와 UAH(헌츠빌)[4]도 상당히 훌륭한 학교이다. 버밍햄은 의대와 치대로 유명한 학교고, 헌츠빌은 도시 자체가 공대에 특화된 전형적인 공돌이 학교이다.

5.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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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 '''
'''Alabama Crimson Tide '''
앨라배마 대학의 스포츠팀. 크림슨 타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컨퍼런스는 SEC 소속이다. 재정 좋은 플래그십 대학답게 남녀 여러 종목을 운영 중이지만 그 중 특히 투자가 많은 것은 미식축구팀. 아예 학교가 미식축구팀 때문에 유명할 정도로 명문 강팀이며 전미에서 가장 돈 잘버는 미식축구팀 중 하나이기도 해서 학교 재정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 참조.

6. 동문



6.1. 정관계


휴고 블랙: 미국 연방법원 판사[5]
조지 월러스: 전 앨라배마주 주지사[6]
로버트 벤틀리: 現 앨라배마주 주지사
리차드 셸비: 미국 상원의원[7]
마이클 비커스: 전 미국 국방부 차관

6.2. 경제계


매릴린 휴슨: 록히드 마틴 CEO
지미 웨일스: 위키피디아 공동창업자
토마스 레이너: 라이프웨이 크리스쳔 리소스 창업주
데이비드 브로너: 앨라배마 연금 시스템 기획장
윈스턴 블런트: 블런트 인터내셔널 회장; 미국 우정청 장관

6.3. 학계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창시자
루이스 로젠: 핵물리학자
헤더 윌러너: 화학연구자. 바닷물에서 제트 연료 합성법 개발
네이선 제이콥슨: 수학자
티모시 리어리: 심리학자 겸 철학자, 작가

6.4. 문화계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작가
윈스턴 그룸: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원작 작가
하웰 레인스: 전 뉴욕 타임즈 편집장; 퓰리처 상 수상
데브라 마셜: WWE 선수
소네콰 마틴-그린: 여배우로 한국에선 드라마 워킹 데드의 사샤 역으로 유명.
마이클 에머슨: 해롤드 핀치 역 배우
리스 데이비스: ESPN 애널리스트
[8]
아나스타샤 무뇨스: 미국의 성우

6.5. 스포츠


NFL, NBA, MLB에 주로 진출했다.

6.5.1. NFL


폴 브라이언트
조 네이머스
바트 스타
훌리오 존스

6.5.2. NBA


라트렐 스프리웰
제럴드 왈라스
로버트 오리

6.5.3. MLB


데이빗 로버트슨

7. 기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가 대학 미식축구팀에 입단해서 다닌 학교가 이곳이다. 그를 발탁해서 지시를 내리던 감독은 폴 브라이언트. 상술한 조지 월러스와 존 F. 케네디가 흑인 학생의 입학 문제를 놓고 주정부 대 연방정부의 권한 대립구도를 세워 군대까지 동원됐던 사건도 영화 속에서 묘사된다.

[1] 애틀랜타에서 차로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소도시이다.[2] 다른 2개 대학은 버밍햄 캠퍼스(약칭 UAB), 헌츠빌 캠퍼스(약칭 UAH)[3] University of Alabama at Birmingham. 설립초기에는 터스컬루사에 있는 본교의 Extension Center였지만 새로 설립된 의대가 터스컬루사에서 버밍햄으로 옮겨오면서 1960년대에 들어 규모가 커지면서 독립적인 운영을 하는 캠퍼스화되었다. 버밍햄이 앨라배마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지만 미국 남동부의 몇 안되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의대와 병원의 입지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의대를 중심으로 종합대학화되었다. UAB의 의대와 대학병원은 남동부의 최강자 중에 하나이다.[4] The University of Alabama in Huntsville. The Ohio State University처럼 학교의 정식명칙에 'The'를 고집하는 학교인데, 1950년에 UAB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터스컬루사에 있는 본교의 extension으로 설립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독일에 많이 뒤쳐지던 미국의 로켓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시점이된 베르너 폰 브라운의 미국 투항 사건이 일어났을 때 폰 브라운 박사의 로켓개발을 헌츠빌에서 하게되어 UAH에 로켓연구소가 설립됐다. 이후에 UAH는 이공계를 중심으로 종합대학이 되면서 발전해왔다. 근데 말이 종합대학이지 워낙 이공계가 강세라서 대학의 낭만을 느끼기는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5] FDR쪽 사람으로 뉴딜 정책에 많은 관여를 했었으며 상술한 서굿 마셜이 참여한 유색 인종 공립 학교 입학 관련 소송의 판결을 맡기도 했었던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6] 인종 분리정책 지지자로 앨라배마 흑인 학생 입학 문제로 JFK가 직접 대립했던 인물.[7] 동교뿐만 아니라 오번 대학교 등 주내 학교 곳곳에 기부를 많이하고 있다.[8] University of Alabama가 아닌 Alabama State University 중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