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기
1. 소개
대한민국의 농구인.
별명은 닥터 K.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의 별명이 닥터 K인데 한국농구에는 김남기였다.
하지만, 10년대 오리온스 시절 이후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흑역사가 된 또 다른 비극의 농구인.
2. 커리어
2.1. 선수 시절
신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1학년이던 1979년에 늑막염에 걸려 농구를 쉬었다가 복귀했고,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는 등 연대 시절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드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연세대의 주전 가드로 활약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키 때문에 실업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지는 못했다. 기업은행에 입단했지만, 오래 뛰지 못하고 1989년에 은퇴했다.
2.2. 지도자/해설자 시절
2.2.1. 코치 시절
그 뒤 1994년에 기업은행의 코치로 농구계에 컴백하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가 되었지만, 올림픽 도중 음주 파동에 휘말리면서 최인선 당시 대표팀 감독 등과 함께 3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뒤 기업은행 농구 팀이 나산그룹에 인수되어 프로화될 때 황유하 감독과 함께 코치진으로 합류했지만, 1997-1998 시즌 도중 황유하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7년 12월 11일 코치직에서 해임되었다.
2.2.2. 감독 시절
KBS에서 잠시 농구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모교인 연세대학교 농구부 코치로 1999년에 부임했고, 2002년부터 최희암의 후임으로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에 임명되었다. 감독 재임 당시 방성윤과 이정석 같은 선수들을 바탕으로 아마농구 무대를 평정하면서 대학 무대를 휩쓸었다. 이외 양희종과 김태술 및 이광재가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사임했다. 연세대학교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그냥 쉬고 싶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후임은 자신의 신일고 후배이자 신일고의 또다른 후배이지만 고려대 출신의 김진 감독이 챙겼던 박건연.
한동안 해설위원 및 중국 농구 무대에서 총감독으로 있다가 2008년 농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 선발 당시 응모해서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농구 세계 예선전에서 제법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 주면서 기대를 가지게 했지만, 연봉 자체가 적었던 상황에서 결국 오리온스의 제안을 받고 김유택 코치와 함께 이동하게 된다. 당시 아내의 암 수술 때문에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9-10 시즌 및 2010-11 시즌에 딱히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6강은 커녕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바람에 오히려 오리온스 팬들에게 "'''돌남기'''"로 까였고, 여기에 김승현 문제 및 오리온스의 막장까지 경영이 겹치면서 결국 3년 계약이 중도에 2년 축소 및 1년 연봉 삭감계약 등 끝이없는 풍파 끝에 2010-2011 시즌에도 최하위와 함께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쓸쓸하게 물러났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프로 감독이 되었지만 이충희와 김상식의 시련사에 함께 깔렸다.
이후 몇 개월 뒤 오리온스 심용섭 단장의 간섭은 극에 달했다. 신임 감독 선임과 함께 일명 대구런 사태와 고양 도주를 택했다. 결국 대구 팬들은 김진 감독과 김병철 선수로 대표된 대구 시절 전성기의 마지막을 4년전에 확인하면서 대구 팬들에게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추일승 감독 부임 이후 김남기 감독은 이미 오리온스가 대구를 떠나 경기 북부권(소위 일산이지만 구역이라 잘못된 지리용어이고 고양시를 의미)의 연고이전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나오고 말았다.
농구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추일승 감독은 부임 전후로 대구에서 선수단의 선수개인훈련 및 팀훈련에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전문가로서 심용섭 단장을 설득한 끝에 심용섭은 추일승의 꼬임(?)에 넘어간 나머지 '''대구광역시를 버리고 고양시로 야반도주했다'''. [1]
2.2.3. 방송해설위원 및 명지대 시절
연세대 감독 퇴임 이후 SBS Sports에서 방송해설을 하게 된다.
오리온스 감독 사퇴 이후 KBS N 스포츠에서 다시 농구 해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풍부한 농구이론을 잘 설명했다.
방송해설 스타일은 주로 가드들의 경기운영 위주로 설명했다. 오리온스 감독 재임 시절에도 패턴 중 헤드는 항상 단골이었다.
그러다가 2014년 3월 1일부터 박상관 감독의 후임으로 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았다.
2.3. 여담
오리온스 감독 시절 경기를 보면 10점차 이상으로 진 경기가 15경기가 안 된다. 전반까지 크게 앞서다 후반에 가면 알아서 자멸했기 때문에 후반은 항상 똥줄 농구였다. 베테랑이 없어서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김병철의 노쇠화보다 김승현만 있었다면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이면계약 등 선수관리를 제대로 못한 오리온스와 심용섭 단장의 프런트가 원망스러워지는 대목.
이후 7년뒤인 조동현의 부산 kt 소닉붐도 이렇게 몰락했다. 김영환과 허훈을 제외하면 구실이 없었는데 오리온스보다 더 못했다. 자세한 건 조동현과 부산 kt 소닉붐 참고.
2.4. 몰락
2016년 말 2년전 선수의 어머니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명지대학교 감독직에서 불명예로 물러났다.
그 동안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된 이후 2018년에 조성원 감독이 부임하기까지 명지대 농구부는 어렵게 꾸려졌다.
2.5. 구설수
자신이 명지대 감독으로 있던 명지대 농구부원의 어머니를 강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당했으며 1심 재판에서 벌금 5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이에 피해자는 피해자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는데, 법원에서 기각 당했다.
2014년 9월 용인시 처인구 소재 노래바에서 열린 학부모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나온 사건이었다.
이해 10월 26일 김 감독을 불구속기소했다.
2018년 02월, 제자의 어머니를 성추행한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형 선고를 제기한 항소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3. 관련 문서
[1] 추일승 감독은 코리아텐더 맥스텐-KTF 매직윙스 감독 시절에도 당시 팀이 매각을 준비하는 바람에 여수에서 부산으로 연고이전을 통해 팀의 체질개선을 넘어 재건에도 성공했다. 당시 분위기는 해체문제로 인해 구단 매각이 첫번째였다. 오리온스도 그런 상황으로 보고 문제의 심용섭 단장을 영리하게 이용하면서 대구체육관으로는 시설과 연습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심용섭 단장을 압박했다. 연고이전 추진에 성공하면서 오리온은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대구 팬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지만 고양 팬들에게는 감격이자 오리온 자체의 팬들은 처음에는 비판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되었다. 사실 대구는 부산보다 체육관 시설이 낙후되었는데 대구시의 책임도 있다. 이후 심용섭 단장은 추일승 감독의 인내 속에 퇴진했고 오리온의 암흑기는 끝나게 되었다. 참고로, 농구가 수도권 위주로 흘러간 한국농구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보이면서 좋은 평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한국프로농구/문제점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