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시 오그먼
1. 소개
'''The Plastic Man''' '''Mr.Average'''
미국 NBA에서 활약했던 前 농구 선수였으며 前 전주 KCC 이지스 감독이었다. 현재는 새크라멘토 킹스의 어시스턴트 코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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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LV에서 래리 존슨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그 중 3년동안 대학농구 올해의 최우수 수비상을 3번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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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NBA 드래프트에서 9순위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지명된 오그먼은 프랜차이즈 스타 스몰 포워드 도미니크 윌킨스, 센터 케빈 윌리스에 이은 3옵션이자 주전 슈팅 가드로 출장하며 10점대 중반의 득점을 기록했다. 호크스에서 5시즌을 뛰고 난 후, 1996년 오프 시즌 당시 FA였던 센터 디켐베 무톰보를 잡기 위한 샐러리의 여유를 만들기 위해 그랜트 롱과 함께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되었다가, 시즌 중에 다시 포틀랜드에 트레이드 되어 자리를 잡았지만 주전 슈팅가드인 덩크왕 아이재이아 라이더에 밀려 식스 맨으로만 뛰었다. 2001년 이후에는 샬럿 호네츠[2] 에서 데이비드 웨슬리의 백업으로 출장하였고 2004시즌 올랜도 매직에서 두 시즌을 더 뛰고 2005~2006시즌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참고로 1988 서울 올림픽에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경력이 있다.
3. 지도자 경력
선수에서 은퇴한 뒤에는 지도자 길에 들어서면서 덴버 너게츠에서 코치를 시작으로 UNLV 코치를 거쳐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밀워키 벅스 코치로 활동하며 2016-2017 시즌 42승 40패 승률 51.2% 지구 2위, 2017-2018 시즌 44승 38패 승률 53.7% 지구 3위의 성적을 이끌어 냈다. 또한 당시 모교였던 UNLV에서 활약했을 때 착용했던 등번호 3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다.
2018-2019 시즌을 앞두고 전주 KCC 이지스가 버논 해밀턴과 함께 코치로 영입했다. 그러던 11월 15일에는 추승균 감독의 성적부진으로 사퇴하면서 감독 대행이 되었다가[3] 호성적 덕에 12월 7일, 3라운드 시작을 앞두고 제이 험프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정식 외국인 감독으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전창진 수석코치 선임 논란과 선임 무산 이후 기술고문 선임 등으로 바지감독 얘기가 나왔거나 아예 오그먼으로 남은 시즌을 버틴 후 전창진 복귀라는 말 때문에 논란이 끝나지 않고 있었는데, 자칫하다가는 오그먼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자 KCC 구단 측에서 전태풍을 플레잉코치로 선임시키면서 추승균과는 다르게 오그먼은 주전 뿐 아니라 후보선수들을 적재적소에 투입시키며 단숨에 상승세로 이끌어 내며 오그먼을 '''KBL의 힐만''', '''농구계의 검은 힐만''' 등이라고 칭송했다.[4] 만약 이러한 상태가 계속 지속되며 KCC가 우승을 차지했더라면 오그먼도 KBO 리그[5] , K리그[6] 이어 농구에서도 외국인 감독 전성시대를 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7] 실제로 오그먼의 리더십을 극찬하는 기사가 떴다.
그런데 2019년 1월 말, 학체원정 징크스를 깨지 못한 걸 시작으로 경상권 원정(창원 - 부산 - 울산)에서 4연패를 당하며 5위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제대로 각성했고, 3월 1일 학체 원정 12연패[8] 징크스까지 깨며 최종 순위를 4위로 마쳤고, 2시즌 만에 플옵 진출에 성공하였다. 여기에 KBL 최초 외국인 감독의 PO 진출 타이틀은 덤.
3월 23일에 진행된 고양 오리온과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94-87로 승리하면서 KBL 최초로 PO 경기에서 승리한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6강에서는 오리온을 상대로 3승 1패로 승리했지만, 이후 모비스와의 4강에서 3차전 승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패배해 오그먼의 18-19 시즌은 4강에서 멈췄다.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추승균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KCC에서 오래 있을 것으로 예상한 외국인 감독이었지만, 시즌 종료 이후 전창진의 새 감독 선임과 강양택 코치가 들어옴에 따라 쓸쓸히 팀을 떠나게 되어 KCC 역대 감독들 중 최단 기간 감독을 기록했다.[9]
다만, 실질적으로는 바지 감독이 아니었다는 비판 여론도 상당했다. 물론 이 비판 여론은 KCC 구단을 향한 비판 여론이었지 오그먼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가운데 시즌 중 전창진 고문이 경기 중 벤치 뒤에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직관하다가 작전타임 때 몇몇 선수들을 불러서 귓속말로 말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힌 적이 있고, 이걸 본 일부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감독이 전창진이 아니냐면서 오그먼 감독이 안쓰러웠다는 의견들이 많았다.[10]
2019-20시즌부터 새크라멘토 킹스의 어시스턴트 코치에 취임하면서 1년만에 다시 NBA무대로 돌아왔다. #
4. 관련 문서
[1] 현역시절에는 Mr.Averag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당시에는 리그 평균수준의 신체조건을 가졌기 때문이다.[2] 2002~2003시즌부터 뉴올리언스로 연고 이전.[3] 외국인 감독이 대행을 맡은 것은 오그먼이 첫 사례였다.[4] 2018 시즌 SK 와이번스를 우승으로 이끌어냈던 힐만은 공격력은 좋았지만 수비와 불펜이 불안했던 팀을 수비 시프트로 메우고, 홈런을 더욱 발전시키는 홈런 공장으로 바꾸며,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오그먼도 마찬가지로 에밋고 아니면 이정현, 하승진, 송교창 등 주전 선수들만 앞세웠던 추승균하고는 대조적으로 기존의 주전 선수들인 이정현, 브라운, 티그, 하승진 뿐만 아니라 신명호, 송교창, 송창용, 정희재, 박세진 등 후보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이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후보선수들은 오그먼 감독의 지휘 아래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정희재는 수비와 투지 뿐 아니라 승부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 3점 위닝샷을 꽂아넣는 등 자신감을 회복하며 이제는 KCC의 없어서는 안 될 강력한 시프트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5] 제리 로이스터, 트레이 힐만. 이 둘다 KBO 리그 역사에 한획을 긋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들이다.[6] 2000년대에는 K리그서도 세뇰 귀네슈, 세르지오 파리아스 등 여러 외국인 감독들의 전성시대가 있었다가 10년대 들어서 중국 슈퍼 리그의 급성장, 아시아 전체의 축구 투자와 한편으로는 축구계 비용절감과 저비용 고효율등의 이유로 외국인 감독들의 설자리가 없어졌다가 2010년대 후반부터 국대의 파울루 벤투, 인천 욘 안데르센의 동화축구, 대구 안드레 루이스 아우베스 산투스의 FA컵 우승 등의 성과로 다시 외국인 감독들이 들어오고 있다.[7] 2005-06 시즌 전자랜드 1호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이 험프리스가 있었지만, 국내 선수들과의 소통 부족과 성적 부진이 겹쳐 '''3승 17패'''의 초라한 성적을 내고 전격 경질된 바가 있다.[8] 원정팀의 특정 구장 최다 연패 역대 공동 2위.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하면 14연패다.[9] 참고로 KCC는 프로 전환 후 감독 교체가 가장 적었다. 1997년 원년부터 2005년까지 신선우 -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허재(시즌 중 자진사퇴) -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추승균(시즌 중 경질) -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스테이시 오그먼 -2019년부터 전창진.[10] 이 때문인지 잘 나가고 있는데 학연빨로 인한 갑작스러운 감독교체에(정몽익 구단주와 최형길 단장, 전창진 감독 셋 다 용산고등학교 출신.) KCC 팬들도 쉴드치지 못하고 있고, KCC 기사만 뜨면 전창진을 욕하는 댓글이 자주 올라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