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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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제국의 제6대 카간이자, 원나라의 제2대 황제. 묘호는 성종(成宗), 시호는 흠명광효황제(欽明光孝皇帝). 휘는 테무르(鐵穆耳).
쿠빌라이 칸의 차남인 황태자 친킴의 3남. 쿠빌라이 칸의 막내딸이자 친킴의 이복 여동생인 제국대장공주가 고려 충선왕의 어머니이므로, 충렬왕은 원 성종의 고모부, 충선왕은 원 성종의 사촌 동생이다.
2. 생애
아버지 친킴이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 쿠빌라이에 의해 황태손으로 책봉되었다가 황제로 즉위했다. 쿠빌라이 사후 아리크부카의 아들 요부르크와 몽케의 손자 울루스부카가 우구데이 칸국을 이탈해서 카이두 칸(우구데이 칸국의 3대 칸)의 세력이 약화가 되긴 했으나 지속적으로 위협해왔다.
특히 1301년, 카이두가 아리크부카의 차남 멜리크테무르와 차가타이 칸국의 두아 칸과 함께 대규모 원정을 감행해 위기를 맞았으나 성종의 조카 카이산(훗날의 무종)의 군대가 막았고, 결국 카이두는 이 때 부상을 당해 죽고 말았다.
그리고 1306년엔 차가타이 칸국의 두아 칸과 함께 우구데이 칸국을 정복하였다. 카이두의 난 제압 외에는 그럭저럭 태평한 치세를 누렸지만 그가 후계자 없이 죽자 원 황실은 후계자를 둘러싼 분쟁에 휩싸였고, 이후 원나라는 불과 25년 동안 9명의 황제가 연달아 즉위하는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된다.
3. 기타
제국대장공주의 원나라 내에서의 공주 책봉 문제를 가지고 충렬왕, 원성공주(元城公主)와 다툼이 있었다. 결혼 당시만 하더라도 제국대장공주는 그냥 공주 또는 크툴룩켈미쉬로만 표기될 뿐, 고려에서 충렬왕이 독자적으로 공주의 거처 원성전(元城殿)에서 따온 원성공주로 책봉하기 전까지 정식 봉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주와 같은 예우를 받기는 했다.[1] 성종은 이를 꺼렸으나 결국 세월이 지나 안평공주(安平公主)로 책봉했고, 황제가 바뀌면서 쿠빌라이 칸의 딸이라는 이유로 제국대장공주로 높여지게 된다.
친킴이 카안의 자리에 올랐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쿠빌라이 칸이 장수하면서 먼저 사망하였고, 이로 인하여 쿠빌라이의 후계자는 손자 테무르가 되어야 했다. 당시 몽골의 카안 계승은 우리의 적장자 승계와 비슷하게 모계의 위치도 중요하게 여겼는데, 시어머니가 같은 부족 출신의 며느리에게 자신이 관리하는 재산을 계승시키는 것이었다.
칭기즈 칸의 며느리들은 옹기라트(콩기라트 또는 곤기라트)부 출신이 아니었기에 보르테 우진 카툰의 재산을 계승받지 못하였는데, 쿠빌라이 칸의 생모 소르칵타니 베키가 옹기라트부 출신 여자들을 며느리로 들여서 쿠빌라이의 황후 차브이가 재산을 계승받았고, 차브이가 사망하자 이를 같은 옹기라트부 출신인 친킴의 황태자비 코코진이 물려받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종의 황후 불루간은 옹기라트부 출신이 아닌 위구르계 바야우트부였기 때문에 이를 물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자 몽골 제국의 지배자라는 대칸(카안)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해졌다. 당장에 친킴의 아들 중 셋째인 테무르였기에 친형 카말라도 있었고(둘째형은 요절), 친조카들도, 숙부들도 있어서 여기저기에 황위 계승권자들이 넘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고려라는 1개의 국가를 가진 고종사촌 형제인 충선왕의 존재'''는 또 다른 위협이었다. 막말로 충선왕이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임을 내세워 황위 계승권을 주장한다면 쿠릴타이에서 후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고려 왕이라는 출신 때문에 충선왕 본인이 칸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충선왕은 쿠릴타이에 참석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원 무종 카이산과 원 인종 아유르바르바다의 즉위를 돕는다. 따라서 성종은 고모인 제국대장공주의 위치를 격하시켜 충선왕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협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제국대장공주의 모계 혈통이 옹기라트부 출신이 아니었기에, 칭기스 칸의 자녀들 중에서 보르테 우진의 소생 자녀들에게 주던 특별한 우위권이 없음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 황실의 부마로서 입지 강화를 꾀하던 충렬왕과 원나라 내에서 입지를 인정받고자 하는 원성공주는 몇 번이고 대도로까지 찾아가 끈질기게 요청했고, 결국 안평공주에 책봉되는 것으로 충렬왕과 원성공주가 이 다툼에서 승리하게 된다. 실제로 원성공주는 안평공주로 책봉된 이후 남편 및 아들인 태자(충선왕)와 함께 원나라로 갔을 때 쿠빌라이 칸의 딸이라는 이유로 곁에 아무도 앉지 않을 정도로 서열이 높아지게 된다.
4. 가계
- 정자정의황후(貞慈靜懿皇后) 콩기라트씨 - 성종 즉위 후에 추존.
- 불루간 대카툰 백악오씨(伯岳吾氏) - 성종의 정궁 황후(재위 : 1295년 ~ 1307년)
- 홀첩니 황후(忽帖尼 皇后) 걸아길사씨(乞兒吉思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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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슈 태자(?~1306년)
- 창국대장공주(昌國大長公主) 익리해애(益里海涯)
- 조국공주(趙國公主) 애아실리(愛牙失里)
-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보납(普納)
5. 둘러보기
[1] 원래 몽골의 황금씨족은 칸의 딸일 경우 원칙적으로 몽골인하고만 혼인했지만 제국대장공주는 늦둥이 막내딸이면서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속국이자 타국에게 시집을 갔다. 고려 원종이 쿠빌라이 칸의 즉위 명분과 내전 승리를 도운 보답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제국대장공주가 보내진 것에는 이런 애매한 입지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