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무라 타카시

 


'''일본 중의원 (아이치 1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4대
카와무라 타카시'''

'''제45대'''
사토 유코
'''32-35대 나고야시 시장
(かわ(むら たかし
카와무라 타카시
'''
'''이름'''
카와무라 타카시 ((かわ(むら たかし)[1]
'''출생'''
1948년 11월 3일 (75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히가시구
'''학력'''
히토츠바시대학 상학부 졸업
'''가족'''
배우자, 슬하 1남
'''직업'''
정치인
'''현직'''
나고야시 시장
감세일본 대표
'''소속'''
감세일본[2]
'''경력'''
민사당 위원장 가스가 잇코 비서
카와무라 상사 전무
아이치현 제1구 중의원
나고야시 시장
1. 개요
2. 상세
3. 소속 정당


1. 개요


일본의 '''막장 정치인.''' 표준 표기법에 의하면 가와무라 다카시. 1948년 11월 3일생.

2. 상세


2017년 기준 현 나고야 시장이며, 나고야 토박이이다. 아이치현립 아사히가오카 고등학교를 거쳐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했으며, 1977년에 검사를 지향하면서 사법시험을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1970년대 후반에 민사당에 입당하여 가스카 잇코 위원장의 비서로 일하다가 민사당을 탈당하면서 제명되었다. 1983년에 처음 아이치현의회 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자민당에 입당하기까지도 했음에도 빈번하게 낙선하였고, 1992년에 자민당에서 탈당한 뒤에 운이 좀 풀렸는데 일본신당에 입당해서 1993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이후 신진당 소속과 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2009년까지 아이치현 제1구에서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였다. 2009년 나고야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때는 노다 요시히코와 함께 일본 민주당X맨이었지만 [3] 탈당해서 한동안 무소속으로 지내다 새로 지역 군소정당인 '''감세일본'''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4] 그러나 군소정당치고는 정계에 영향력은 있는 편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리 막장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2012년 2월 20일, 난징 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로 인해 나고야-난징 관계 뿐만 아니라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5] 그런데 이시하라 신타로는이 발언을 옹호해 주었다. 반성의 기미는 없었는지 여전히 2017년에도 난징 대학살에 대해 없었던 일 아니냐는 얘기까지 했다.#
서브컬쳐는 엄청나게 좋아하는거 같다. 카와무라가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와 솔선수범해서 코스프레를 할 정도이다. 2017년판 나고야 시장과 아이치현 지사의 코스프레. 코스프레가 매년 진화하는 카와무라 시장. 일본측 기사.
나고야벤을 가끔 구사하는데 막상 일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비즈니스용 티가 팍팍 난다' , '시장은 나고야 토박이인데도 사투리가 어색하다' 등의 좋지 않은 평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고이케 유리코 혹은 마쓰이 이치로와 비슷한 개혁보수 성향인지 고이케 유리코가 연 정치숙 '희망의 숙'이나 도의회 선거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케와 마쓰이와 합동으로 지지연설까지 해주었다. 이후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아이치현 선거구에서 유신회 후보를 지지했다.
2019년 8월에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평화의 소녀상' 등의 전시 중지라는 협박을 하여 중단되는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7? - ?
정계 입문

? - ?
제명

? - 1992
입당

1992 - 1994
창당

1994 - 1997
창당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창당

199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1998 - 2009
입당

2009 - 2010
시장 선거 출마로 인한 탈당
감세일본
2010 -
창당

[1] 원래는 河村隆之인데 발음은 그대로 두고 표기만 히라가나로 고쳤다.[2] 카와무라 타카시 본인이 만든 지역정당. 중의원 시절에는 민주당 소속이었다.[3] 다만 노다 요시히코가 무소속이 된 이유는, 당이 공중분해 되었기 때문이지, 카와무라 타카시처럼 자민당에 입당하거나 민주당계 정당을 탈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소위 민주당 내에서 튀는 의원이어서 개인플레이를 하던 카와무라와 달리 노다는 민주당내에서 중진 계파를 형성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점이 차이점.[4] 카와무라 타카시는 감세를 위해 나고야 시의회에 의견을 냈지만 시의회가 그것을 무시했다. 그러자 세운 게 감세일본(...). 주요 정책은 감세이나, 감세 빼고 나머진 보수 정당의 공약과 크게 다른 게 없다.[5] 난징 대학살에 대한 개인적 견해 차원을 떠나 외국인 정치가를 초청해놓고 민감한 주제를 꺼냈다는 것은, 외교적 결례 차원을 넘어서 아예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는 이야기다. 이 작자가 얼마나 오만하고 무책임한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