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
'''민선 제14-16대'''

'''민선 제17-19대'''

'''민선 제20대'''
간다 마사아키

'''오무라 히데아키'''

현직
'''일본 중의원 (아이치 13구)'''
'''제41대'''
시마 사토시

'''제42~44대
오무라 히데아키'''

'''제45대'''
오니시 겐스케
'''민선 제17~19대 아이치현지사
(おお(むら(ひで(あき
오무라 히데아키
'''
'''출생'''
1960년 3월 5일 (64세)
[image] 아이치현 헤키난시
'''국적'''
[image] 일본국
'''학력'''
아이치현립 니시오 고등학교 졸업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가족'''
배우자[1], 자녀 4명
'''직업'''
정치인
'''소속 정당'''
[2]
'''현직'''
아이치현지사
'''경력'''
농림수산성 공무원
아이치현 제13구 중의원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내각부대신 정무관
내각부부대신
후생노동부대신
중의원 결산행정감시위원장
민선 제17~19대 아이치현지사
1. 개요
2. 생애
2.1. 아이치현지사
3. 소속 정당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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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아이치현지사.

2. 생애


아이치현 헤키난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조시 출신으로 목수였으며, 어머니는 농업에 종사하셨다. 2세 때 개에게 얼굴을 물려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상처를 꿰메면서 얼굴 전체가 바느질 투성이가 됐기 때문에 ‘프랑켄’이라고 불리며 놀림을 받았고, 중학생 때도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이 당시 왕따를 당했던 오무라는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태어난 헤키난시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이치현립 니시오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고등학교 동창생의 말에 따르면 오무라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도쿄대학에 진학해 관료가 된 다음에 정치인이 되는 것’을 진로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의 진로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무라는 자신의 목표였던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며, 대학 졸업 후 농림수산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이치현 제13구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하나 신진당 후보에 밀려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고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되었다. 선거 첫 출마 당시 선거 출마를 반대하던 아내를 사흘 동안 울면서 설득했다고 한다(...). 이 당시 장인, 장모도 그의 출마를 반대했다고 하는데 설득에 성공한 것인지 상술한 것처럼 출마를 결정했다. 이후 제42, 43, 44회 총선거 때는 지역구인 아이치현 제13구에서 연속 당선되었다.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투표했으며, 이후 고이즈미가 총재로 당선되어 총리로 취임하자 경제산업대신 정무관을 역임했다. 이후 내각부대신 정무관, 내각부부대신, 후생노동부대신 등을 역임했다.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나 석패율 구제로 당선되어 생환했으며, 이후 중의원 결산행정감시위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9월 28일에 치러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1996년 당선 동기인 스가 요시히데·신도 요시타카·마츠모토 준 등과 함께 고노 다로를 총재 후보로 추천하였다.

2.1. 아이치현지사


중의원을 역임하던 오무라는 2011년 아이치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현지사 선거 첫 출마 당시 오무라의 소속 정당인 자민당은 현지사 선거에 그가 아닌 시게토쿠 가즈히코[3] 후보를 추천한 상황이어서 오무라에게 출마 포기를 요청했으나 오무라는 자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독자 출마를 감행했다. 출마 선언 후 평상시에는 자민당과 같은 후보를 추천하던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오무라를 추천했으며, 오무라에게 현지사 선거 출마를 요청한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 시장이 만든 지역 정당인 감세일본도 오무라를 추천하면서 본의 아니게 집안싸움이 되었다. 이에 자민당은 오무라의 탈당계를 수리하지 않고 그를 제명했으나[4] 선거 결과 오무라가 시게토쿠를 트리플 스코어에 가까운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오무라의 현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한 중의원 자리는 모치즈키 요시오가 승계받았다.
이후 2015년 현지사 선거에서도 오무라는 80%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이때는 자민당도 추천할 사람이 없었는지 오무라를 추천하면서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부터 생활의 당과 야마모토 타로와 친구들, 차세대당, 감세일본 등 좌우 관계없이 모든 정당들의 추천을 받았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희망의 당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일본 유신회마쓰이 이치로 오사카부지사와 연대했다. 그러나 중의원 선거에서 희망의 당이 폭망한 이후에는 희망의 당의 지원을 사실상 철회했다.
2019년 현지사 선거에서도 8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했다. 이때도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공명당, 자민당 아이치현 연합 등 대부분의 주요 정당들에게 추천을 받았다.
2019년 8월,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가 우익들에게 테러 협박을 받는 등 공격을 받자 안전을 고려해 소녀상 전시 중지를 결정했다. 이 당시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 시장으로부터 소녀상이 전시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해 항의를 받자 “공권력은 시민의 사상에 관여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전후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전시 내용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검열로 간주해도 반박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며 소녀상 전시 중단 요구는 위헌이라고 반박했다.# 또 카와무라 나고야 시장의 행동에 대해 “수장으로서의 행위와 발언은 개인으로서의 행위와 발언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며, 자신의 사상이나 신조를 그대로 구체적인 집무 집행과 그 요구에 직결시키는 것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비판했다.# 이후 트리엔날레 폐막을 보름 앞두고 소녀상 전시를 다시 재개시켰다. #
하지만 트리엔날레 당시의 소신 발언과 달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당시에는 코로나와 관련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가 혼쭐이 나면서 신뢰도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학교 휴교 연장을 좀처럼 결정하지 않아 현민들로부터 항의가 쇄도했다. 더욱이 일본 정부 전문가회의에서 “아이치현의 의료체제가 위태롭다”고 지적당하자 “무슨 소리냐” “매우 실례되는 발언”이라며 발끈하기까지 했다.
결국 아이치현은 감염자가 급증하고 말았다. 오무라 지사는 지난 9일 정부에게 “긴급사태 선언 대상에 아이치현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치현은 현재 독자적으로 긴급사태를 선포한 상황이다. SNS에서는 ‘#오무라 그냥 자!’라는 해시태그가 따라붙었다. 또한 늑장 대응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에 빗대어 ‘아이치현의 테워드로스’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아사히신문은 27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병원 수용이 곤란한 확진자나 응급건수 등 정보공개 검증이 전국에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히데아키 지사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구급환자를 거부한 것은 도쿄와 오사카의 의료 붕괴"라고 주장했다. 아사히는 히데아키 지사가 "아이치현은 확진자와 확진자 집단의 상황을 항상 정보공개하고 있다"며 "이같이 정보공개로 대응하는 것은 아이치현뿐"이라고 자화자찬했다고[5] 평가했다.#
8월에는 표현의 부자유전 지지 이유로 주민소환 운동 나온 상태이다.# 결국 주민소환 필요한 86만명을 한참 못 미친 43만명에 그쳐 무산되었다.# 오히려 서명운동 명단의 7, 8할이 허위기재라는 내부고발이 나와 서명운동단체 측이 몰렸다.# 게다가 위조 서명에 알바 동원하거나 주민소환운동 협력 구인이 연루되었다. 심지어 다른 현사람이 서명하는 증언이 있었다.# 고인 8000명이나 명단에 있었다.# 없어진 시정촌 주소 써있기도 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6 - 2011
정계 입문

2011 -
현지사 선거 출마로 탈당

4. 기타


  •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지사와 비교되는 점이 많다. 요시무라는 오무라와는 다르게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인 강경 우파지만, 코로나 사태 시에는 발빠른 대처로 큰 찬사를 받았다. 반면 오무라는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관대한 입장이지만, 코로나 사태 때는 "아이치현의 의료체계가 위험하다는 건 헛소리"라는 소리를 하고, 정보 공개는 아이치현만 한다고 자화자찬 하는 등 요시무라와 비교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코로나 사태 대처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도가 적기 때문에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오무라가 더 고평가 받을 수 있으나, 일본에서는 코로나 사태 대처로 요시무라가 더 고평가 받을 것이다.
  • 중의원 시절에도 외국인 지방 참정권에 찬성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온건 보수 성향으로 보인다. 또한 중의원 시절 일본이 ‘평화, 문화 국가’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상술한 아이치 트리엔날레 당시의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단순한 대답인 아닌 실제 본인의 신념인 듯하다.
  • 2008년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자 읽기와 국가 위치 맞히기 문제들을 풀었는데, 총 12개의 문제 중 9개를 맞혔다.출처 참고로 해당 프로그램에서 하라구치 가즈히로가 10개를 맞혀 가장 많이 맞쳤고, 나카야마 야스히데는 2개(...).
  •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시장과 애니 코스프레를 한 적이 있다.#
[1] 가나가와현 출신이라고 한다.[2] 중의원 시절에는 자유민주당 소속이었다.[3] 현재는 아이치현 제12구 중의원이다.[4] 이 당시 스가 요시히데, 고노 다로 등 일부 의원들이 오무라의 제명을 반대했다.[5] 이건 '''명백한 개소리'''다. 정보를 공개하는 현은 닷소 다쿠야이와테현도 있으며, 닷소 지사 스스로가 밝혔는데도 오무라는 망상에 빠져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