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

 

1. 개념
1.1. 설명
1.2. 작품 속 사례
2. 칵테일
2.1. 재료 및 제조법


1. 개념


κάθαρσις / Catharsis
비극에서 _''''독자 내면에 방치된 채 썩어가던 상처를 픽션의 비극을 통해 직면하고 비로소 하지 못했던 슬퍼함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_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이나 희열, 전율 정도로 생각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쾌감, 희열, 전율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 표현이다. 즉, 전율이라 말해야 할 상황에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그 표현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1]
따라서 '억압받던 주인공이 명백한 악에게 대항하여 통렬한 복수에 성공하는 '''사이다 상황''' 은 '''카타르시스와 관계가 없다''' .[2] 복수에 실패하고 망가져야 그때 비로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3] 그러나 이런 정확한 뜻을 알고 쓰는 사람이 굉장히 적어서 사실상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카타르시스가 아닌데 카타르시스로 적은 문서가 수두룩하다.
비단 위키뿐 아니라 TV 프로그램 등에서도 관련 전문가 패널이 아니고서는 마구잡이로 사용한다. 포탈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대부분 오용하고 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학/심리학 관련 학문의 교수직 내지 석박사학위 소지자이거나 논객 또는 논설위원 수준이 아니면 '카타르시스'란 단어의 뜻을 오남용하는 경우는 몹시 흔하다. 그러나 사용실태에 따라 바뀌는 맞춤법이나 표준어와 달리, 카타르시스는 엄연히 '''전문 학술용어''' 이므로 '''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뜻으로 사용한다고 ''' 해서 그것이 ''' 용인될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 굳이 오남용에 태클 걸 필요까지는 없으니 제대로 뜻을 아는 사람도 그냥 넘어가는 것일뿐.

1.1. 설명


이 황홀한 도취는 모든 개인이 다시 집단으로 돌아가는 경험에서 나온다. 개체들은 서로 가르던 선이 깨지고, 그들이 너나 없이 집단 속에 녹아 있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 오른다. 디오니소스적 황홀함이 바로 여기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비극의 음침한 그림자에도 이 황홀한 도취가 남아 있다. 비참하게 몰락하면서 주인공은 복잡하게 얽힌 운명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쓰라린 깨달음은 근원적인 존재와의 합일이 부활한다는 즐거운 예감이기도 하다. '''몰락하여 근원적 일자와 다시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개체화의 괴로움, 영원한 윤회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해탈에 이르게 된다. 쓰라린 파멸 뒤에 숨어 있는 이 무한한 희열의 세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비극을 바라보면서도, 그리스인들이 은밀하게 즐긴 건 바로 이 황홀한 기쁨이 아닐까?

<미학 오디세이1> 진중권, 105p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용어이다. 그는 디오니소스 제전 에서 비극을 관람할 때의 체험을 카타르시스의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체험의 본질은 인간을 한계까지 몰고 감으로써 오히려 그로부터 벗어나 환희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관찰했는데,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체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오히려 인간은 이성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초월을 체험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한 차원 더 고양된다.
니체의 경우, 비극에서 체험되는 숭고와 카타르시스를 곧 아폴론적으로 순화된 디오니소스라고 규정했다. 그에 의하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아폴론적 이성에 의해 억눌려진 충동을 가리킨다. 이는 억누르면 억눌려질수록 더욱 강한 폭발력을 지니게 되는데, 비극의 감상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하나의 처방인 셈이다. 따라서, 니체에게 비극은 극장이라는 아폴론적 형식을 통해 디오니소스적 폭발력이 뇌관을 제거함으로써 이를 안전한 곳으로 전환시킴을 의미했다[1].
다만, 최근에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다른 해석 또한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비극 간의 간격이 100년이나 벌어져있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 그리스 비극이 아테네가 가장 융성했던 델로스 제국시절에 흥했던 거라 적대 세력의 파멸을 보면서 공동체적 소속감을 고취시키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쪽 의견이다.

1.2. 작품 속 사례


어떠한 이야기이든 모든 등장인물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다 잘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예술에서 크고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그것들이 보다 부각되는 사례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2. 칵테일


[image]
칵테일 중 하나.
괜히 지어진 이름이 아닌 것처럼 상당히 독한 쪽에 속하는 칵테일이다.
맛은 아마렛또와 라임즙이 들어가 단맛과 신맛이 약간 나며 '''아주 독하다'''. 일단 바카디 151이 들어가 도수가 높은데다 아마렛또와 라임즙이 그리 많이 들어가지도 않기 때문에 무척 독하므로 주량이 약한 사람이 막 마시다간 확 갈 수 있으므로 조심하며 마시는게 좋다.

2.1. 재료 및 제조법


기법 - 빌드
  • 바카디 151 - 45ml(1과 1/2OZ)[4]
  • 아마렛또 - 15ml(1/2OZ)[5]
  • 라임 주스 - 15ml(1/2OZ)[6]
1. 잔은 일반적인 텀블러를 준비한다.
2. 얼음을 채운 잔에 순서대로 붓는다.
3. 휘저어서 완성한다.

참조
보통 3: 1: 1 비율로 넣지만 도수를 낮추려면 바카디를 좀 더 적게 넣으면 된다.

[1] A B 사회학자 빅터 터너도 리미널리티와 코뮤니타스 개념을 통해 카니발 축제가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2] 김효,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ㅡ비판적 고찰과 한국에서의 수용 문제ㅡ》, 한국연극예술치료학회 학술대회지, 3.0, 한국연극예술치료학회, 2012 참고. 사실 이밖에도 카타르시스의 정확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 학술지나 연구논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십년 어치로, 굉장히 많다. 다름 아닌 서양철학의 거두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론한 개념이라서...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오용하는 일반 독자들과 기자들, 연예인들이 이와 같은 문학/심리학 학술 정보에 관심이 없어서 모를뿐이지, 단어의 정확한 정의 자체는 인문대학 학부 신입생 교양수업에서도 접할 수 있다.[3] 단, 반드시 망가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에 실패하여 일이 틀어지는 비극적 상황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단지 통쾌한 복수라는 '사이다' 상황과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카타르시스는 애초에 사이다-고구마 구분과 그다지 관계없는 개념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고구마 상황에 좀 더 가깝다.[4] 30ml가 1OZ일 경우.[5] 30ml가 1OZ일 경우.[6] 30ml가 1OZ일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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