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다 타케유키

 

1. 개요
2. 작품 목록


1. 개요


神田武幸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1943년 8월 11일 후쿠시마후쿠시마시 출생 ~ 1996년 7월 27일 사망. (향년 52세)
무시 프로덕션 출신으로, 선라이즈 주요 작품들의 콘티와 연출을 거쳐 감독으로서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다. 한때 토미노 요시유키,타카하시 료스케와 함께 선라이즈 3대장으로 군림하였던 명 연출가이자 감독.
타카하시 료스케와는 무시 프로덕션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훗날 선라이즈의 전신이 되는 소에이샤에서 일하며 주로 나가하마 다다오 감독과 함께 작업하다가 나가하마 사후에는 타카하시 료스케와 함께 태양의 엄니 다그람, 기갑전기 드라고나,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등의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타카하시 료스케의 인터뷰에 따르면 칸다 타케유키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영상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어서 자신이 담당하는 전쟁물에 이를 반영시키는 경향이 많았으며, 실제로 근현대 군사물 지식도 매우 풍부했다고 한다.
애니업계의 대표적인 밀덕으로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마츠모토 레이지, 토미노 요시유키, 안노 히데아키, 오시이 마모루 등등은 아마추어로 보일 정도로 뿌리깊은 정통파 밀리터리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병기의 묘사나 전장 속 인간드라마 표현 등등을 보아도 나름 정교한 모습을 띄어도 만화적인 터치가 만만치 않았던 위의 인물들 보다도 아날로그적인 무대에 한해서 훨씬 리얼하고 사실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다그람이나 08소대에서 보여준 게릴라전은 종래의 전쟁물과 색다른 매우 실험적인 시도였다. 이렇게 다그람이나 메로우링크, 건담 08소대의 어딘지 구시대적인 듯한 아날로그적인 연출은 칸다 타케유키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결과이다. 타카하시 료스케도 칸다 타케유키의 사람냄새나는 아날로그적인 전장묘사와 연출을 매우 좋아해서 칸다가 죽은 뒤 그의 공백을 매우 아쉬워했다.
밀덕이기 때문에 격투전 연출은 토미노 요시유키보다 떨어지지만 포격,사격 묘사는 토미노 조차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미노는 건담 같은 걸 만들어서 사격전을 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검투같은 백병전이 특기다. 잘 보면 사격은 견제용으로만 사용하고 실질적인 전투의 클라이막스는 대부분 격투전이며, 대표작 중 하나인 성전사 단바인계열 작품을 보면 검격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칸다는 견착부터 자세까지 각을 잡고 반동, 탄피까지 제대로 묘사하며 포격으로 전투를 끝내는 묘사가 특징이다.
그리고 거대로봇 하나 만으로는 전국을 좌우할 수 없다는 지론이 있으며 무기와 전차만으로 전술과 전략을 잘 구사해서 거대로봇을 격파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묘사가 많다.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돌파해내는 묘사에 있어서는 토미노나 타카하시보다 뛰어난 면을 보여준다. 기갑엽병 메로우링크는 아예 이런 것만 그려낸 작품. 그야말로 밀덕의 화신같은 감독.
기동전사 건담: 제08MS소대의 총 감독을 역임하던 1996년 7월 27일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52세. 매일같이 술을 즐길 정도로 애주가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건강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이미 지병으로 골골대서 하다가 중단한 작품이 많다.
기갑전기 드라고나의 연출로 참여했던 후쿠다 미츠오가 그의 제자를 자처하고 있다. 물론, 후쿠다가 밀리터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생전의 칸다 감독이 장기로 하던 땀내나는 아날로그적인 드라마 연출과 세밀하고 사실적인 전장 묘사는 전혀 계승하지 않았지만 구도는 비슷하게 잡고 인간적으로 교류가 있었다는 점에서 후쿠다 미츠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보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제자로 인정한다. 연출의 기본만 배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다른 제자로는 야타베 카츠요시가 있다.
横山裕一朗 (요코야마 유이치로)라는 가명으로 참여한 작품도 많다. 자신이 감독한 작품이라도 콘티를 그릴 땐 이렇게 쓴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콘티를 그릴 땐 요키타니 미노루라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

2. 작품 목록


굵은 글씨는 참여비중이 높은 대표작

[1] 타카하시 료스케와 공동 감독.[2] 유작. 중도에 사망해 감독이 교체되었다.